[문화] K뮤지컬 '영리한 현지화' 통했다…'…
-
4회 연결
본문
8일(현지시간)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린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작품상·극본상·작사작곡상·연출상 등 6관왕에 오르며 공연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브로드웨이 진출이라는 오랜 꿈을 현실로 만든 이 작품은 기획부터 완성까지 전 과정에서 세계 시장을 겨냥한 전략적 설계로 뮤지컬 종주국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어쩌다 해피엔딩' 브로드웨이 공연 사진. 올리버 역의 배우 대런 크리스(왼쪽)는 2025 토니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사진 NHN 링크
‘어쩌면 해피엔딩’의 시작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극은 민간 비영리 문화재단인 우란문화재단의 기획으로 만들어져 2015년 시범 공연을 거쳐 2016년 12월 약 300석 규모의 대학로 소극장에서 초연했다. 초연 공연이 폐막한 지 단 7개월 만에 앵콜 공연을, 1년 8개월 만에 재연 공연을 올렸고 2018년 열린 제2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소극장 뮤지컬상, 작곡상, 극본상 등 6관왕을 차지했다.
가장 최근 한국에서 있었던 공연은 2024년 오연이다. 총 100회 공연, 평균 객석 점유율 99.4%이라는 기록과 함께 예매처 관객 평점 9.9점(10점 만점)을 달성하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입증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 사진. 사진 NHN링크
국내에서 빠르게 입지를 굳힌 ‘어쩌면 해피엔딩’은 일찍이 글로벌 진출을 모색해왔다. 한국 초연을 올리기 전 미국 뉴욕에서 낭독회 형식의 쇼케이스를 개최한 것이 단적인 예다. 투자자와 프로듀서, 극장 관계자 등이 참석하는 쇼케이스는 브로드웨이 진출 가능성을 타진하는 핵심 단계로 향후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발판으로 여겨진다.
‘어쩌면 해피엔딩’ 역시 쇼케이스에서 브로드웨이의 큰 손 제프리 리처드의 눈에 띄면서 그와 브로드웨이 공연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제프리 리처드는 토니상을 여덟 번 받은 유명 프로듀서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 공연 포스터. 사진 NHN링크
제프리 리처드가 프로덕션에 합류하며 브로드웨이 진출은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다. 실화 토대 시대극 ‘퍼레이드’로 2023년 토니상 베스트 리바이벌 뮤지컬상과 연출상을 받은 연출가 마이클 아덴을 섭외한 것도 리처드였다. 에미상과 골든글로브상을 받은 배우 대런 크리스(올리버 역)도 합류했다. 스타 창작진과 배우들은 현지 팬들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했다.
브로드웨이 공연은 1000석 규모의 벨라스코씨어터에 맞춰 한국보다 스케일을 키웠다. 한국판에서 시한부 사랑을 노래하는 슬픈 넘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보다 밝은 재즈 느낌의 ‘덴 아이 캔 렛 유 고’(Then I Can Let You Go)로 대체하는 등 후반부의 감정선에서 신파를 덜어낸 점도 눈에 띈다.
지혜원 경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관객들이 좋아하는 비장하고 임팩트 있는 엔딩곡 분위기의 넘버를 브로드웨이에서는 ‘투머치’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며 “영리한 현지화 작업을 거쳐 영미권 관객이 봐도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정서적인 거리감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한국 뮤지컬의 브로드웨이 진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7년 명성황후가 K뮤지컬 최초로 링컨센터 무대에 오른 데 이어, 2011년에는 안중근 의사의 삶을 다룬 영웅이 단기 공연으로 현지 관객을 만났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장기 공연이나 상업적 성공에는 이르지 못했다.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한국인으로서 처음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책임 프로듀서로 참여해 무대에 올린 ‘할러 이프 야 히어 미’(2014), ‘닥터지바고’(2015)도 흥행 저조로 조기 종연했다.

뮤지컬 '명성황후' 30주년 공연 중 넘버 '무과시험'에 맞춰 배우들이 춤추고 있다. 사진 에이컴
최근에는 창작 단계에서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뮤지컬들이 등장하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신 대표가 리드 프로듀서를 맡은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 창작진과 손잡고 2023년 10월 미국 뉴저지 페이퍼밀 플레이하우스에서의 시범 공연을 거쳐 지난해 4월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신 대표는 2021년 이 작품의 저작권이 풀리는 것에 대비해 2020년부터 미국 현지에서 창작진을 구성해 공연을 준비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가장 미국적인’ 소설을 염두에 뒀고 뮤지컬 ‘미스 사이공’으로 주목받은 배우 에바 노블자다, 그래미상을 받은 작곡가 제이슨 하울랜드 등 현지에서 프로덕션을 꾸렸다. 2500만 달러(약 340억원)에 이르는 제작비의 절반을 오디컴퍼니가 댔고 나머지는 외부 투자를 받았다. 작품은 브로드웨이에서 흥행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주당 100만 달러(약 13억원) 매출을 달성하며 ‘밀리언 클럽’에 들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공연 사진. 사진 오디컴퍼니
강병원 라이브 대표가 제작한 ‘마리 퀴리’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2019년 중국 상하이에서 쇼케이스 공연을 진행한 데 이어, 2022년에는 퀴리의 고국인 폴란드에서 열린 바르샤바 뮤직 가든스 페스티벌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이어 2023년에는 일본에 공연 라이선스를 수출했고, 지난해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영어 버전으로 두 달간 공연을 올리며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 역시 보편적 감수성을 공략하기 위해 이주민 여성 출신으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 마리 퀴리의 일대기를 다뤘다.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약자의 성장 서사’를 전략 선택한 것이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