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트럼프 원전 4배 확대에 웨스팅하우스 10기 '싹쓸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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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확대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2050년까지 미국의 원자력발전 규모를 현재의 4배로 확대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에 세계 원전 시장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은 2030년까지 대형 원전 10기를 우선 지을 계획인데,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가 시장 선점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최근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출에 성공한 한국의 미국 진출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린다.
댄 섬너 웨스팅하우스 임시 최고경영자(CEO)는 9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웨스팅하우스가 승인받은 원자로 설계와 유효한 공급망, 최근 조지아주에 원자로 2기(보글 3·4호기)를 건설한 경험 등을 바탕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이행할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며 “현재 트럼프 행정부와 적극적으로 접촉 중”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서명한 행정명령은 2050년까지 미국의 원자력 발전 설비용량 규모를 현재 97GW에서 400GW 수준까지 4배로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우선 2030년까지 1000MW급 이상의 대형 원자로 10기를 착공한다. 새 원자로 인허가에 걸리는 기간을 최대 18개월로 단축하는 등 관련 규제도 완화하기로 했다.
미국 에너지부는 대형 원전 10기 건설 비용을 750억 달러(약 100조원)로 추산한다. FT는 이 프로젝트에서 웨스팅하우스의 독식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이 매체는 “웨스팅하우스는 현재 폴란드·중국·우크라이나 등에서 최소 12기의 AP1000 원전을 건설하고 있거나 계약 중”이라며 “대형 원자로 설계·건설이 가능한 소수 기업 중 하나”라고 주목했다.
하지만 웨스팅하우스의 현재 역량으로 미국 시장 독식은 어려울 것이란 의견도 많다. 웨스팅하우스는 1950년대 세계 최초의 상업용 원전을 건설하는 등 원천 기술을 지닌 회사지만,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이후 30여 년간 미국 내 원전 건설이 중단되면서 신규 원전 공급 능력이 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2006년 일본 도시바에 인수된 웨스팅하우스는 미국 내 ‘VC 섬머 2·3호기’와 ‘보글 3·4호기’ 공사에 나섰지만 7년 이상 공사가 지연되고, 이에 따라 초과 비용이 발생하면서 2017년 파산 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캐나다 사모펀드 브룩필드가 2018년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했고, 2022년 지분 49%를 캐나다 우라늄업체 카메코에 넘기는 등 대주주 변동도 잦았다. 미국 싱크탱크 브레이크스루 인스티튜트의 아담 스타인은 “웨스팅하우스의 10기 대형 원자로 건설 계획은 매우 야심차고 도전적”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조지아주 웨인스버러의 보글 원자력 발전소. 로이터=연합뉴스
1기당 수조원의 건설 비용이 드는 대형 원전을 설계부터 시공·운영까지 해낼 수 있는 원전 수출국은 한국·미국·프랑스·러시아·중국·일본 등 6~7개국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러시아(로사톰)·중국(중국핵공업집단·CGN) 등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미국 내 수주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업계 정설이다. 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웨스팅하우스를 중심으로 한국·프랑스·일본의 기업이 미국 원전 사업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원전 공기업의 미국 시장 직접 진출 가능성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은 웨스팅하우스처럼 원전 건설사업에서 설계·조달·시공(EPC)를 총괄하는 역할을 했고, 독자적인 원전 노형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한전은 2009년 수준한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을 완공한 경험이 있고, 한수원은 최근 체코 원전 수주에 성공했다. 빠른 사업 추진을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사기간(on time)과 예산(within budget)의 준수가 가능한 한국 원전 공기업이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형 노형을 미국에 직수출하기 어려울 것이란 반론도 있다. 한 원전 공기업 관계자는 “한국형 노형인 APR1000의 경우 웨스팅하우스(AP1000)와 지적재산권 문제 등으로 얽혀있다”며 “한·미 원자력 협정 등도 미국 직수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는 2년 넘게 끌어오던 지재권 분쟁을 지난 1월 끝내기로 합의했지만, 소송전만 마무리했을 뿐 지재권을 둘러싼 양측 이견은 여전하다. 또 한·미 원자력 협정에 따라 한국이 원전을 수출하려면 미국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미국에 뿌리를 둔 웨스팅하우스가 원전 수주전에서 원자력 협정을 ‘무기’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미국 시장 확대가 한국의 원전 기자재·건설업체 등에는 확실한 기회가 될 것이란 평가가 많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최근 웨스팅하우스가 추진 중인 대부분 원전의 주기기 건설은 두산에너빌리티가 맡고 있으며, 발전소 시설을 짓는 현대·대우건설 등도 웨스팅하우스와 협업을 늘리고 있다”며 “웨스팅하우스는 자체 보유한 노형으로 원자력 발전소 엔지니어링에 집중하고 있어, 주기기 등 건설에는 한국 기업의 참여가 필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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