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젊은 나라 조선의 눈부신 혁신, 스무살 저력 ‘용산’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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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용산 개관 20주년 기념 특별전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에서 관계자들이 도자기를 둘러보고 있다. 전시는 15~16세기 도자, 서화, 불교미술 등을 선보인다. 연합뉴스

“한 시대가 일어나면 반드시 한 시대의 제작(制作)이 있다(故曰一代之興, 必有一代之制作).”

(태조실록, 태조 2년 7월 26일 정도전이 왕에게 아뢴 말)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새 나라 새 미술' #건국 후 200년간 다양성과 변화 한눈에 #691건 유물 가운데 23건 국내 첫 공개 #"용산 이전 20년, 새로움의 정신 강조"

1392년 이성계와 측근들이 고려를 뒤엎고 건국한 새 나라 조선. 새로운 집권세력과 새 시대의 열망은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오늘날 우리가 ‘미술’이라 부르는 것들에도 영향을 끼쳤다. 고려청자는 보다 순도 높은 기술력에 힘입어 분청사기를 거쳐 백자로 바뀌었고, 성리학에 기반한 이상세계를 구현하는 수묵화가 유행했다. 불교는 왕실의 후원 속에 뛰어난 장인·화원의 손끝에서 정교한 공예·불화·사경을 꽃피웠다.

조선 건국 후 200여년 간의 도자·서화·불교미술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국립중앙박물관(서울 용산구) 특별전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이 10일 개막했다. 국보 16건, 보물 63건 등을 포함한 691건의 유물이 국내외 72개 기관 협조로 모였다. 일본 교토국립박물관 소장품인 ‘문정왕후산릉도감계회도’(작가 모름, 1565년) 등 국내 첫 공개작만 23건이다. 서울 조계사의 ‘목조여래좌상’은 1938년 전남 영암 도갑사에서 옮겨진 이래 전시를 위해선 처음으로 법당을 떠나 박물관에서 전시된다(6월22일까지만 전시). 김재홍 박물관장은 지난 9일 언론공개회에서 “박물관의 용산 이전 20주년을 맞아 새로움을 보여주는 시대상을 전시 속에 구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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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새 나라 새 미술:조선 전기 미술 대전' 특별전 언론공개회에서 관계자가 조계사 목조여래좌상을 살펴보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용산 개관 20주년을 맞이해 열린 이번 특별전은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의 시작과 함께 꽃핀 15~16세기 미술의 정수를 한 자리에 모은 대규모 기획이다. 전시는 오는 8월 31일까지 열린다. 뉴스1

백·묵·금 3색 전시=3부로 구성된 전시는 각각 백(白)·묵(墨)·금(金)이라는 색깔로 조선 전기 도자·서화·불교미술의 특징을 요약했다. 특히 화이트톤 1부에서 길이 14m, 높이 3m 벽에 배치된 박물관 소장 도자 300여 건이 압권이다. 고려 말 상감청자에서 조선 분청사기와 백자로 향해간 변화를 주기율표처럼 일목요연 제시한다. 임진아 학예연구사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수립한 조선에선 전국에서 공납자기를 걷어들이다 경기도 광주에 관요(왕실 도자기 제작소)를 설치하면서 균질한 백자를 생산하는데 이 과정이 50~6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관요 체제에서 더 이상 공납에 얽매이지 않게 된 전국의 사기장들이 다채로운 분청사기를 빚어내면서 임진왜란 이전까지 역동적이고 다양한 도자 문화가 이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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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용산 개관 20주년 기념 특별전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에서 관계자들이 '산수도'를 둘러보고 있다. 전시는 15~16세기 도자, 서화, 불교미술 등을 선보인다. 연합뉴스

국내 첫 공개 23건=전시를 위해 미국·일본·영국·독일·프랑스 등 5개국에 소장된 우리 문화유산 40건이 건너왔다. 이 가운데 ‘백자 청화 산수·인물무늬 접시’(일본 개인 소장)나 ‘지장시왕도’(일본 고쿠분지 소장) 등 23건은 관련 연구자들이 해외 기관에 가서 겨우 접할 수 있던 것들이다. 특히 일본 모리박물관 소장 ‘산수도’의 경우 오랫동안 중국 작품으로 잘못 알려졌다가 20년 전 비로소 조선 16세기 화원 작품으로 규명됐고 첫 고국 나들이를 했다. 명세라 학예사는 “이 작품의 국적 판명에 힘입어 비슷한 필치의 영국 박물관 소장 ‘산수도’ 또한 조선 작품으로 재분류됐고, 이번에 처음 선보인다”고 소개했다. 이밖에 미국 라크마(LACMA) 소장 ‘산시청람도’와 일본 야마토문화관 소장 ‘연사모종도’는 조선 전기에 유행한 ‘소상팔경도’ 중 두 장면에 해당하는 그림으로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함께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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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탄생도釋迦誕生圖〉 조선 15세기, 비단에 색과 금니, 145.0x109.0cm, 일본 혼가쿠지. 그림 중앙에는 석가모니 부처가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는 모습을 그렸고, 시간적으로 전후에 해당하는 장면들을 배치했다. 이 그림에 나오는 장면은 조선 전기 왕실에서 지은 부처의 일대기인 『석보상절』에 실린 변상도와 매우 비슷하여, 왕실에서 만든 그림으로 추정한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용산 이전 20년의 역량=전시는 주제와 시기 면에서 2010년 ‘고려불화’와 2018년 ‘대고려전’을 이으면서 2005년 용산 이전을 계기로 국립중앙박물관이 축적해온 연구·교류·전시 성과가 총동원됐다. 경복궁 중앙청 시기에 비해 용산에 와서 전시와 수장 면적이 각각 3배 이상 늘었고 교육문화교류단을 신설하는 등 확장성이 강화됐다. 김혜원 미술부장은 “조선 전기는 전하는 유물이 많지 않아 그간 제대로 조망되지 못했는데 해외 박물관의 한국실 강화, 보존과학 성과 등에 힘입어 과감하게 기획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이 같은 자신감을 응축하기라도 한 듯 3부 전시실 마지막엔 ‘훈민정음 해례본’(국보)이 단독 전시돼 있다(다음달 7일까지). “조선 전기에 있었던 많은 문화적 창조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김영희 학예사) 문화유산에서 ‘젊은 나라’ 조선의 혁신을 곱씹어본다. 전시는 8월31일까지, 성인 관람료 8000원. 개막을 기념해 15일까지 무료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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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 대 명필 석봉(石峯) 한호가 쓴 『천자문』. 1583년(선조 16), 선조의 명을 받아 한호가 직접 써서 목판으로 찍어 배포한 것이다. 42.0x27.2cm, 개인소장, 보물.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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