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더버터] 송파 세 모녀 10년…복지 사각지대 여성가장 1700명을 돕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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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의나눔 여성가장 긴급지원
‘우리엄마’ 사업 10년의 임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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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오산시에 사는 김지연(가명)씨는 남편의 폭력을 피해 고등학생 자녀와 무작정 집을 나왔다. 어렵게 월세방을 구한 뒤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신청했지만 서류상 혼인 관계인 남편의 채무 이력 때문에 탈락했다. 건강이 갑자기 나빠지면서 일을 하기 어려워졌고 월세가 밀리기 시작했다. 우연히 바보의나눔 여성가장 긴급지원사업 ‘우리엄마’를 알게 돼 신청했다. 이번엔 자격이 될까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며칠 뒤 김씨 앞으로 5개월 치 주거비 400만원이 지급됐다.

주거가 안정된 5개월 동안 그는 건강을 회복했고 아르바이트도 구했다. 고3이 된 자녀도 취업반에 진학해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했던 시기에 선물처럼 주어진 지원 덕에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재단법인 바보의나눔은 퇴거나 질병 등 위기 상황에 놓인 여성가장에게 신속하게 현금을 지원하는 ‘우리엄마’ 사업을 지난 10년 동안 운영해 왔다. 긴급한 사안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 상시로 신청서를 받고 매달 심사를 진행한다. 선정된 수급자에게는 한 달 이내에 최대 400만원의 긴급 지원금을 지급한다.

지난 10년간 바보의나눔이 지원한 여성가장은 1671명. 지원금은 누적 62억원에 달한다. 이들은 밀린 공과금과 휴대폰 요금, 집세를 납부하며 심리적 안정을 찾고 자립의 발판을 만들 수 있었다.

보이지 않던 사각지대

‘우리엄마’ 사업은 2014년 2월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시작됐다. 서울 송파구 단독주택 반지하에 살던 세 모녀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밀린 공과금 70만원이 든 봉투와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한 사건이다. 이들이 정부의 각종 지원에서 배제됐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당시 한부모 가족의 월평균 소득은 월 189만6000원으로, 전체 가구 평균(389만7000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대다수 여성가장들이 가사와 아이 돌봄, 생활비를 벌기 위한 경제활동을 병행하고 있었다. 사건 발생 이듬해 바보의나눔은 송파 세 모녀처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가장들을 돕기 위해 ‘우리엄마’ 사업을 시작했다.

첫해부터 다양한 사례들이 접수됐다. 별거 중이지만 서류상으로는 남편이 있어 한부모 가정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경우, 전남편이 아내 명의로 대출을 받아 이혼 후 거액의 빚을 지게 된 경우, 부양의무자로 등록된 자녀가 있지만 건강문제로 일을 할 수 없어 노모가 생계를 책임지는 경우 등 실질적으로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제도적 지원을 받지 못했던 여성들의 사례가 계속해서 확인됐다.

신청자 수는 2015년 사업 첫해 86명에서 이듬해 168명으로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바보의나눔도 지원 규모를 빠르게 확대했다. 1년 차에 58명이던 선발 인원은 매년 증가해 지난해에는 총 271명이 선정됐다. 지원 예산은 2015년 2억1614만원에서 2024년에는 10억3077만원으로 5배 가까이 확대했다.

현장에 맞춰 선정 기준 재정비

“오랜만에 아이들과 영화도 보고 간식도 먹었습니다. 꿈같은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밀린 학원비와 전기세, 휴대폰 요금을 갚았습니다.”

“도움의 손길 덕에 작은 아이의 수술비에 밀린 월세, 공과금까지 납부했습니다. 저는 자격증을 취득하고 구직활동을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올겨울은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보의나눔이 2021~2024년 우리엄마 사업 지원을 받은 여성가장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응답자(576명)의 99%가 “지원이 자립과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지출 내역은 생계비(512건)·주거비(331건)·의료비(244건) 순으로 사용 비중이 높았다(중복 응답).

긴급 지원을 받은 대상자의 40.2%는 이후 소득이 증가했다. 장은영 동대문구청 복지지원팀 통합사례관리사는 “400만원의 지원금은 한 가정이 3~4개월 동안 쓸 수 있는 생활비”라며 “잠시 얻은 여유 덕분에 여성가장들은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일자리를 구할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바보의나눔은 지난 10년간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대상자 선발 기준을 수정해 왔다. 사업 첫해에는 ‘비정규직 근로자 중에 일시적 위기’를 겪는 이들을 지원했지만, 이후 ‘즉각적인 도움이 필요한 위기 상황’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심사 기준을 조정하고, 무직의 여성도 대상에 포함했다. 정부 수급권자는 일괄적으로 제외하던 기준도 없앴다. 최원길 바보의나눔 나눔사업부장은 “정부 지원을 받는 수급자도 상황에 따라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이들을 배제하면 오히려 복지 사각지대를 외면하게 되는 셈이어서 유연하게 기준을 재정비했다”고 설명했다.

신청서는 지원자가 직접 자필로 작성한다. 위기 상황이 발생한 원인과 지속된 기간, 이를 해결하기 위해 했던 노력, 긴급 지원금 사용 계획 등을 기술하며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점검하도록 한다. 대상자가 수동적으로 도움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다시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다.

바보의나눔은 앞으로도 사회 변화에 맞춰 새로운 사각지대를 발굴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미등록 이주여성’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난민 여성가장 신청자 9명 중 8명이 최종 지원을 받았다. 바보의나눔 상임이사인 김인권 신부는 “매달 전국에서 접수되는 신청서를 살펴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며 “송파 세 모녀 사건과 같은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꾸준한 관심을 갖고 제도 밖에 놓인 이들을 찾아내 실질적인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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