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더버터] 탄자니아 커피농가들이 기후위기와 맞서 싸우는 법

본문

굿네이버스, 기후위기 대응 농업혁신 실험

17496767993118.jpg

탄자니아 음보지 지역의 커피생산자조합원들이 커피 생산성 향상을 위해 병해충 피해 여부와 열매의 생육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사진 굿네이버스]

비가 와야 할 시기가 지나고 있었다. 농민들은 자꾸만 하늘을 올려다봤다. 작년에는 건기에 비가 내려 물난리가 나더니 올해도 날씨는 오락가락이다. 작황은 전년 대비 또 줄었다.

“커피나무가 마치 말하는 것 같았어요. 이젠 못 버티겠다고.” 1997년부터 탄자니아 남서부 음보지에서 커피를 재배해 온 가브리엘 카타우네카양게(43)는 기후변화를 피부로 느낀다고 했다. 수십 년간 마을의 생계를 책임지던 커피 농사를 포기할 수 없는데, 상황은 매년 나빠져만 갔다.

탄자니아 음보지 지역은 전국 커피 생산량의 약 16.6%를 차지하는 커피 주산지다. 최근 이곳 커피 농가들은 생존을 위한 변화의 길목에 섰다. 기후위기로 인해 우기와 건기의 경계가 무너지고, 병해충이 급증하면서다. 그간 고지대의 서늘한 기후 덕분에 아라비카 원두 재배에 적합한 지역으로 꼽혔지만 최근 몇 년간 강수 변동성 증가, 기온 상승, 잦은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통 농법에 의존하던 소농가들의 생산량은 2018년 1만2752t에서 2021년 1만441t으로 약 20% 급감했다. 새로운 농법이 필요했다.

“기후는 달라졌지만, 농사법은 여전히 과거 방식에 머물러 있습니다.” 카양게는 마을의 많은 농민이 여전히 부모 세대의 방식대로 커피를 키운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와 같은 방식으로 땅을 일궈왔지만, 지금은 그 방법으론 버틸 수 없는 때가 됐다”고 말했다.

가난한 농민에 먼저 닥친 기후위기

기후위기의 직격탄은 가난한 소농에게 먼저 도달했다. 기후위기가 지속하면서 생산량은 줄고,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농자잿값은 크게 올랐다. 천수농업에 의존하던 커피농가는 돈이 없어 새로운 품종을 들일 수도, 비료를 살 수도 없었다.

“예전엔 9월이면 시작되던 비가 이제는 11~12월에야 옵니다. 우기와 건기가 뒤섞였고, 병충해는 더 잦아졌습니다.”

음보지 지역의 커피생산자조합 ‘MbilidnoAMCOS’의 음코마카타니상콰(47) 사무국장은 “생산량이 크게 줄었는데, 농민들의 수입은 이보다 더 큰 폭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굿네이버스는 지난 2023년부터 기후위기에 강한 커피나무를 농가에 보급하고, 기후스마트농법(CSA) 교육, 관개시설 구축, 금융지원 등 지역사회의 자립에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함께 3년간 20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으로 확대됐다.

굿네이버스는 “기후위기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소농들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농업 생산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생존 구조 자체를 바꾸는 개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지난 4~5일 제주에서 열린 ‘세계 환경의 날’ 기념행사에서도 기후위기 심화로 개발도상국의 농업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는 메시지가 강조되기도 했다. 김선 굿네이버스 국제사업본부장은 “기후위기라는 단어가 추상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현장에서 ‘예측 불가능’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며 “농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언제 씨를 뿌리고, 언제 수확할지 예측하는 것인데 기후위기가 그 일상을 무너뜨린다”고 말했다. 이어 “농민들의 일상을 복원하고 소득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은 단순히 기술 보급을 넘어 역량 강화와 인프라 구축까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미국 농무부 자료에 따르면, 탄자니아의 커피생산량은 2021-22년 시즌 7만7400t에서 2022-23년 6만9000t으로 크게 하락했다. 그러나 이번 2024-25년 시즌에는 기후위기 대응으로 9만t까지 회복될 것으로 예측된다.

17496767998116.jpg

탄자니아 음보지의 이툼피(Itumpi) 지역에서 진행된 관개시설 건설 현장. [사진 굿네이버스]

기후위기에 강한 품종 개발, 희망을 심다

품종 개량은 농가의 생존 문제이지만 동시에 국가적으로도 커피 산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연구다. 탄자니아 국립커피연구소(TaCRI)는 지난 수년간 기후위기 환경에 대응하는 다양한 커피나무 종자를 개발해 왔다. 수확량을 끌어올리고 병충해와 가뭄에 강한 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연구소는 현재 19종의 개량 품종 개발을 마쳤다. 지역마다 기후의 특징이 달라 다양한 종을 개발하고 해당 지역에 맞는 종자를 보급하기 위해서다. 품종별로 병해충 저항성과 수분 요구량이 다르고, 재배에 적합한 해발고도도 제각각이다. 이 때문에 TaCRI는 지역 농가에 맞는 맞춤형 추천을 제공하고 있다. 또 농가에서는 종자 선택과 함께 재배 방식까지 새롭게 배워야 한다. 대표적으로 ‘TaCRI 3F’ 품종은 실험 재배에서 1헥타르당 연간 5050kg의 원두를 수확했다. 이는 전통 품종인 ‘N39’과 비교해 5배 이상 높은 수확량이다. 질병 저항성 등급도 높이고 커피 품질도 유지했다.

문제는 종자 개발이 완료되더라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먼저 농부들이 새로운 기술과 종자 도입을 꺼린다. 자칫 농사법을 바꿨다가 실패하면 온 가족이 가난의 굴레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국가 예산이 부족해 대량으로 나무를 키워 지역 농가에 전달할 길이 막혀있다. 농부의 마음을 돌리고,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일이다.

박해성 굿네이버스 지역개발팀장은 “새로운 접근과 개발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지만 농부들의 마음이 쉽게 열리는 건 아니다”라며 “일부 용기를 낸 농부들이 몇몇 나서면서 개량 종자의 보급 지역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굿네이버스는 마을마다 생산자조합을 결성할 수 있도록 돕고, 조합 단위에서 묘목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박해성 팀장은 “마더가든(mother garden)으로 불리는 양묘장을 각 조합에 마련하고, 이곳에서 개량종자를 발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며 “양묘장에서 6개월 정도면 10~15cm 높이의 작은 묘목으로 성장하는데 이때 야외 농장에 옮겨 심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커피나무는 묘목을 심고 2~3년 정도 지나야 첫 수확이 가능하다. 생산량이 가장 높아지는 시기는 7~8년. 나무를 심은 지 12년이 지나면 생산량이 점차 감소하고 상품성도 떨어진다. 이렇게 나이든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기후위기에 강한 새로운 종자를 심는다. 굿네이버스에 따르면, 올해 음보지 지역에만 15만 그루의 개량 품종 나무를 심을 계획이다. 그렇게 보급된 나무는 누적 20만 그루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17496768001135.jpg

커피 농부들에게 양질의 농자재를 전달하는 모습. [사진 굿네이버스]

기술-금융-인프라, 기후생존력 높이는 솔루션

묘목만 바꿔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굿네이버스는 농민들에게 ‘기후스마트농업(CSA)’ 기술 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병해충 통합관리(IPM), 빗물 집수, 혼농임업, 토양 보습 등 네 가지 핵심 기술을 중심으로 728명의 조합원이 교육을 받았다. 조프리마페사(37) 굿네이버스 CSA 지도 담당자는 “농부들이 실제 농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중심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며 “개량된 품종을 안정적인 환경에서 재배하게 되면 농가 생산량이 3배 가까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굿네이버스는 커피 농사 전용 달력을 만들고, 리드파머(Lead Farmer) 제도도 도입했다. 리드파머란 이웃 농가에 기술을 전파하고 마을 단위의 ‘현장 교사’ 역할을 하는 핵심 조합원이다. 굿네이버스는 커피 생산자조합원 중에서 총 40명의 리드파머를 선정해 주민 주도의 농업 관리 체계를 구축했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농가의 경제적 부담을 더는 금융 지원도 마련됐다. 대표적으로 ‘소액대출 기반 영농투입물 지원 프로그램’은 조합이 공동구매를 통해 영농자재를 확보하고, 수확 후 판매 수익으로 대출금을 상환하는 순환형 금융 지원 제도다. 현재 419명의 조합원이 참여 중이며, 향후 조합이 기금을 인수해 자립적으로 운영하게 된다.

판촉을 지원하는 마케팅위원회 운영과 금융 교육을 통해 조합원의 판매 역량도 강화했다. 또한 커피 저장고, 가공시설(CPU), 수분계·전자저울 등 품질 관리 장비를 지원해 가공·유통 과정의 경쟁력도 높일 계획이다.

김선 본부장은 “과거의 개발협력은 일방적인 도움의 차원으로 이뤄졌지만, 이제는 ‘공동 생존 전략’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프리카 커피농가의 수확량이 지속적으로 줄면 머지않아 우리의 커피값도 오르게 된다”며 “문제는 연결돼 있기 때문에 가장 약한 고리를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한 해법”이라고 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3,105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