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일흔살 헌혈왕 “회사 정년보다 헌혈 정년 더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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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왕’ 허명씨가 2003년 200번째 헌혈 중인 모습. 그에겐 헌혈이 일상이다. [사진 허명씨]

“매혈(賣血)하던 사람이 피를 너무 많이 뽑아서 죽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죠. 여건이 된다면 사람 목숨을 구하는 게 올바른 인생이다 싶었습니다.”

헌혈 개념이 흐릿하던 1976년, 그렇게 ‘내 피’를 처음 남에게 나눴다. 그에게 헌혈은 한 달에 한두 번씩 이어지는 제일 중요한 일정이 됐다. 그 일상이 수십년간 쌓여 707회(12일 기준)가 됐다. “초반에 헌혈증 못 받은 것까지 따지면 실제 800번 훨씬 넘게 헌혈했죠.” ‘헌혈자의 날’(14일)을 맞아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는 70세 허명씨 이야기다. 울산에 사는 허씨의 삶은 헌혈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몸에 해로운 술·담배는 아예 하지 않고, 육류나 커피·콜라도 멀리한다. 매일 2시간 산행을 하고, 아파트도 계단으로 오르내린다.

그렇게 50년 가까이 피를 나눠온 허씨는 영남 지역 최다 헌혈자다. 대한적십자사의 ‘헌혈 명예의 전당’ 명단엔 5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1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교통사고 중증 환자가 8시간 수술한다고 치면 수혈량이 8000㏄가량 된다고 하더라. 내 누적 헌혈량을 계산해보면 환자 35명은 구한 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헌혈할 시기가 되면 몸이 근질근질하다고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의무 아닌 의무 같은 생활을 해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오죽하면 표창을 받는 13일, 헌혈자의 날 기념식 참석 때문에 예정된 헌혈을 미루는 게 못내 아쉬울 정도다. 내 집처럼 드나든 울산 지역 헌혈의집 직원들과도 가족 같이 친하다고 한다. 그는 “헌혈도 일종의 중독 같다”면서 “피 검사도 공짜로 해주니 얼마나 좋냐”고 했다.

은퇴 전까지 허씨는 32년여 간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생산직 직원으로 일했다. 주·야간 교대 근무에 지친 몸이라도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헌혈만큼은 빼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10년 전 직장 정년퇴직보다, 석 달 뒤 헌혈 정년이 더 안타깝다고 했다. 혈액관리법상 만 70세가 되기 전까지만 헌혈이 가능하다. 70번째 생일 전까지 6번은 더 피를 나누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회사는 생계를 위해 다녔지만, 헌혈은 생명을 살리는 거니까 아쉽다”고 했다.

허씨는 “최첨단이라는 현대 의학도 인공혈액은 아직 못 만든다”며 “나 자신도 언제 수혈이 필요할지 모르는 만큼, 편견보다 의지를 갖고 헌혈에 동참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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