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대로면 30대 영화감독 씨 마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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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한예종에서 열린 한지원 감독의 ‘이 별에 필요한’ 시사회. 넷플의 첫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다. 이날 시사회는 넷플과의 작업 과정을 묻는 재학생의 질문들로 채워졌다. [사진 넷플릭스]
‘이분들이 지원금을 받고 영화를 찍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2020년 독립영화로 데뷔를 한 30대 감독 A씨가 지난달 26일 발표된 영화진흥위원회의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사업’ 결과를 보고 든 생각이다. 한국 영화계 불황 속, 신인감독의 영역이라고 여겨져 왔던 중예산 규모의 작품 지원사업에 기성감독들이 대거 선정되며 신인감독들의 상업영화 데뷔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접수를 시작한 이 지원사업은 국내 처음 도입된 예산 규모 100억의 상업영화 지원책으로, 영화산업 회복을 위해 만들어졌다. 113개 작품을 검토했고, 이 중 순제작비 20억~80억원 규모의 실사 극영화 9편이 선정됐다.
A감독이 놀란 건 선정작 감독들의 이름이었다.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 장훈 감독의 ‘몽유도원도’에 각각 15억 지원이 결정됐고, 예비 1번에 변영주 감독이 이름을 올렸다. 9편 중 상업데뷔감독은 신인 김선경 감독과 단편을 만들어 온 김정구 감독뿐이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시민덕희’. 박영주 감독의 첫 상업데뷔작이다. [사진 쇼박스]
심사위원들은 총평을 통해 ‘투자 제작 가능성’과 ‘영화제 수상 가능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하사탕’(2000), ‘버닝’(2018) 등을 연출한 이창동 감독과 1000만 관객을 동원한 ‘택시운전사’(2017)를 만든 장훈 감독이 지원 대상에 오른 사실만으로도 영화계는 떠들썩해졌다. 발표 후 이창동 감독은 자진 취하를 통해 지원금을 받지 않기로 하고, 넷플릭스 제작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용배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교수는 “최근 영화 투자가 급격히 줄면서 이번 지원사업에 신인·기성 감독이 대거 모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신인감독의 상업 데뷔는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영진위에 따르면 지난해 실질개봉작(개봉 후 40회 이상 상영한 작품) 225편 중 20편만이 신인감독의 상업 데뷔작이었다. 이 중 3편은 개봉이 늦어진 ‘창고영화’(시민덕희)이거나 무술감독·배우의 연출데뷔작(범죄도시 4·분노의 강)이었다. 올해의 경우 4월까지 실질개봉된 작품 70편 중 6편이 신인감독의 상업 데뷔작이다.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은 중예산영화 지원작으로 선정됐으나 자진 취하했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데뷔 기회를 잡지 못한 신인감독들은 비교적 상황이 나은 OTT로 눈을 돌리고 있다. 2022~2025년까지 공개된 넷플릭스 한국 콘텐트의 20%는 신인 작가 또는 감독의 상업데뷔작이었고, 지난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5편 중 3편, 올해 공개되는 영화 7편 중 3편은 신인감독의 상업데뷔작이다. 넷플릭스의 첫 한국 애니영화 ‘이 별에 필요한’도 한지원 감독의 상업데뷔작이다.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팬데믹 이후 재정 불안을 겪는 투배사들의 경우, 도전적이기 어렵다”며 “상대적으로 재정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글로벌 OTT가 신인에게 투자하는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영화계 관계자들은 그간 투자를 통해서만 꾸려져 온 상업영화에 대한 지원체계가 탄탄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상업영화 데뷔 20여년 차인 C(57) 감독은 “이대로면 30대 영화감독 씨가 마른다”며 “상업감독 육성 시스템을 만들고, 투자의 마중물이 되는 지원이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최용배 교수는 “봉준호·박찬욱 감독이 대표작을 낸 시기는 영화 투자와 지원이 활발했던 1998~2006년 사이다. 그때처럼 적극적 지원을 통해 영화 환경 복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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