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400만원 벌어 330만원 쓴다?…외국인 지갑 열게 한 이곳 비책 [조선도시 두얼굴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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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 한 대형 조선소 사내협력사에서 일하는 미얀마 출신 쏘꼬꼬한의 경우, 월급의 71%를 매달 본국에 송금하고 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지자체의 한국어 교육과 외국인 지원 프로그램이 정착과 비자 전환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경기도 화성시의 반도체 기업에서 도장공으로 일하는 알리 무하메드 나히드(31·방글라데시)는 지난 1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비자 전환 후 가족을 초청한 뒤 본국에 보내는 돈이 3분의 1로 줄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국내서 번 돈 63% 생활비·저축으로
제조업체가 밀집한 경기도는 나히드 같은 외국인 근로자가 가장 많이 거주(등록 외국인 수 42만6000명)하는 지역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일해 번 돈을 모국의 가족에게 보내는 ‘본국 송금’ 외국인 비율은 전국(서울 제외)에서 가장 낮다.
법무부 ‘이민자 체류 실태 및 고용조사’(2023) 통계를 보면 경기도 거주 외국인 가운데 “한국 바깥의 가족·친인척에게 돈을 보낸다”는 답변 비율은 30.21%로 집계됐다. 소득 가운데 생활비와 저축에 들이는 돈의 비중은 62.53%에 달했다.

지난 5일 경남 거제시 장평동 삼성중공업 조선소에서 퇴근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생필품을 구입하려 다이소 매장을 찾고 있다. 송봉근 기자
소비 촉진 키워드는 정착·가족 초청
나히드의 경우를 보면 경기지역 지자체가 운영하는 한국어교육, 법률 및 의료, 취업 연계 프로그램 등 외국인 지원 프로그램이 이들의 정착과 비자 전환, 국내 소비 촉진 등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13년 6월 E-9(비전문 취업) 비자로 한국에 온 그는 2022년 1월 E-7(전문인력) 비자로 전환했고, 그해 6월 아내와 딸을 한국에 초청했다. 비자 전환엔 한국어 능력시험(2급)과 사회통합 프로그램(2단계 이수 완료)에서의 좋은 평가를 포함해 안정적 근무 경력(연봉 2600만원 이상 직장서 2년 이상 계속 근무) 등 요건이 필요하다.

2016년 충북 음성군 외국인 근로자들이 노동자 지원센터 한국어 교실에서 한글을 배우고 있다. 이 기사와 직접 관련 없는 자료 사진. 중앙포토
나히드는 “경기도와 화성시가 운영하는 한국어 교육과 조기 적응 프로그램이 특히 도움이 됐다. 덕분에 한국어 실력을 기반으로 회사에 잘 자리 잡고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의 아내(25)와 딸(6)도 같은 프로그램을 이수했는데, 딸은 나히드보다 한국어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한다. 나히드는 “이런 지원을 통해 경기도 외국인은 비교적 빨리 한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고, E-7 비자를 받는 이들도 많다”고 했다.
그는 이어 “(비자 전환 후) 배우자와 자녀 등 직계 가족이 한국에 오면 자연스레 쓰는 돈이 늘고 본국 송금은 준다”고 말했다. 실제로 초창기 나히드는 한 달에 240만원(급여 300만원)을 본국의 부모와 아내에게 보냈다. 하지만 아내와 아이가 한국에 들어온 이후 최근엔 70만~80만원(급여 400만원)만 보내고 있다.

지난 5일 경남 거제시 삼성중공업에서 근무중인 국내외 근로자들이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 5일 경남 거제시 장평동 한 재래시장에 폐업한 한 식당 모습. 송봉근 기자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연구에 따르면 국내에 들어온 초기엔 외국인 근로자 과반수(51.3%)가 본국에 송금한다. 하지만 나히드처럼 안정적으로 정착해 거주한 지 10년이 넘으면 이 비율이 절반(26.3%)으로 줄어든다.
김영혜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지자체가 외국인 커뮤니티 조성을 도우면 취업 등 정보 교류가 활발해지며 외국인이 몰린다. 이 상태에서 가족 초청이 가능한 비자 전환 등 정착 지원이 이뤄지고 거주 기간이 늘면 국내에서의 소비도 늘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황 버틸 인력기금, 호황 때 쌓자”
이런 가운데 조선업계 안팎에선 “떠나간 내국인을 다시 모셔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업무 숙련도와 원활한 현장 소통 등을 고려하면 현장엔 여전히 내국인 숙련공 중요도가 높다는 이유에서다.
업계에 따르면 ‘수주 절벽’이 본격화한 2016년부터 1만~2만명씩 일자리를 잃었다. 용접 등 숙련 기술을 가진 이들은 건설 현장 등으로 흡수됐다. 이들도 다시 호황을 맞은 조선업 복귀를 염두에 두지만, 실직 경험과 고용 불안 탓에 주저하고 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그래픽=신재민 기자
이와 관련, 산업연구원은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 용역을 받아 수행한 연구에서 ‘인력기금’ 운용안을 제시했다. 조선업계가 호황 때 수익 일부를 적립해 기금을 조성하고, 불황 땐 이 기금을 임금 보전 등에 투입하자는 내용이다. 이 연구에선 개별 기업 단위보다는 조선업계 전체가 함께 적립해 기금 규모를 키우는 편이 더 효과적일 것으로 봤다.
실제 한화오션·삼성중공업 등 양대 조선소 사업장이 자리한 경남 거제시도 지난 4월부터 이런 기금 마련을 추진했다. 한화ㆍ삼성과 거제시가 매년 일정 금액을 출연해 공동 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조선소 내국인 채용 확대 ▶근로자 복지 향상 등에 쓰자는 방안이다. 현재 실무협의체 구성을 논의하고 있다.
인력기금 운용 연구를 수행한 민순홍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경제학 박사)은 “조선업은 수주량에 따라 호·불황 판단이 명확하다. 이미 인력 대량 유출을 경험해 업계 내부에서도 대비책 마련에 대한 공감대가 있다”며 “기금이 조성되면 불황 때 인력 유출을 막을 수 있다. 조선업 복귀를 망설이는 숙련공들이 안심하고 돌아오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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