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지적이고 시적이었던 피아니스트 알프레트 브렌델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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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런던에서 세상을 떠난 알프레트 브렌델이 2008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고별 공연을 한 모습. 사진 AFP=연합

피아니스트 알프레트 브렌델이 1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94세.

브렌델은 해박한 지식과 호기심을 가진 피아니스트였다. 베토벤의 소나타 전곡(32곡)을 최초로 녹음(1964년 발매)했으며 이후 두 번 더 전곡 음반을 발매했다. 모차르트ㆍ슈베르트와 같은 고전과 낭만 시대의 작품에 대한 지성적 접근, 또 리스트 작품에 대한 새로운 발견으로 동시대 최고의 음악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평론가 수전 손택은 “브렌델이 피아노 주요 작품을 듣는 방식을 바꿨다”고 평했다. 예리하고 지적인 그의 해석은 동시에 시적이었다.

그는 혼자 공부하고 늦게 성공했다. 현재 체코 공화국인 모라비아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와 유고슬라비아를 오가며 자라났던 브렌델은 16세 이후 정식으로 스승을 둔 적이 없다. 브렌델은 생전 인터뷰에서 “나는 천재가 아니다. 악보를 잘 읽지 못하고 기억력도 별로다. 음악가 집안에서 나지도 않았으며, 스스로 모든 것을 알아가야 했다”고 회고했다.

17세에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독주회를 열며 피아니스트로 데뷔했고 18세에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서 4위에 입상했다. 또 1950년대부터 베토벤의 소나타를 녹음하기 시작했지만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1960년대 후반 런던 독주회 이후 갑자기 관심이 쏟아졌는데, 그 이유는 알지 못했다”고 했다. 그가 30대 후반일 때였다. 이후 음반사 필립스와 계약을 맺고 고전 시대에 집중된 작품을 녹음했다. 2016년 그의 음반을 모아 발매한 전집은 114장에 이르렀다.

세계 곳곳의 대학에서 받은 명예 학위만 23개.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예일 대학과 줄리어드 음악원 등에서 수여했다. 또한 빈 필하모닉의 명예 회원이었으며 지멘스상, 일본의 최고 훈장 등을 받았다.

브렌델은 또한 탁월한 에세이 작가이자 유머로 무장한 시인이었다. 1976년 첫 에세이집『음악적 사고와 재고』(1976), 『소리가 된 음악』(1990), 시집 『원 핑거 투 매니(One Finger Too Many)』(2004) 등은 음악은 물론 예술 전반에 대한 해박함을 보여준다. 동시에 무심하고 지적인 유머를 담고 있다. 브렌델은 ‘쾰른의 기침꾼들’이라는 시에서 ‘청중 기침 협회’를 상상하며 음악회 객석의 소란스러움을 풍자했다. 그는 “음악과 웃음은 이 세상에서 사랑 이외에 가장 유익한 것”이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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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트 브렌델. 사진 홈페이지

1931년 1월생인 브렌델은 78세가 되기 직전인 2008년 12월 18일 오스트리아 빈의 무지크페라인홀에서 은퇴 공연을 열었다. “은퇴 후 오랫동안 문학으로 제2의 삶을 살겠다. 강의와 글쓰기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문학 작품 낭독회, 또 후배들을 가르치는 공개 레슨으로만 대중 앞에 섰다. 브렌델을 멘토로 따랐던 피아니스트는 폴 루이스, 이모젠 쿠퍼, 킷 암스트롱 등이 있다. 루이스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그의 지혜와 통찰력에 감동을 받을 수 있었던 우리가 운이 좋았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공연한 적이 없다. 다만 국내 출간된 에세이집『피아노를 듣는 시간』『아름다운 불협음계』『뮤직, 센스와 난센스』로 그의 저작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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