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안치홍(35)은 지난 17일 부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데뷔 17시즌 만에 처음으로 안경을 쓰고 타석에 섰다. 최근 시력이 점점 떨어지자 '공을 더 잘 봐야겠다'는 의지로 새 안경을 맞췄는데, 최상의 결과가 나왔다. 0-0으로 맞선 3회 2사 1·3루에서 결승 3점포를 터트려 시즌 1호 홈런을 신고했다. 한화의 5연승을 완성하는 한 방이었다.

안치홍은 올 시즌 개막 후 손목 통증과 타격 부진이 겹쳐 마음고생을 했다. 퓨처스(2군)팀까지 다녀오며 절치부심했지만,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새 안경을 낀 첫날, 첫 홈런으로 기나긴 슬럼프에 속 시원한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경기 후 자신의 안경에 큰 관심이 쏟아지자 "타석에서 점점 더 공이 안 보이는 느낌이라 어렵게 결심했다. 수비 때 불편할까 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고 털어놨다.

한화 안치홍이 17일 사직 롯데전을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날부터 안경을 새로 끼고 나와 결정적인 3점홈런을 터뜨렸다. 부산=고봉준 기자

야구선수에게 눈은 생명과도 같다. 그러나 경기 중 안경을 쓰는 건 생각보다 더 불편하다. 수비나 주루 때 움직임이 많은 야수는 특히 더 그렇다. 땀을 흘릴 때마다 얼굴에서 흘러내리고, 공에 맞기라도 하면 큰 부상의 위험이 따른다. 시력 낮은 선수 대부분이 안경보다는 콘택트렌즈 착용이나 시력교정 수술을 택한다.

그래도 여전히 안경을 써야만 하는 선수들도 있다. 과거 한 유명 타자는 시력 교정술을 받은 뒤 야간 경기 빛 번짐 현상으로 고생하다 기량이 떨어졌다. 코치들도 "투수는 시력 교정을 권장할 만하지만, 타자들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만류한다. 콘택트렌즈도 모두에게 통하는 대안은 아니다. 안치홍은 "20대 중반에 콘택트렌즈를 사용해봤는데, 경기 중 눈에서 자꾸 빠져서 포기했다"고 했다.

안경을 끼고 30대에 물 오른 타격을 한 박용택. 뉴스1

실제로 LG 트윈스 레전드 타자였던 박용택 해설위원은 라식 수술을 받고도 안경을 썼다. 시력이 다시 떨어지면서 공이 여러 겹으로 보이는 난시 증상이 찾아오자 2011년 다시 안경을 집어 들었다. 가장 효율적이고 덜 불편한 안경테와 렌즈를 찾느라 수십 개의 안경을 구매하는 열의를 보였다. 그 결과 그는 30대 이후 더 좋은 타격을 했다.

KIA 타이거즈 에이스 양현종도 2013년 라식 수술을 받아 일반인보다 시력이 좋다. 그런데도 마운드 위에서는 물론이고, 일상생활에서도 계속 도수 없는 안경을 쓴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써온 안경이 이제 몸의 일부처럼 익숙해져 "없으면 더 어색하고 불편하다"고 했다.

시력이 좋지만 '익숙함' 때문에 도수 없는 안경을 끼는 양현종. 연합뉴스

투수들은 주로 "포수 미트를 더 또렷하게 보고 싶다"는 이유로 안경을 쓴다. 안경 쓴 투수 중 가장 유명한 선수는 단연 '무쇠 팔'로 불리는 고(故) 최동원이다. 그는 투구 전 송진 가루, 신발 끈, 양말, 모자챙을 차례로 만진 뒤 금테 안경을 고쳐 쓰고 공을 던지는 루틴으로 유명했다. 최동원이 한국시리즈에서 4승을 올리며 롯데의 우승을 이끈 1984년엔 부산 지역 남성들이 너도나도 금테 안경을 끼고 다녔다는 후문이다.

반면 SSG 랜더스 김광현은 2013년 한때 안경을 쓰고 마운드에 올랐다가 두 경기 만에 벗어버렸다. 난시 탓에 몇 차례 포수 사인을 잘못 읽은 뒤 고육지책으로 택했는데, 안 쓰던 안경이 걸리적거려 오히려 투구에 불편함을 느꼈다. 결국 안경 대신 콘택트렌즈를 착용하고 경기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