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우리말 바루기] ‘주책이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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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연결
본문
‘주책’이 본래 지닌 뜻은 “일정하게 자리 잡힌 주장이나 판단력”이다. ‘주착(主着)’이 변해서 ‘주책’이 됐다. 부정적인 말과 주로 어울려 쓰인다. “주책도 없이 웃고 말았다.” “어쩜 그리 주책이 없는지.” “그는 정말 주책이 없는 사람이다.” 이 문장들에서 보이는 ‘주책’은 분명히 ‘판단력’이나 ‘생각’ 정도쯤 된다. ‘주책’ 대신 ‘생각’으로 바꿔도 다음처럼 비슷한 말이 된다. “생각도 없이 웃고 말았다.” 그런데 습관처럼 뒤에 오던 ‘없다’의 부정적인 의미가 ‘주책’에 붙기 시작했다.
‘주책’은 다음 문장들에서처럼 “일정한 줏대가 없이 되는대로 하는 짓”이라는 말로도 의미가 확장됐다. “주책을 떨었다.” “조용한 카페에서 주책을 부렸다.” “어디서나 주책이 심했다.”
‘주책’과 ‘없다’는 아예 한 단어처럼 붙어 쓰이기 시작했다. ‘주책없다’는 “일정한 줏대 없이 이랬다저랬다 해서 몹시 실없다”는 뜻을 지닌 말이 됐다. “나는 주책없이 눈물을 보였다.” “그는 주책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책이다’도 ‘주책없다’와 비슷한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없다’의 뜻이 완전히 ‘주책’ 속으로 스며든 것이다. “참 주책이네.” “그러면 주책이지, 뭐야.” “보고 싶다고? 주책이다.” 너도나도 ‘주책이다’를 ‘주책없다’와 같은 말로 썼고, ‘주책이다’도 표준어가 됐다. ‘주책맞다’나 ‘주책스럽다’도 비슷한 말로 국어사전에 올랐다. ‘주책없다’가 아니라 ‘주책이다’라고 하면 잘못이라고 질타하던 때가 있었다. 공적인 글에서는 ‘주책이다’가 ‘주책없다’로 여지없이 수정됐다. 그렇더라도 대중은 ‘주책이다’를 썼다. 말을 바꾸고 새로 만들어 가는 건 대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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