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란 핵 때린다는 트럼프, 선 긋는 푸틴…김정은 셈법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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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이란을 공습한 이스라엘을 향해 “중동 평화의 암”, "세계 평화와 안전 파괴의 주범"이라며 공개 비판에 나섰다. 전통적 우방인 이란을 두둔하려는 것으로 보이지만, 불법 핵 개발국인 북한 역시 언제든 이란과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섞인 반응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 있는 국영 IRIB 방송국 건물이 이스라엘의 공습에 당하며 연기가 치솟았다. AP=연합뉴스
"전쟁 불길 부채질"…北 첫 입장
북한 외무성은 19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에 대해 "주권 국가의 자주권과 영토 완정을 무참히 짓밟은 극악한 침략 행위이자 반인륜적 범죄"라며 이같이 밝혔다. 북한 외무성은 "미국과 서방 세력"을 향해서도 "전쟁의 불길을 부채질한다"고 비난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한 후 북한 당국 차원에서 공식 반응이 나온 건 처음이다.
이와 관련,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이스라엘은 아주 강력하게 규탄하고 비난한 반면 미국에 대해선 비난 수위를 조절한 것이 눈에 띈다"고 분석했다.
이스라엘이 내세운 공습의 대외적 명분이 ‘이란의 핵 개발 저지’인 만큼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중동 사태를 북한도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사태는 사실상 미국과의 사전 협의 없이 이스라엘의 돌발 행동으로 촉발됐다. 그러나 이란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과 국내 정치 반응을 지켜보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군사 개입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게 외신의 분석이다.
미 뉴욕 타임스(NYT)는 17일 “트럼프는 취임 초반에는 이스라엘의 공습을 만류했지만 무력 충돌이 계속되면서 미군 투입에 보다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애초부터 지지부진하던 이란 핵 협상에 대한 인내심이 바닥난 상태였다”고 전했다.
발언 수위에 대한 논란은 있었지만 “이스라엘이 우리 모두를 위해 더러운 일(dirty work)을 했다”는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의 발언은 이란의 핵능력 증강을 막는다는 이스라엘 공습 배경 자체에 대해선 서방 진영에서도 공감대가 일부 형성됐다는 방증이란 분석도 나온다.

13일(현지시간) 오후 이스라엘 텔아비브 상공에 이란이 발사한 미사일들이 이스라엘 방공망에 의해 요격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협상판이 순식간에 전쟁으로
이는 '사실상 핵 보유국' 지위 인정을 노리며 트럼프와의 담판 재개를 저울질 중인 김정은에게 핵 협상의 문턱이 한층 높아졌음을 뜻한다. 트럼프는 이미 이란 핵시설에 대한 공격 계획을 승인했으며, 최종 결정은 “1초 전에 하겠다”며 보류한 상태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당시에는 트럼프가 협상장을 박차고 나간 데 그쳤지만, 이제는 협상 판을 깨는 수준을 넘어 핵시설 타격도 현실적인 옵션으로 검토하고 있는 셈이다. 이스라엘의 기습 공습 당시 미국과 이란은 오만의 중재로 불과 이틀 뒤 6차 핵협상을 앞두고 있었다. 협상 판이 한순간에 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셈이다.
특히 트럼프가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겨냥해 “소재를 정확히 알고 있다”(지난 17일)고 경고하거나 이스라엘이 이란 핵 과학자들을 표적 암살한 사건은 북한 입장에서도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위협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은 이란을 보며 트럼프가 북한을 향해 '화염과 분노'를 언급하고 항모전단 3개를 동원해 압박을 가했던 2017년을 떠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가 중동 사태를 일단락 지으면 시선을 북한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에 이란 핵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는지가 곧 북핵 문제 해결의 직접적인 준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유벤투스 축구팀 선수들과 면담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북핵 잣대도 더 엄격해질 듯
물론 6차례의 핵실험을 거쳐 2017년 이미 ‘핵 보유국’이라고 대내외적으로 선언한 북한과 이제야 우라늄 농축률을 60%까지 끌어올린(무기급은 90%) 이란을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 그러나 트럼프가 이란에 강경 대응하는 명분이 ‘핵 비확산’이라는 점에서 향후 북한에도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을 거란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는 하노이 회담 때도 북한의 은닉 핵 시설을 문제 삼아 협상을 결렬시켰다.
이에 따라 김정은이 향후 협상 가능성을 작게 보고 문을 닫은 채 핵 보유에 더욱 골몰할 거란 관측도 나온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정은은 수세에 몰린 이란의 모습을 보며 핵 개발은 옳은 선택이었다는 확신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핵은 협상용이 아니라 생존 수단이라는 인식을 굳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지원에도 선 그은 푸틴
중동 정세에 불안을 느낀 듯 김정은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라는 뒷배에 더욱 의지하는 모습이다. 북한은 러시아에 공병과 건설 인력 등 6000명을 추가 파병하기로 했다. 이에 더해 “북한이 러시아 무인기(드론) 생산 공장에 2만 5000명의 노동자를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일본 NHK가 이날 보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7일 평양에서 방북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를 만났다. 이후 쇼이구 서기는 북한이 6000명을 추가 파병하기로 했다고 공개했다. 노동신문=뉴스1
하지만 유사시 러시아가 북한의 확실한 후견국이 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러시아는 지난 1월 이란과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조약’을 체결했지만, 푸틴은 “해당 협정은 군사 협력을 상정하지 않았고, 이란이 군사 지원을 요청한 적도 없다”(18일, 국제경제포럼)고 선을 사실상 그었다. 군사 개입 대신 중재자 역할만 희망한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북한이 지난해 6월 러시아와 맺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에는 군사 원조 조항이 명시돼 있다. 그러나 실제 전쟁 상황에서도 개입을 회피할 수 있는 사실상의 예외조항들이 곳곳에 포함돼 있다. 푸틴의 판단에 따라 언제든 조약을 저버릴 수 있는 셈이다.
한편 북·러 조약 체결 1주년이 되는 이날 외교부 당국자는 “북한과 러시아가 조약을 근거로 파병 등 불법 협력을 정당화하며 유엔 안보리 결의를 지속 위반하고 있는 데 대해 엄중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불법적인 군사 협력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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