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난민 되길 선택하는 사람은 없어요"…한국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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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서울 중구 공익법센터 어필 사무실에서 만난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 카디제가 미소를 짓고 있다. 전율 기자
다른 사람들 눈에 우리가 바퀴벌레로 비치는 것 같았어요.
어디에도 머무르지 못하다가 한국에 와서 비로소 집을 찾은 이들이 있다. 바로 국내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이들이다. 세계 난민의 날(6월20일)을 앞둔 지난 18일 아프가니스탄 출신 카디제, 라미스(가명)를 각각 만나 난민으로서의 삶을 들어봤다.
“내 몸을 안전하게 눕힐 수 있는 집 찾아”
카디제는 이란에서의 자신이 바퀴벌레와 같았다고 말했다. 카디제는 아프간 소수민족인 하자라족으로, 이란에서 태어나 27살까지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하자라족이란 이유로 핍박을 받다가 맨발로 이란으로 도망쳤다.
카디제는 아프간 국적이란 이유로 본인 명의로 집을 살 수도 없고 일도, 공부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매일같이 경찰에 붙잡혀 아프간으로 강제 환송되는 악몽에 시달렸다고 했다. 2021년 탈레반이 집권한 이후로 공포는 더욱 커졌다. 그는 “탈레반 치하에서 여자로 태어난 것, 특히 하자라족 여자로 태어난 것은 죄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2021년 8월 22일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려는 아프간인들이 카불 국제공항 인근에 운집해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스트레스로 20대부터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는 카디제는 “살기 위해선 가족, 친구, 모든 것을 버리고 다른 나라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5일, 한국에 온 지 약 4년 6개월 만에 난민 인정 확정 판결을 받았다.
카디제는 한국에 오기 전부터 가수 god의 ‘길’을 반복해 들었다고 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라는 가사를 듣고 있으면 꼭 자기 이야기 같아서 눈물이 났다. 그는 정체성을 생각할 때마다 늘 혼란스러웠지만 한국에서 공부를 하며 “내가 누구인지 깨닫고 있다”고 했다. 여성 인권과 자유가 존중되는 나라여서 한국을 선택했다는 그는 “이제는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된다”며 “한국에 온 뒤로 옷도 많이 샀다” 말하며 웃었다.
늘 불안한 상황 속에서 연애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카디제는 이제 한국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미래를 꿈꾼다. 병원에서 일하며 아픈 이들을 도와주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현재 간호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난민으로 살아갈 때의 삶은 힘든 날이 행복한 날보다 훨씬 많았다”면서도 “그래서 항상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고 역설했다.
카디제는 한국에 와서 비로소 ‘집’을 찾았다. 그에게 집이란 비가 올 때 피할 수 있듯 내 몸을 안전하게 눕힐 수 있는 곳이다. 카디제는 변호사로부터 난민 소송 승소 소식을 듣던 날을 떠올리며 “’이제 나도 집이 생기겠구나’ 싶어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카디제는 “지금 아프간에서는 폭탄이 마치 비처럼 내린다”며 “안전한 곳에서 진짜 집에서처럼 살게 된 것을 감사한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공익법센터 어필 사무실에서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 라미스(가명)가 "NEVER STOP EXPLORING" 문구가 적힌 휴대전화 케이스를 보여주고 있다. 전율 기자
난민으로 인정 받기 위한 라미스의 시도는 진행형이다. 2023년 라미스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 입국했다. 가족들은 2021년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했을 당시 이른바 ‘미라클 작전’으로 한국에 먼저 들어왔다. 우리 정부는 현지 재건에 협력한 아프간인과 그 가족 391명을 군 수송기로 인천국제공항에 들여왔다. 이들은 난민이 아닌 한국 정부에 협력한 ‘특별공로자’ 자격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은 특별기여자로 분류됐지만 라미스는 성년 자녀라는 이유로 체류자격을 얻지 못해 그동안 아프간과 이란에 머물러야했다.
라미스는 “난민이 되길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난민으로서의 생활을 물 위의 배에 비유했다. 그는 “난민은 어쩔 수 없이 태어난 나라와 동네를 떠나는 사람들”이라며 “늘 불안하게 흔들리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집이란 “파밀”… 난민 인정은 끝이 아닌 시작
라미스는 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파밀”이라고 대답했다. 파슈토어(아프가니스탄의 공용어)로 가족이라는 뜻이다. 아프간에선 특히나 가족을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함께 살며 서로 돌봐주는 존재로 여긴다. 라미스는 “나이가 든 부모님 곁을 지킬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지금 우리 집은 가족이 있는 한국”이라고 말했다.
라미스는 인천출입국과 외국인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난민 불인정 결정 취소 소송에서 지난달 11일 승소했다. 인천출입국이 항소해 아직 소송이 계속되고 있다.
라미스는 “난민 인정을 받는 건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는 ‘NEVER STOP EXPLORING’이라는 문구가 적힌 휴대전화 케이스를 보여주며 “좋은 미래를 위해 안전한 나라로 왔으니, 이제 나만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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