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만년의 겸재가 공들여 그린 꽃과 개구리…‘화훼영모화첩’ 수리ㆍ복원 후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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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복원을 마친 '화훼영모화첩' 중 '추일한묘'(가을날 한가로운 고양이. 왼쪽)와 '서과투서'(수박과 도둑쥐). 겸재 정선의 '화훼영모화첩'이 대구 간송미술관에서 수리ㆍ복원 후 첫 공개됐다. 복원 과정에서 정선 만년의 작품이며 낱장으로 보관되던 그림들이 서로 연관된 소재들로 짝을 이루고 있음도 확인됐다. 사진 간송미술문화재단

맨드라미 핀 마당에 병아리 거느린 암탉, 붉게 열린 꽈리를 배경으로 화려한 깃털을 자랑하는 장닭이 짝을 이루고 있다. 수박 갉아먹는 쥐와 방아깨비를 쳐다보는 고양이, 오이밭의 참개구리와 바짝 엎드려 파리를 노리는 두꺼비도 나란히 펼쳐 놓고 비교하며 볼 수 있다.

대구 간송미술관 기획전 '화조미감' 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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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의 '화훼영모화첩' 중 '하마가자'(두꺼비와 가지. 왼쪽)와 '과전전계'(외밭의 참개구리). 오른쪽 개구리 등 줄무늬를 내는 데 금을 쓰는 등 고급 안료의 사용도 확인됐다. 사진 간송미술문화재단

만년의 겸재 정선(1676~1759)이 그린 ‘화훼영모화첩’이다. 지난해 개관한 대구 간송미술관 기획전 '화조미감'에 나왔다. 겸재하면 금강산일 텐데 ‘화훼영모화첩’의 소재는 장대한 명승이 아니다. 마당이나 채마밭 주변에 흔한 일상의 정경이다. 야외의 정물 속 생물의 움직임, 관계에서 드러나는 긴장감, 털 한 올 한 올 공들인 묘사, 화사한 색채가 보는 재미를 더한다. 공책만 한 작은 화폭에 세상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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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ㆍ복원되기 전의 '하마가자'와 '과전전계'. 장황(표구) 없이 낱장으로 보관돼 있었는데, 비단의 훼손이 심하다. 사진 간송미술문화재단

‘화훼영모화첩’은 신사임당의 ‘초충도’ 병풍(16세기), 조선 중기 화원 이징의 궁중 취향 수묵화조도인 보물 ‘산수화조도첩’(17세기)과 함께 전시됐다. 겸재의 화훼도는 오로지 먹만으로 그린 이징의 화조도보다 훨씬 시기가 앞선 신사임당의 초충도와 더 닮았다. 미술관 이랑 책임 학예연구사는 “노론이 득세한 18세기에는 신사임당 풍의 ‘초충도’가 널리 그려졌다. 정선이 율곡 이이를 따르는 율곡학파의 일원이라는 점도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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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일한묘'의 벌레 먹어 훼손된 비단을 메우고 색맞춤을 진행중인 모습. 사진 간송미술문화재단

16~18세기 대표 화조화첩의 만남은 ‘화훼영모화첩’의 수리ㆍ복원으로 가능했다. 2019년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예술 작품 보존 프로젝트’에 선정된 후 2년간 복원을 거쳤다. 2010년 시작,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사모트라케의 니케’, 미국 보스턴 미술관 소장 빈센트 반 고흐의 ‘농부가 일하는 들녘’ 등의 수리ㆍ복원을 후원해 온 프로젝트다. 한국 작품 후원은 처음이다. 한국 전통문화대학원 이상현 교수와 작업을 진행한 간송미술관 이하나 수리복원팀장은 “BOA 측 제의로 신청하게 됐다. 덕분에 개구리 등 줄무늬에 들어간 금을 비롯해 오래된 고급 안료를 구할 수 있었다”며 “장황(표구) 없이 낱장으로 있던 8점의 그림이 실은 좌우 화면이 대칭을 이루며 서로 호응하도록 배치돼 있음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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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초충도'(16세기) 10폭 병풍 중 '수박과 들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 간송미술문화재단

‘화조미감’에는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각 시대의 미감을 담은 화조화 37건 77점(보물 2건 10점 포함)이 전시 중이다. 화조화로도 문인정신을 나타낸 조선 중기, 세심한 관찰과 서정미로 황금기를 맞은 조선 후기, 탐미적 미감이 반영된 조선 말기까지 꽃과 새를 그린 화폭이 날아갈 듯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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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랭이꽃 핀 초여름 정원에서 고양이가 제비나비를 놀리고 있다. 단원 김홍도의 '황묘농접'(18세기). 털 한 올 한 올의 묘사 뿐 아니라 생물들과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긴장감 등 구도의 천재였다. 사진 간송미술문화재단

겸재의 ‘진경화조’는 단원 김홍도로 이어지며 더욱 빛난다. 패랭이가 피어난 뜰에서 나비를 쫓는 고양이(황묘농접ㆍ黃猫弄蝶)처럼 뛰어난 구도의 영묘화도 잘 그렸지만, 평범한 논 위로 백로 한 쌍이 날아가는 ‘백로횡답(白鷺橫畓)’도 돋보인다. 보물 ‘병진년 화첩’ 중 한 폭이다. 화면 밖으로 날아가는 새를 논에 선 다른 백로가 바라보고 있다. 우리 새와 산천의 사실적 묘사에 먼 배경을 과감히 생략해 시정을 북돋웠다. 단원의 대형 화조도 8폭 병풍도 처음으로 한데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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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공간이 좁아 한눈에 펼쳐 보여주지 못했던 단원 김홍도의 화조도 8폭 병풍(18세기, 사진 뒤)도 전시장에 나왔다. 사진 간송미술문화재단

미술관은 상설전 작품도 일부 교체했다. 2전시실에 단독 전시됐던 단원의 ‘백매’ 대신 조희룡의 ‘매화서옥’(19세기)을 걸었다. 가파른 절벽에 작은 집, 그 앞에 눈처럼 날리는 매화 꽃잎이 서정적이다. 매화에 묻혀 은거하고자 했던 조선 후기 문인들의 이상향이다. ‘화조미감’은 8월 3일까지, 성인 1만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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