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원화 스테이블 코인 기대감 커지지만, 부작용 다 막자니 “배보다 배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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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스테이블코인
정치권에서 핀테크 업체 등 비은행의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 허용을 골자로 한 입법 논의가 활발하다. 자기자본 5~10억원이면 시장 진입이 가능하도록 하되 범죄에 악용되거나 금리ㆍ환율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진 않도록 관리ㆍ감독하겠다는 게 주된 골자다. 디지털 자산 기반 산업 활성화와 성장 촉진을 위해선 원화 스테이블 코인이 필요하지만, 부작용을 다 막을 순 없는 데다 관련 행정비용도 만만치 않아 ‘배보다 배꼽’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주요 은행장은 이날 오후 비공개 간담회에서도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둘러싼 의견을 교환했다. 이 총재는 그간 공식 석상에서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에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은행부터 발행을 허용해 효용성을 확인한 후 (비은행까지) 범위를 넓혀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스테이블 코인이란 비트코인처럼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발행하지만, 법정화폐나 국채에 가치를 연동해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디지털 화폐다. ‘저금리 약달러’를 유도하려는 트럼프 미 행정부는 달러 스테이블 코인을 전략적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전 세계적으로 달러 스테이블 코인이 확산하면 미 국채 수요가 증가해 국채 금리를 낮출 수 있다. 이는 동시에 약달러를 유발하지만,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며 달러 수요가 늘기 때문에 기존의 달러 패권을 유지하는데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통화주권 확보 vs. 원화 수요 제한적=미 재무부 차입 자문위원회(TBAC)는 달러 스테이블 코인 시장 규모가 지난 5월 2429억 달러에서 2028년 약 2조 달러 규모(25년 대비 8.3배)로 성장할 거라 전망했다. 국내에서도 은행 거래가 어려운 외국인 노동자에게 달러 스테이블 코인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등 수요가 늘고 있다. 이에 대응할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만들어 ‘통화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정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 행정부가 달러 스테이블 코인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상황에서,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은 통화주권 측면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이제 스테이블 코인 허용을 전제로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데 논의를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달러와 달리 원화 스테이블 코인 수요는 제한적일 거란 관측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달러와 원화의 수요ㆍ공급은 각각의 메커니즘이 있기 때문에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한다고 해서 달러 패권에 대항하긴 어렵다”며 “아르헨티나처럼 자국 통화에 대한 신뢰가 낮은데 개인이 달러를 보유하진 못하게 할 때 달러 스테이블 코인이 유용한 가치 저장 수단이 되는 건데, 이런 경우에도 달러 대신 원화로 갖고 싶어 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원화 스테이블 코인이 생기면 달러 스테이블 코인을 원화로 바꾸는 게 더 쉬워지기 때문에, 오히려 국내 거주자들의 달러 스테이블 코인 수요를 더 늘릴 거란 우려도 있다.
◇거래 편의성 증가 vs. 자본 유출 가속화=국내 거주자 입장에선 달러 혹은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가장 큰 효용성을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해외 가상자산거래소에서 비트코인 등을 거래하고 싶을 때 굳이 원화를 달러로 바꾸지 않고도 손쉽게 사고 팔 수 있다. 또 무역거래나 해외 송금 시 시간과 수수료를 절약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이점이 자본 유출이나 자금 세탁 범죄에 악용될 우려를 감수할 만큼 크냐는 것이다. 한국은 기축통화국인 미국과 달리 국내 기업이나 개인이 해외로 거액을 송금할 때 감독 당국이 모니터링하고 있다. 만약 북핵 위협이 심화할 경우 해외로 자본이 유출되면서 외환위기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원화 스테이블 코인에도 외환거래법을 적용하면 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일단 원화가 디파이(DeFiㆍ탈중앙) 생태계에 편입되면 거래 내역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어려워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설 화폐’ 대거 유통 시 시장 교란=민간에서 발행하는 원화 스테이블 코인은 사실상 ‘사설 화폐’로, 발행하는 만큼 ‘시뇨리지(화폐 주조 차익)’가 생긴다. 발행사가 고객이 맡긴 현금으로 단기 채권을 산다면 그 수익률만큼 이익이 나는 구조다. 코인 발행사들이 높은 금리를 내세워 원화를 유치한다면, 한은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낮추더라도 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 등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떨어진다. 만약 특정 발행사 부도로 공포가 생겨 ‘코인런’이 발생한다면, 전통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발행량을 제한하자는 의견도 나오지만, 이는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 취지 자체를 퇴색시키는 거란 반발도 만만치 않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스테이블 코인 제도 마련에 드는 행정ㆍ감독비용을 고려하면, 차라리 국내 핀테크ㆍ플랫폼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 지원금을 늘리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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