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부작용 막자니 ‘배보다 배꼽’…원화 스테이블 코인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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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입법 논의 활발

정치권에서 핀테크 업체 등 비은행의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 허용을 골자로 한 입법 논의가 활발하다. 자기자본 5억~10억원이면 시장 진입이 가능하도록 하되 범죄에 악용되거나 금리·환율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진 않도록 관리·감독하겠다는 게 주된 골자다. 특히 디지털자산 싱크탱크에 몸담으며 그간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필요성을 역설해온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차관이 대통령실 정책실장으로 임명되면서 법제화에 속도가 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스테이블 코인이란 비트코인처럼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발행하지만, 법정화폐나 국채에 가치를 연동해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디지털 화폐다. 미 재무부 차입 자문위원회(TBAC)는 달러 스테이블 코인 시장 규모가 지난 5월 2429억 달러에서 2028년 약 2조 달러 규모(25년 대비 8.3배)로 성장할 거라 전망했다.

국내에서도 은행 거래가 어려운 외국인 노동자에게 달러 스테이블 코인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등 수요가 늘고 있다. 이에 대응할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만들어 ‘통화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정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데 논의를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달러와 달리 원화 스테이블 코인 수요는 제한적일 거란 관측이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달러와 원화의 수요·공급은 각각의 메커니즘이 있기 때문에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한다고 해서 달러 패권에 대항하긴 어렵다”며 “오히려 달러 스테이블 코인을 원화로 바꾸는 게 더 쉬워지기 때문에, 국내 거주자들의 달러 스테이블 코인 수요를 더 늘릴 거란 우려도 있다”고 전했다.

국내 거주자 입장에선 원화 스테이블 코인이 발행되면 해외 가상자산거래소에서 비트코인 등을 거래하고 싶을 때 더 손쉽게 사고 팔 수 있다. 또 무역거래나 해외 송금 시 시간과 수수료도 절약한다.

논란이 생기는 건, 이런 이점이 자본 유출이나 자금 세탁 범죄에 악용될 우려를 감수할 만큼 크냐는 것이다. 한국은 기축통화국인 미국과 달리 국내 기업이나 개인이 해외로 거액을 송금할 때 감독 당국이 모니터링하고 있다. 또 만약 국내 정세가 불안해지면 과거 외환위기 때 이상의 속도로 자본이 한국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주요 은행장은 이날 오후 비공개 간담회에서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둘러싼 의견을 교환했다. 이 총재는 그간 공식 석상에서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에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은행부터 발행을 허용해 효용성을 확인한 후 (비은행까지) 범위를 넓혀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한은에선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민간에서 발행하는 원화 스테이블 코인은 사실상 ‘사설 화폐’로, 발행하는 만큼 ‘시뇨리지(화폐 주조 차익)’가 생긴다. 발행사가 고객이 맡긴 현금으로 단기 채권을 산다면 그 수익률만큼 이익이 나는 구조다.

코인 발행사들이 높은 금리를 내세워 원화를 유치한다면, 한은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낮추더라도 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만약 특정 발행사 부도로 공포가 생겨 ‘코인런’이 발생한다면, 전통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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