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버티고 뛰다보니 왔다, 오현규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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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6일 벨기에로 출국하는 축구대표팀 오현규는 2주 남짓한 짧은 휴식기에도 새 시즌 대비 개인 훈련으로 스케줄표를 꽉 채웠다. 김경록 기자
“지난 시즌의 좋았던 컨디션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아서요. 새 시즌을 어서 빨리 시작하고 싶은 설레는 마음이죠.”
한국 축구대표팀 공격수 오현규(24·헹크)는 23일 서울 방배동 S&C피지컬센터에서 체력 훈련을 했다. 벨기에로 출국하기 전날인 25일에는 그라운드 훈련을 예약해놨다. 2주 남짓의 짧은 휴식기에도 훈련뿐인 스케줄. 그래도 그가 신나는 이유다.

이라크전에서 전진우(왼쪽)와 ‘축구화 닦기’ 세리머니를 재연한 오현규. [AFP=연합뉴스]
오현규는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에서 4골을 터트렸다. 지난 6일 이라크 원정경기에서는 전진우(26·전북)와 골을 합작한 뒤 ‘축구화 닦기’ 세리머니를 재연했다. 2022년 수원 삼성에서 함께 뛸 때 했던 세리머니다. 그는 소셜미디어에 전진우와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사진을 올리며 ‘진우 형 우리 꿈이었지’라고 적었다. 그는 “진우 형과 ‘언젠가 (대표팀에) 갈 수 있지 않겠냐. 우리라고 왜 못 가’라고 얘기를 나눴다. 월드컵 본선에서 진우 형이 어시스트해 내가 골을 넣는다면.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오현규가 SNS에 전진우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함께 찍은 사진과 ‘진우형 우리 꿈이었지’란 글을 남겼다. [사진 오현규 인스타그램]
오현규는 고교 1학년 때 왼쪽 무릎 십자인대를 다쳤다. “(십자인대가) 완전히 끊어진 게 아니라 10~20%는 엉겨 붙어 있으니 자연 치유해보자”는 의사 얘기에 칼을 대지 않았다. 19살에 상무에 입대한 그는 훈련소를 마치고 무릎이 너무 아파 다시 병원을 찾았다. “십자인대가 전혀 없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그는 “수술하면 의가사 제대라고 했지만, 군대에 간 이상 이겨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기하게도 십자인대가 없는 데도 주력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다쳤는데도 이 정도인데, 십자인대가 있었으면 더 잘 달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벨기에에선 지치지 않는 그가 기계 같다며 ‘머신’으로 부른다.
지난 시즌(2024~25) 오현규는 주로 교체 출전했는데도 12골을 터뜨렸다. 610분에 9골(리그), 즉 68분당 1골로 벨기에 주필러리그의 출전시간 대비 골 전환율 1위다. 현지 언론도 “유럽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위험한 수퍼 조커”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는 “선발보다 교체 출전 경기가 더 많아 교체라면 도가 트였다. 경기 흐름을 읽고 들어가려고 한다. 또 상대 수비수가 지치고 힘든 내색을 보일 때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손목시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골 세리머니다. 그는 “시간을 봐라. 이런 시간에도 이렇게 구애받지 않고 또 해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오현규가 손목시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골 세리머니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토르스텐 핑크 헹크 감독은 손흥민(토트넘)의 함부르크 시절 은사다. 오현규는 “지난해 헹크로 가기 전에 흥민이 형이 ‘핑크는 좋은 감독이고 널 좋아할 것’이라고 조언해줬다”고 전했다. 케빈 더 브라위너(나폴리)는 헹크를 거쳐 빅클럽으로 간 대표적 선수다. 다음 시즌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이 유력한 톨루 아로코다레 대신 그가 주전을 꿰찰 전망이다. 팀이 유로파리그에 진출해 일정이 빡빡하다. 그는 “팀의 주축으로서 모든 대회에서 다 뛰고 싶다. 20골이 많다 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성에 차지 않을 듯하다. 지난 시즌 많은 시간을 뛰지 않고도 12골이니 새 시즌에 풀타임 뛴다면 그 2배는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현규(오른쪽)는 2022년 카타르월드컵 당시 등 번호도 없는 예비 선수였다. [연합뉴스]
3년 전 2022년 카타르월드컵 당시 오현규는 등 번호도 없는 예비선수였다. 부상 재활 중인 손흥민이 뛸 수 없을 경우에 대비해 대표팀과 동행했다. 그는 조별리그 3차전 포르투갈전 직후 휴대전화로 우루과이-가나전을 지켜보다가 결과를 손흥민 등에게 알리는 일을 했다. 그는 “이젠 다른 팀 결과에 상관없이 올라가고 싶다. 등 번호를 받고 큰 무대에서 뛴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지금 대표팀에서 등 번호 9번을 달고 뛴다. 다른 누군가도 꿈꾸는 이 자리를 유지하려면 내가 더 잘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집이 어려웠던 오현규는 회비를 안 내는 프로 산하 팀(수원 매탄중·고)에 들어가려고 죽기 살기로 공을 찼다. 어느덧 대표팀 주전 공격수가 된 그의 시선은 2026 북중미월드컵을 향한다. 그는 “6살 때 집에 2002년 월드컵 한국 경기 CD가 있었다. 황선홍 감독님의 폴란드전 골 장면을 다시 보려고 수없이 되감기 버튼을 누른 기억이 있다. 황 감독님처럼 월드컵에 가서 꼭 골을 넣고 싶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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