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신군부 발포명령 거부한 ‘5·18 안병하’ 연극으로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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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안병하 치안감이 지니고 있던 5·18 관련 사진과 자료. [뉴스1]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한 고(故) 안병하 치안감을 다룬 연극이 80년 이후 45년 만에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23일 광주광역시와 극단 ‘도깨비’ 등에 따르면 80년 5·18 당시 광주·전남의 치안 책임자였던 안 치안감을 다룬 연극 ‘경찰은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눌 수 없다’가 지난 21일, 22일 광주시 서구 서빛마루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다.
안 치안감은 5·18 당시 전남도경찰국장으로 재직하던 중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라’는 전두환 신군부의 명령을 거부했다. 그는 80년 당시 경찰이 소지했던 무기를 회수한 뒤 부상자들에 대한 치료와 음식 등을 제공했다가 그해 5월 직위해제됐다.
연극 ‘경찰은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눌 수 없다’는 한 취재기자가 안 치안감을 취재하면서 과거 속으로 들어가는 얘기를 담았다. 그는 5·18 당시 안 치안감이 시민과 경찰을 지키기 위해 발포명령을 거부한 상황을 알게 된 후 삶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연극은 이재의 작가의 ‘안병하 평전’을 원작으로 했다.
안 치안감은 5·18 이후 ‘직무유기 및 지휘 포기 혐의’로 보안사령부에 끌려간 뒤 고문을 받고, 후유증에 시달리다 88년 10월 10일 숨졌다. 그는 숨지기 전인 88년 9월 말~10월 초쯤 5·18의 발생 원인과 당시 광주의 상황을 자필 메모로 남기기도 했다. 유족들은 안 치안감 사망 후 자택 장롱 밑에서 발견된 글이 사실상 고인의 유서가 된 것으로 본다.

‘경찰은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눌 수 없다’ 연극 포스터. [뉴시스]
그는 자필 비망록을 통해 ‘계엄군의 과격한 진압과 악성 유언비어 유포, 김대중 전 대통령 구속에 따른 시민 자극’ 등을 5·18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5·18은 신군부가 과격한 진압과 유언비어 유포해 시민들을 자극해 발생했다’라는 취지다.
고인은 비망록에서 ‘(80년) 5월 16일까지 시위는 평온했으나 17일 자정 이후 계엄령 확대, 공수부대 투입과 진압 시작, 이에 자극받은 시민들의 무장으로 상황이 악화했다’고 적었다. ‘5월 22일 옛 전남도청 앞에서 군의 과격한 진압에 항의하던 경찰국 과장이 군인에게 구타당함’이라는 글도 남겼다.
비망록에는 5·18 당시 고인이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했음을 알리는 글들도 있었다. 그는 시위에 대응하는 경찰에 ‘절대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경찰 희생자가 있더라도), 일반 시민 피해 없도록, 주동자 외에는 연행치 말 것(교내에서 연행 금지), 경찰봉 사용 유의(반말, 욕설 엄금)’라고 기록했다.
계엄군 진압 후에는 ‘주동자 검거 등 중지, 군에게 인계받는 부상자 치료, 식사제공’ 등 시민들을 적극 지원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아울러 그는 ‘무경찰 사태에서도 시민군에 의한 강력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으며, 치안도 유지함’이라는 글도 남겼다.
안 치안감은 사망 15년 후인 2003년 광주민주유공자로 인정받은 데 이어 2006년에는 국가유공자가 되면서 신군부에 의해 실추된 명예를 회복했다. 경찰청은 2017년 안 치안감을 ‘올해의 경찰영웅’으로 선정하고, 고인이 생전 근무한 전남경찰청에 추모 흉상을 건립했다. 지난 10일에는 안 치안감의 배우자를 포함한 유족 4명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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