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역사와 현대를 잇는 ‘무형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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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경. 건축전문사진작가 박영채·김종오, 민현준 촬영, [사진 MPART]
어디까지가 미술관이고, 어디부터가 마당이고 또 길인가.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하 서울관)은 주변과의 경계가 모호하다. 건물 앞 도로는 미술관 마당과 맞닿아 있고, 마당 끝 길은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뒤편 골목으로 이어진다. 납작하고 단정한 건물 역시 존재감을 낮추고 있다. 그래서일까. 2013년 11월에 개관했지만,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지금 이 미술관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잘 모른다. 10여 년 전 건립 당시만 해도 이곳엔 수많은 난제가 얽혀 있어 새로운 미술관을 짓기 쉽지 않은 땅이었다는 것을.

서울박스의 대형 창으로 옥첩당이 보이는 미술관 내부. 터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건축전문사진작가 박영채·김종오, 민현준 촬영, [사진 MPART]
◆‘무형(無形)의 미술관’=“형상을 앞세우기보다는, 서울 중심부의 역사와 문화 위에 ‘미술관’이라는 기능을 녹여내는 것이 목표였다.” 서울관을 설계한 민현준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 교수이자 건축사사무소 엠피아트(MPART) 대표 건축가는 이곳의 건축 개념을 이렇게 압축했다. 계획 당시 목표했던 연간 관람객 150만 명이 넘어선 최근, 그는 미술관의 설계와 건축 과정을 되짚으며 책 『셰이프리스 미술관(Shapeless Museum)』(열화당)을 펴냈다. 부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건축 십 년 후의 기록’이다. 설계와 공사, 개관 이후 전시에 이르기까지 미술관 건축의 의미와 가치를 그의 시선으로 풀어낸 이야기가 담겼다.
‘셰이프리스 미술관’은 민 교수가 이끄는 설계팀이 공모 단계부터 일관되게 제안해 온 개념이다. 건축 형상을 강조하기보다는, 열린 공간들을 배열해 주변 맥락과 어우러지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둔 접근이었다. 그는 서울관이 “우리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살려주는 장소인 동시에 미술 관람이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스며드는 곳이 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종친부 가까이서 바라본 서울관 후면. 마당과 길이 경계 없이 이어진다. 건축전문사진작가 박영채·김종오, 민현준 촬영, [사진 MPART]
◆‘장소특정적 미술관’=‘무형(형상을 자제함)’은 “역사가 켜켜이 쌓인 터”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에 대한 건축가의 해법이었다. 경복궁 옆에 자리한 이 부지는 조선시대에는 종친 관련 사무를 관장하던 종친부(宗親府)가 있었고, 일제 강점기엔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현재 붉은 벽돌 건물)이 있었다. 또 1971년부터 30여 년 동안 국군기무사령부와 육군통합병원(대통령 전용병원으로 현 교육동 자리)이 사용하면서 일반 시민들의 출입이 제한되었던 공간이기도 했다. 과거 최고 권력자가 부하가 쏜 총탄을 맞고 제3공화국이 막을 내린 응급실이 있던 곳이자, 제5공화국이 시작한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터 위에, 민주화 이후의 시대 정신을 담아 미래 지향적인 미술관을 세우는 게 큰 과제였다”는 민 교수는 “장소의 맥락을 살리기 위해 건물의 형태보다 재료와 공간 배열에 주안점을 뒀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전통 건축에 쓰이는 기와를 그대로 쓰는 대신, 기와를 은유한 곡면형 테라코타 타일을 사용해 전통과 연결되게 했다. 또 백색에 가까운 고령토를 재료로 써 따뜻하고 밝은 분위기로 반전을 시도했다.
또 종친부의 경근당이 미술관 외부 배치의 중심에 자리 잡게 했고, 내부의 서울박스에는 대형 창을 내 옥첩당이 훤히 보이도록 했다. 이 창은 전통과 현대의 절묘한 조화로 관람객들이 즐겨 사진을 찍는 곳이기도 하다. 민 교수는 “터에 담긴 역사와 결합한 서울관은 세계 어디에서도 유사하게 지어질 수 없다는 점에서 진정한 ‘장소특정적 미술관’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관 건축 과정을 담아 『셰이프리스 미술관』을 펴낸 건축가 민현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군도(群島)형 미술관’=건축가로서 서울관 설계에서 그가 가장 자부하는 것은 “내부 전시 공간에 대한 도전”이다. 기둥이 없고 층고가 높아 규모가 큰 설치가 가능한 전시실(현재 론 뮤익 전시가 열리는 5전시실), 전시와 공연의 경계를 실험하는 작품을 위한 블랙박스 공간(멀티 프로젝트 홀) 등은 그가 “새롭고 과감한 전시들을 염두에 두고” 만든 곳이다.
그러나 정해진 순서대로 전시를 보는데 익숙한 관람객에게 서울관은 쉬운 곳은 아니다. 이것도 건축가의 전략이었다. “전시실 배열에서도 관람 동선을 정해주기보다는 느슨한 그물망처럼 여러 갈래로 나뉘게 설계했다”는 그는 “관람객이 보다 자유롭게 공간을 탐험하고, 여러 경로로 접근 가능한 구조가 되길 바랐다”고 했다. 이른바 ‘군도형 미술관’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때 폐쇄와 불통을 상징했던 터가 기나긴 논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변모해온 것처럼, 앞으로 이곳이 얼마나 새로운 예술과 다양한 사람들로 채워질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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