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댐 방류하자 순식간에 캠핑장 잠겼다…극한호우 대응 위해 복제한 '쌍둥이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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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water(한국수자원공사) 물종합상황실에서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해 댐 시설 및 관련 하천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가상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대청댐 방류로 하천 수위가 상승하자 홍수 위험을 알리는 경보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사진 K-water

무섭게 퍼붓는 비에 금강 대청댐의 수위가 점점 한계 수준까지 차올랐다. 마냥 물을 가둬둘 수는 없기에 수문을 열어 방류량을 늘렸다. 하천 수위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세종시 금강변에 있는 캠핑장이 순식간에 물에 잠겼다. 홍수 위험이 커지자 하천 주요 지점에서는 경보 시스템이 작동해 대피 방송이 나왔다.

지난 16일 대전시 한국수자원공사 물종합상황실. ‘빅보드’로 불리는 가로 18.6m, 세로 3.3m 초대형 화면에 이런 긴박한 장면이 펼쳐졌지만, 실제 상황은 아니다. 현실 세계를 복제한 디지털 가상세계에서 여름철 홍수 상황을 시뮬레이션한 결과다. 극한호우로 댐의 방류량을 늘렸을 때 결과를 예측하고, 최적의 대응 방안을 찾고자 3차원 공간에 또 하나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이다.

집중호우가 예보되면 언제까지 방류를 안 하고 최대한 버틸 수 있을지 반복적으로 시뮬레이션합니다. 만약 방류로 인해 캠핑장 일부가 침수된다면 미리 대피 조치와 출입 차단을 할 수 있도록 관계 기관에 정보를 주죠.

김진곤 수공 디지털물관리부 차장이 화면을 가리키면서 설명했다. 그가 구축한 디지털 트윈 기반의 물관리 플랫폼 ‘디지털 가람플러스’는 2021년 섬진강댐에 첫 도입 됐다. 1년 전 역대 최장인 55일 동안 장마가 이어지면서 섬진강 유역에 대규모 홍수피해가 발생한 게 계기가 됐다. 이후 5대강 본류 유역을 넘어 지난해부터는 전 국토로 확대 적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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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트윈 기술로 구현한 서울 한강변 모습과 실시간 수위를 확인할 수 있는 CCTV 영상. 사진 K-water

김 차장이 디지털 트윈 기술로 구현한 한강을 화면에 띄웠다. 롯데월드타워부터 잠실종합운동장까지 강을 따라 3차원으로 복제된 도시의 모습과 함께 실시간 잠수교 수위를 보여주는 CCTV 영상, 강우량·방류량 등 각종 데이터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그는 “이런 고해상 지형이나 물 관리 시뮬레이션 자료를 가볍게 보여주는 게 디지털 트윈 기술의 핵심”이라며 “건물이나 도시 어느 부분이 잠기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잦아진 극한호우…디지털 트윈으로 예측해 대응

디지털 트윈 같은 첨단 물 관리 기술이 중요해진 건 기후변화로 인해 기존의 예측 범위를 뛰어넘는 극한호우가 잦아졌기 때문이다. 수공에 따르면, 2023년 장마 기간에 전국 20개 다목적댐 중 16개 댐이 역대 최대 강우량을 갱신했다. 지난해에는 장마철(6월 26일~7월 26일)에 비가 집중적으로 쏟아지면서 다목적댐 평균 강우량(665㎜)이 평년(313㎜)의 두 배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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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15일 충청권에 홍수경보가 발령되는 등 전국 곳곳에 물 폭탄이 쏟아지면서 대청댐 수위가 계속 높아지자 수문 6개를 모두 열고 초당 3000톤의 물을 하류로 방류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장마철이 되면 댐은 홍수의 방어선 역할을 한다. 하지만, 댐 용량 한계로 빗물을 모두 저장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일부를 흘려보내야 한다.

문제는 댐이 ‘200년 빈도’의 집중호우를 방어할 수 있도록 설계된 반면, 하류의 하천은 통상 ‘100년 빈도’의 집중호우를 견디도록 제방을 쌓는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로 인해 극한호우가 내리는 상황에서 댐 방류량을 늘리면 자칫 하천이 범람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댐 하류의 홍수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방류량을 조절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윤석대 수공 사장은 “기후위기로 예측을 벗어나는 극한 상황에 대비해 디지털 트윈을 적용하고, 데이터 기반의 신속하고 정밀한 의사결정 체계를 고도화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유관기관과 협력을 실시간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홍수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대응 체계를 견고히 운영해 국민 안전을 지켜 가겠다”고 말했다.

홍수 피해 사우디, 한국형 디지털 트윈 도입

홍수로 고통받는 해외 국가들도 한국의 첨단 물 관리 기술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제2의 도시인 제다시(市)에 디지털 트윈 물관리 기술을 수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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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자원공사가 사우디 제다에 수출한 '디지털 트윈 시스템'. 홍수 시뮬레이션을 통해 침수 지역을 예측할 수 있다. K-water 제공

사우디는 연 강수량이 70㎜에 불과한 대표적인 사막 지대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1년 치 강우량을 넘어서는 극한호우가 몇 시간 만에 쏟아지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물 재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해안도시인 제다는 집중호우 발생률이 높을 뿐 아니라 난개발로 인해 배수로 역할을 하는 ‘와디(간헐천)’의 기능도 무력화된 상태다.

이에 수공은 네이버 등과 함께 제다시를 대상으로 디지털 트윈 플랫폼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수공은 “현지 조사와 분석을 바탕으로 홍수 시뮬레이션과 예·경보 시스템을 단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며 “향후 제다에 대한 사업 성과를 기반으로 수도 메카와 메디나 등 사우디 타지역으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했다.

“기후변화 손실 69% 물 때문” 과학적 대응 중요

디지털 트윈 물관리 기술은 정부뿐 아니라 민간 산업에도 확대되는 추세다. 기후변화로 인한 물 위기가 기업의 재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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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태풍 ‘힌남노’로 큰 피해를 입은 포항제철소 연주공장에서 직원들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장 조사 분석기관인 글로벌워터인텔리전스(GWI)는 향후 10년간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 추정액 중 69%가 ‘물 관련’ 사안일 정도로 물 재해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미국, 유럽 등은 기업들의 기후 관련 공시를 의무화하고 있으며, 홍수·가뭄 등 물 관련 리스크를 평가해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준범 프랑스 트루아공대 교수는 “스위스는 2100년까지 기후변화를 예측해 댐과 제방을 설계하고 있다”며 “한국도 기후 기술을 가진 기업과 정부 등이 협력해 과학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선제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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