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러브레터’ 넘어선 日영화 ‘오세이사’ 원작 소설가, “한국 팬들에게 작가로 살아갈 힘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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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초연된 뮤지컬 '오세이사'의 한 장면. 가미야 도루(오른쪽, 윤소호)와 히노 마오리(장민제)의 서사와 설정은 그대로 가져왔고, 와타야 이즈미라는 친구에 더해 새로운 주인공의 친구 사에구사 켄토가 등장한다. 사진 라이브러리컴퍼니, 유니버셜라이브
이치조 미사키(一條岬)는 모습을 드러낸 적 없는 작가다. 그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2021, 이하 『오세이사』)로 일본 라이트 노벨계에 혜성처럼 나타났다. 현재까지 그의 책이 일본에선 스핀오프 소설을 포함해 약 80만 부, 한국에선 단독으로 약 50만 부가 판매되며 ‘오세이사 열풍’을 불러 일으켰지만, 침묵을 지켰다.
“작가보다 작품이 앞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품에 대해 깊게 이야기해 볼 기회가 왔으면 했다.”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의 한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만난 이치조 미사키는 이런 이유를 들었다. 한국 언론과의 첫 인터뷰였다. 그의 멋쩍어하는 모습에 소설 속 주인공 가미야 도루가 겹쳤다. 오대오로 단정히 넘긴 머리를 한 그는 차고 있던 반지를 모두 빼고, 시계를 풀어 뒤집어놓았다. “시간을 신경 쓰지 않고 인터뷰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본업이 따로 있어 얼굴, 나이 등 신상정보를 밝히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치조 미사키의 ‘미사키’는 본명에서 따왔다”며 “글자 수를 고민하다 이치조라는 이름을 앞에 붙였다”고 설명했다.

책 『오세이사』의 표지. '모르는 남자애의 모르는 여자애'라는 첫 장의 제목처럼, 이 소설은 가미야 도루가 어느날 처음 보는 여자아이 히노 마오리에게 고백하며 시작된다. 사진 오팬하우스
- 작가가 된 계기가 있나.
- “20대 후반일 때, 건강했던 친구가 갑작스럽게 죽는 일이 있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나서야 그 사람과 함께하던 일상이 얼마나 귀중했는지 알게 됐다. 이 이야기를 꼭 쓰고 싶었다. 기본적으로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관심이 많다. 시나 철학사상, 타인과의 관계 등을 영감으로 삼아 글을 쓴다.”
『오세이사』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는 18세 소녀 히노 마오리와, 얼떨결에 그에게 고백한 18세 소년 가미야 도루의 연애담. 매일 자기 전의 기억을 잃는 마오리, 그걸 알면서도 마오리와 행복해지고 싶어하는 도루의 애달픈 이야기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 『오세이사』 후기에서 “잃을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전한 바 있다.
- “그 마음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우리는 살면서 어떤 형태로든 ‘상실’을 겪게 된다. 이 경험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대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달을 기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 메시지에 많은 독자들이 공감해주셨다”
『오세이사』에서 작가가 집중한 감정은 사랑이다. “소년과 소녀의 사랑이 커지는데, 매일 그것을 잃어버린다면 어떨까”하는 질문을 발전시켜, 사랑하는 이를 매일 처음 다시 만난다는 설정을 넣었다. 작가는 이 이야기로 2019년 일본의 라이트노벨 공모전인 전격소설대상에서 미디어워크스문고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특히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동명 일본영화의 국내 인기가 대단했다. 2022년 일본에서 개봉한 지 1달 만에 100만명의 관객을 돌파한 이 영화는, 국내에선 개봉 약 2달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총 121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이는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개봉한 일본 실사영화 중 흥행 1위로, 재개봉 실적을 제외하면 이와이 슌지 감독의 기념비적 로맨스 영화 ‘러브레터’(1995, 약 115만명)를 뛰어넘은 성적이다. 인기에 힘 입어 한국 정서에 맞게 각색한 한국영화 ‘오세이사’도 이번달 촬영을 시작했다.

뮤지컬 '오세이사'는 영화화 되기도 한 소설의 성격에 맞게 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무대를 디자인했다. 배경에 등장하는 메모는 히노 마오리가 자신의 '선행성 기억상실증'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적어둔 내용이다. '책상 위의 노트북을 열어봐', '잠들기 전에 꼭 일기를 쓸 것' 등이 적혀있다. 사진 라이브러리컴퍼니, 유니버셜라이브
소설과 영화의 인기는 ‘오세이사’를 무대 위로도 올렸다. 국내 제작사인 라이브러리컴퍼니와 유니버셜라이브의 뮤지컬을 통해서다. 13일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초연 개막했고, 8월 24일까지 공연된다. 이치조 미사키는 “놀랍고, 기쁜 소식이었다”며 “나는 소설과 달리 영화나 뮤지컬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연출자들을 존중하려 한다. 캐릭터성에 대한 피드백만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세이사 외에도 『네가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2021), 『오늘 밤, 거짓말의 세계에서 잊을 수 없는 사랑을』(2023), 『이별하는 방법을 가르쳐줘』(2024) 등 라이트노벨 장르의 책을 냈다. 공통점이 있다면, 주인공들의 설정이다.
- 『오세이사』는 물론, 이후에 발표한 소설 속 주인공들은 각자의 결핍을 가지고 있다.
- “신체적 제약이나, 상처를 안고 있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민감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사의 장치로써 이용하기보단, 그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을 이야기하려 한다.”
- 『오세이사』속 인물들은 어떻게 구상했나. 본인과 비슷한 점이 있다면.
- “도루는 스스로 요리를 하고 위생 관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랑 비슷하다. 내가 어쩌면 이렇게 살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상상하며 만든 캐릭터다. 마오리는 매일 기억이 사라짐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으로 보려 하는 사람이다. 그 태도를 일종의 의지라고 보는 내 가치관이 담긴 캐릭터다.”
- 『오세이사』의 스핀오프 『오늘 밤, 세계에서 이 눈물이 사라진다 해도』(2022)도 나왔는데, 앞으로 『오세이사』의 세계관을 확장할 계획이 있나.
- “편집부와 상의를 해야겠지만, 나는 확장하고 싶다. 등장인물 중에선 소설가인 도루의 누나를 다뤄보고 싶다.”
그가 원한대로 숨 가쁘게 작품 이야기를 하고 나니, 이치조 미사키가 한국까지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일본에서도 글을 사랑해 주시는 독자들이 있었지만, 한국에서의 사랑을 매우 크게 느꼈다. 여러분들에게 작가로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마음 한켠에 한국 독자들을 생각하며 글을 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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