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4년 장사 접고 이력서 내니 "공백기 기네요"…돌고돌아 재창업 [자영업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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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는 의미의 창업(創業). 한국은 아이디어·기술이 바탕이 된 창업보다 생활비 마련을 위한 생계형 창업이 주를 이룬다. 한국에 유독 자영업자가 많은 배경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취업자 대비 자영업자 비율(2023년 기준)은 23.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6.6%)을 웃돈다. 미국·일본·독일은 10% 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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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주요 상권의 상가 공실률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일대 빈 상가. 김경록 기자

충분한 준비나 차별화 전략 없이 창업에 나서다 보니 음식·숙박업같이 진입 장벽이 낮은 분야로 몰린다. 문제는 숙박·음식업이 경기에 민감한 업종이라 불황기에 직격탄을 맞는다는 점이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최근 자영업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월평균 매출은 2023년 1231만원에서 올해 854만원으로 30.6% 감소했다. 특히 숙박·음식업은 같은 기간 2130만원에서 569만원으로 73.3% 급감했다.

폐업률도 높다. 한국소비자인증에 따르면 국내 자영업자의 창업 5년 차 폐업률(2023년 기준)은 66.2%다. 숙박음식점업은 77.2%로, 제조업(57.2%)이나 서비스업(44.6%)을 크게 웃돌았다. 권세환 국방창업기술진흥원 이사장은 “창업 상담을 하다 보면 ‘요즘 카스테라가 잘 팔린다더라’ ‘요거트 가게 앞에 줄을 섰더라’는 식으로 막연한 정보만으로 주변 상권 분석이나 계획 없이 일단 차리고 보자는 식이 많다”며 “임금 근로보다 오래 일하고 많이 벌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창업하니 폐업이 빈번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선진국일수록 산업 구조의 고도화와 함께 임금 근로 중심으로 전환되는 흐름 보이지만, 한국은 아직 후진국형 구조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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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특히 주목할 것은 고령 창업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60대 이상 고령 자영업자는 2019년 171만명에서 2024년 210만명으로 늘었다. 전체 자영업자 중 60대 이상 비중도 30%에서 37%로 증가했다. 퇴직 이후 연금 수령 전까지 소득 공백이 존재하고 이를 메우기 위해 자영업에 진입하는 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이재호 한국은행 거시분석팀 차장은 “고령 자영업자는 다른 연령대보다 창업 준비가 더 부족하고 취약 업종에 몰려있어 수익성은 낮고 부채비율은 높다”며 “폐업하게 된 후 임시·일용직으로 전환돼 재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 금융안정이나 경제 성장 측면에서 중대한 리스크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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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전문가들은 국내 자영업 구조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정책 기조가 자금 지원에서 정보·전략 지원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공공 컨설팅의 전문성을 민간 대기업 컨설팅 기관 수준으로 높이는 식이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소상공인은 시장조사, 전략수립 등 리서치 역량이 부족하고 명확한 분석 없이 창업에 나서는 경향이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수준 높은 데이터와 분석을 제공해서 장사를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포화에 이른 자영업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임금 근로로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영업 탈출로가 마련돼 있지 않으면 창업과 폐업을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서 액세서리 가게를 운영하다가 지난해 11월 문을 닫은 임모(37)씨는 “4년 만에 장사를 접고 취직하려고 이곳저곳 이력서를 냈는데 자영업을 했던 기간을 경력 공백기로 평가해 갈 데가 없더라”며 “결국 다시 할 수 있는 일이 장사밖에 없는 거 같아서 기존 사업자 대출 연장을 알아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점포 정리에 드는 비용 지원 등 폐업 절차에 필요한 현실적인 자금 지원을 하고 연령대에 따라 적절한 산업에 임금 근로자로 재취업할 수 있도록 교육 등 실효성 있는 취업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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