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중동 흔들리면 유가 출렁이는데…'중동산 원유' 못바꾸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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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남구 석유화학단지 전경. 연합뉴스

오래전부터 나온 얘기인데도 잘 안 될 때는 이유가 있다. 최근 이스라엘-이란 분쟁처럼 국제유가가 들썩일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대책으로 등장하는 원유 수입선 다변화 이야기다. 중동산 원유에 매달리는 수입 구조를 바꿀 수는 없는 걸까.

25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국내 원유 수입량 9554만 배럴 중 중동산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62.0%(5923만 배럴)로 가장 컸다. 이어 북미·중남미(25.3%, 2414만 배럴), 아시아(8.0%, 769만 배럴), 아프리카(4.1%, 393만 배럴), 유럽(0.6%, 56만 배럴) 순이었다. 코로나19 등 예외적인 시기를 제외하면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은 1970년대 이후 줄곧 60~80%대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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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정유업계는 대체선 발굴이 말처럼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먼저 안전성 측면에서다. 수급이 잠시라도 끊길 경우 공장 가동을 멈춰야 하는 등 즉각 손실로 반영된다. 예를 들어 대체선으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늘렸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끊긴 전례가 있다. ‘안정적인 수급’이 거래처로서 1순위 조건인 이유다. 한 정유업체 관계자는 “석유 수입은 대규모·장기 계약인데 중동을 제외한 물량은 스폿(일시적) 성 거래가 많고, 가격 변동성이 크다. 거래선을 바꾸는 데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경제성도 따져야 한다. 그나마 중동산의 대안으로 언급하는 미국산 원유의 경우 운송비가 중동산보다 높다. 한국까지 운송 기간(30~40일)도 중동산(20~25일)보다 길다. 게다가 미국산 서부텍사스유(WTI)는 경질유(輕質油), 중동산 원유는 중질유(重質油)다. 유종이 다른 만큼 수십년간 중동산 맞춤형 정제설비를 운영한 국내 정유사가 WTI를 들여오려면 대규모 설비 변경도 필요하다.

정유사마다 특수성도 있다.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HD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 중 에쓰오일은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이 90% 이상이다. 대주주가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인 영향이다. 그나마 미국산 원유 수입에 열려있는 회사가 HD현대오일뱅크다. 다양한 원유를 처리할 수 있는 정제설비를 갖춘 덕분에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을 40% 수준까지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를 한 곳에 의존하면 가격 협상에서 불리하다. 게다가 중동 정세는 언제든 다시 불안해질 수 있다. 원유 수입처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원유를 100%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대체선 발굴은 국가 에너지 안보와도 밀접하다”며 “정유업체가 향후 수명을 다한 정제 설비를 교체할 때 정부가 인센티브를 주는 등 일정 수준의 유도 전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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