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국 드라마 산업에 대한 전략적 투자, 지금이 ‘골든타임’ [이용해 변호사의 엔터Law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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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3' 포스터. 사진 넷플릭스

요즘 콘텐트 업계 관계자들과 만날 때마다 듣는 이야기가 있다. 최근 몇 년 간 드라마를 제작하기 너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 같은 작품들이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인기를 얻으며 한국 콘텐트의 위상을 높이고 있지만, 정작 콘텐트 산업의 성장을 이끌어온 K-드라마는 지금 심각한 위기에 놓여있다. 지상파 3사와 tvN 등 주요 방송사들이 주중 드라마 편성을 대폭 축소하면서 2022년 약 140편이던 한국 드라마 방영 편수는 지난해 100편 남짓으로 줄었고, 같은 기간 한국 방송 산업의 매출이 계속 감소했다는 통계도 확인된다.

이러한 위기는 제작비 상승에 기인한 바가 크다. 2010년대 중반 회당 3~4억 원이던 드라마 제작비는 현재 회당 10억~15억 원까지 늘었고, 회당 30억 원 이상인 작품도 생겨났다. 글로벌 OTT의 국내 진출로 주연 배우들의 출연료가 크게 상승한 가운데, 방송 광고 시장마저 위축되어 수익성 확보가 어려워진 방송사들이 드라마 편성을 줄였고, 한국 구독자들로만 수입을 얻는 국내 OTT들도 제작비가 적게 드는 예능의 비중을 높인 것이다. 이 흐름이 지속돼 드라마 유통시장이 넷플릭스 1강 체제로 굳어지면 협상력 약화로 플랫폼 의존은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K-드라마는 문화산업을 넘어 다른 산업에도 큰 파급력을 미치는 콘텐트라는 점이다. 한국 드라마의 인기로 국가 이미지가 높아져 외국 관광객이 한국을 방문하는 사례가 늘었고, ‘사랑의 불시착’에 등장한 화장품이나 ‘오징어 게임’에 나온 설탕 뽑기가 해외에서도 화제가 된 것처럼 한국 드라마는 뷰티, 패션, 식품 등 소비재 산업의 매출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드라마 업계의 위축은 넷플릭스에서 방영기회를 잡지 못한 제작사나 출연 기회가 줄어든 조연급 배우들의 생존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마저 위협할 수 있다.

한편 일부 대형 제작사를 중심으로 자체 IP를 보유한 채 방송사와 글로벌 플랫폼 등에 각각 방영권을 판매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를 통해 제작비의 대부분을 보전받고 중국 시장까지 개방될 경우 추가 이익도 얻을 수 있으며, 향후 IP 확장도 노릴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유통구조이지만, 제작비 급증으로 당장의 어려움을 버티기 힘든 중소 제작사들은 편성과 제작비 충당을 위해 IP 전체를 그대로 넘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결국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 드라마 산업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드라마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반도체, 바이오산업 등의 성장을 위해 국가첨단전략산업법을 제정한 것처럼 새로운 특별법을 제정할 수도 있고, 문화산업진흥 기본법이 정한 기존 제도를 활용하여 정책자금 지원을 확대하는 것도 고려될 수 있다. 가령 문체부의 모태펀드 문화계정 등을 통해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드라마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거나, 신용보증기금 등이 운용하는 문화산업보증 규모를 크게 확대하여 콘텐트 제작 기반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현재 약 1.3%에 불과한 문화예산 비중도 더욱 늘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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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이 웨이브와 함께 하나의 구독으로 두 플랫폼의 인기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더블 이용권’을 출시한다.

한국형 OTT 플랫폼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도 중요한 과제다. 2023년부터 추진되어 온 티빙(TVING)과 웨이브(Wavve)의 합병 논의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조건부 승인을 받은 만큼, 전략적 통합을 통해 콘텐트 투자 여력을 합치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여 경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북미를 중심으로 광고 기반의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 FAST(Free Ad-supported Streaming TV)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것도 한국에게는 기회다. 양질의 콘텐트가 이미 상당히 누적되어 있고 글로벌 경쟁력도 입증되어 있으므로, 정부 차원에서 한국의 플랫폼과 콘텐트가 해외 진출에 따른 제도적 장벽을 넘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번역이나 더빙, 홍보 등의 현지화 비용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유통 지원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문화가 곧 국제 경쟁력이며, 적극적인 문화 예술지원으로 콘텐트의 세계 표준을 다시 쓸 문화강국으로 도약할 것’을 선언하였다. 세계시장에서 범죄, 스릴러 등 장르물을 통해 주목받은 한국 콘텐트는 ‘선재 업고 튀어’나 ‘폭싹 속았수다’ 등을 통해 전통적인 한국적 정서와 로맨스 코미디물도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국 콘텐트는 앞으로도 다양한 서사와 형식을 통해 전 세계에서 공감대를 이루며 콘텐트 시장을 주도하게 될 것이고, 이는 결국 한국 경제 전반의 성장을 견인하는 긍정적인 선순환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 믿는다.

다만 한국 문화산업이 지속해서 성장하고 문화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현재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드라마 산업에 대한 정책펀드 확대와 전략적인 재정지원 등 실천적인 방안을 통해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

필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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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해 변호사의 엔터 Law 이슈]

이용해 변호사는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20여년간 SBS PD와 제작사 대표로서 ‘좋은 친구들’, ‘이홍렬 쇼’, ‘불새’, ‘행진’ 등 다수의 인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후 법무법인 화우의 파트너 변호사 및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팀장으로서 넷플릭스·아마존스튜디오·JTBC스튜디오 등의 프로덕션 법률 및 자문 업무를 수행해왔다. 현재 콘텐트 기업들에 법률 자문과 경영 컨설팅을 제공하는 YH&CO의 대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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