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지도서 사라질 판"…마지막 국영 탄광 도계광업소 역사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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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강원 삼척시 도계읍 도계광업소 도계갱구를 찾은 이기황(63)씨가 마지막 출근을 앞두고 갱구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박진호 기자

폐광으로 도계갱구 떠나는 광부들  

“아버지 뒤이어 청춘을 다 바친 곳인데 이제 정말 끝이다.” “여름철 갱구 앞에 서면 그렇게 시원했는데 이것도 마지막이네….”

28일 오후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도계광업소 도계갱구를 찾은 광부 이기황(63)씨와 김전하(61)씨가 굳게 닫힌 갱구를 바라보며 나눈 대화다. 30년 넘게 탄광에서 일해 온 이씨는 30일이 마지막 근무다. 대한석탄공사가 운영하는 마지막 탄광인 도계광업소가 30일 문을 닫기 때문이다.

앞서 2023년 전남 화순광업소가, 지난해엔 태백 장성광업소가 폐광했다. 도계광업소가 문을 닫으면 대한석탄공사가 운영하는 국ㆍ공영 탄광은 모두 사라지게 된다. 이제 국내 탄광은 민영인 경동 상덕광업소 단 한 곳만 남게 된다.

1989년 도계광업소에 입사해 2023년 정년퇴직한 이씨는 같은 해 기간제 안전기사로 재취업해 지금까지 근무할 정도로 탄광에 애정이 많았다. 이씨는 “30일이 마지막 출근이라고 생각하니 시원섭섭하다”며 “그동안 단계적 조기폐광으로 갱구가 폐쇄되면서 많은 동료가 도계를 떠났다. 나도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사택에서 나가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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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강원 삼척시 도계읍 도계광업소 도계갱구를 찾은 이기황(63)씨가 마지막 출근을 앞두고 갱구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박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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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삼척시 도계읍 도계광업소 동덕갱구 막장에서 근무하는 광부들 모습. 기자가 2016년 6월 광부들과 동덕갱구에 함께 들어가면서 찍은 사진. 박진호 기자

마땅한 집 없어 삼척 도심으로 이주 

지난해 6월 30일에 정년퇴직한 김씨는 1년 유예기간을 채운 데다 36.3㎡(11평) 남짓한 사택이 너무 낡아 이주를 결정했다. 도계 토박이인 김씨는 태어나고 자란 동네에 계속 머물고 싶었지만 마땅한 집을 찾지 못해 삼척 도심으로 이사할 예정이다.

김씨의 아버지도 광부였다. 김씨가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다닐 때 그의 부친은 광부 일을 시작했는데 진폐증으로 10년 넘게 투병생활을 하다 1997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김씨는 “고향을 떠나기 싫어 광부가 됐는데 이젠 떠날 수밖에 없게 됐다”며 “입사 초기엔 동료가 1000명이 넘었는데 퇴직 즈음엔 300명이 안 됐다. 광부들끼리 이러다 도계가 지도에서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씁쓸한 농담을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도계읍 지역에서 탄광 운영되기 시작된 건 1936년부터다. 삼척탄광으로 시작해 1951년 석탄공사의 도계광업소가 됐다. 당시 탄광 개발로 1935년 8만8700명이던 삼척 인구는 5년 만인 1940년 12만5000여명으로 늘었다.

1940년 개교한 도계국민학교(현 도계초)도 초기엔 재학생이 73명에 불과했지만 1955년 1527명으로 늘어나더니 1965~1970년엔 3000명대를 유지했다. 당시 도계초는 강원도에서 가장 큰 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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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강원 삼척시 도계역 인근에 있는 도계전두시장이 찾는 이들이 없어 텅 비어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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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삼척시 도계읍 도계광업소 동덕갱구 막장에서 근무하는 광부들. 기자가 2016년 6월 광부들과 동덕갱구에 함께 들어가 채탄 작업을 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 박진호 기자

5만 가깝던 도계인구 이젠 8925명 

하지만 정부가 주도한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도계 지역은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1989년 합리화 정책 시행 첫해 도계에서 삼마, 대방, 삼보 등 3개 탄광이 문을 닫은 것을 시작으로 모두 12개 탄광 가운데 10개가 폐광했다.

탄광이 문을 닫자 인구도 급감했다. 5만명에 가까웠던 도계읍 인구는 1989년 3만9125명→1999년 1만7444명→2009년 1만2445명→지난달 8925명으로 감소했다. 삼척시 전체 인구도 1989년 13만명에 이르렀지만 6만1428명(지난달 말 기준)으로 절반 이하가 됐다.

주변 상권 역시 빠르게 무너졌다. 도계역 인근에 있는 도계전두시장의 경우 현재 57개의 점포 중 5개 점포만이 문을 연 상황이다. 이날 오후 기자가 방문한 시장엔 손님은 없었고 상인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33년째 시장에서 장사를 해 온 김연옥(73ㆍ여)씨는 “도계가 이렇게 될지 누가 알았겠냐”며 “좌판으로 북적이던 시장은 옛말이고 젊은 사람들은 모두 도심으로 떠났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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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강원 삼척시 도계읍 협동아파트 주차장이 텅 비어있는 모습. 협동아파트는 광부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다. 박진호 기자.

광부 모여 사는 사택 주차장 텅 비어 

시장을 나와 광부들이 모여 사는 협동아파트(사택)를 찾았다. 입구로 들어서자 텅 빈 주차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 앞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박숙자(62ㆍ여)씨는 “이 아파트엔 220세대가 거주할 수 있는데 현재 절반 이상이 이주해 빈집이 많다”며 “근로자들이 하나둘씩 동네를 떠나다 보니 이제는 마트를 운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해 매출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 한 달 열심히 일해봐야 남는 건 100만원 남짓”이라고 했다.

강원도에 따르면 도계광업소 폐광 시 삼척시의 경제ㆍ사회적 파급 및 피해규모는 98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대체 산업 쟁취 대한석탄공사 폐광반대 공동투쟁위원회’(공투위)는 도계광업소가 폐쇄되면 광부 등 270여명 실업자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갱내 보수업무와 경비 협력업체, 목욕탕, 운송업체 등 관련 업체 종사자 280여명도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여기에 마지막 하나 남은 민영 탄광인 경동 상덕광업소까지 폐광하면 경제ㆍ사회적 피해 규모는 5조6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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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강원 삼척시 도계읍 도계광업소 사무동 정문 앞에서 '대체산업 쟁취 대한석탄공사 폐광 반대 공동투쟁위원회'가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박진호 기자

투쟁위 30일 세종시 찾아 예타 통과 촉구  

김광태 공투위원장은 “폐광을 주도한 정부는 탄광이 문을 닫은 이후 폐광주민들의 생존방안에 대해 아무런 확답을 주지 않고 있는 상태”라며 “대체산업과 생존방안이 없는 폐광은 있을 수 없다. 중입자가속기 기반 의료산업 클러스터 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가 7월에 예정돼 있는데 부디 정부가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공투위 회원 50여명은 도계광업소가 문을 닫는 30일 세종시를 찾아 예타 통과 촉구, 폐갱도 수몰 반대, 부채 해결 없는 석탄공사 폐광 반대 등을 기획재정부에 촉구할 예정이다.

한편 도계갱구에서 근무해온 광부들은 지난 3월까지 ‘인차(탄광내에서 작업자를 운반하는 차량)’를 타고 터널 속으로 3300m가량 이동해 채탄 작업을 해왔다. 인차를 두 번갈아 타야 해 이동 시간만 45~50분 정도 걸린다. 지상에서 직선거리로 600m가량이다. 해수면보다 200m 이상 낮은 곳에서 하루를 보낸다. 가로 3.8m, 세로 2.4m에 불과한 작은 굴이 현장이다. 이곳에선 탄을 나르는 기계음 때문에 옆 사람과 대화도 불가능하고, 탄가루 때문에 동료의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다.

막장 내부 온도는 섭씨 30도가 넘고 습도도 80%에 달해 10여 분 만에 작업복이 온통 땀으로 젖는다. 숨을 쉴 때마다 마스크 틈으로 스며들어오는 탄가루는 호흡조차 힘들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광부들은 1인당 하루 작업 목표인 8t을 채우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이렇게 그들은 평생을 몸 바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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