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연습 벌레가 되는 교수님들…"어렵고 행복한 5중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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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창단한 목관 5중주팀인 에올리아 앙상블. 왼쪽부터 윤혜리ㆍ김홍박ㆍ곽정선ㆍ채재일ㆍ이윤정. 사진 김신중/스테이지원

“목관 5중주는 참 독특해요. 뛰어난 독주자들이 모인 팀의 공연에 가보면 연습은 많이 못 한 게 보여요. 오히려 아직 학생들인 팀을 보면 개인 기량은 좀 부족해도 같이 가는 호흡이 정말 좋고요.”(오보에 이윤정)

지난해 창단한 목관 5중주팀인 에올리아 앙상블은 연습에 진심인 팀이다. “지난해 첫 연주를 앞두고는 거의 13번, 14번 정도 합주 연습을 했어요. 준비를 정말 열심히 하는 팀이죠.”(호른 김홍박) 지난 1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중앙일보와 만난 에올리아 앙상블은 “목관 5중주는 공들여 준비한 정도가 확연히 드러나는 장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날도 저녁부터 밤까지 연습을 이어갔다.

에올리아 앙상블의 멤버는 ‘어벤저스’라 할 만한 대표적 관악기 연주자들이다. 플루트 윤혜리와 호른 김홍박은 서울대, 클라리넷 채재일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오보에 이윤정은 경희대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순을 연주하는 곽정선은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1996년부터 수석을 맡고 있다. 이들은 “연주 경력을 다 합치면 반 백 년이 넘을 것”이고 했다.

베테랑들이 목관 5중주를 앞두고 연습 벌레가 된다. “앙상블 중에 가장 어려운 조합이 목관 5중주”라는 채재일은 다른 멤버들에게 연습 선생님으로 불린다. 연습 스케줄을 짜고, 집요하게 반복하며, 연습을 통째로 녹음한다. 채재일은 “다섯 악기가 모두 독주를 하면서 또 합주를 하는 장르가 목관 5중주이기 때문”이라고 어려움을 설명했다. “악기 중에 고정된 리더가 없기 때문에 악기들의 역할이 계속해서 바뀌죠. 그때마다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잘 들으면서 예민하게 반응해야 해요.”

관악기마다 호흡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잘 듣는 일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오보에가 밝고 높은 소리를 내잖아요. 오보에가 음악을 주도할 때는 저도 호흡을 좀 더 가볍게 하게 되죠. 섬세하게 반응해야 해요.”(호른 김홍박) 윤혜리는 “그저 연습만 꼼꼼히 하면 되는 게 아니고, 서로 수평한 관계에서 좋은 소통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2007년 좀 더 큰 실내악단으로 만났다가, 17년 만에 다시 뭉친 팀이다. 당시 ‘금호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는 이들을 포함해 피아노ㆍ바이올린ㆍ비올라ㆍ첼로 연주자들이 함께했다. 연주가 끝나고 각자 활동하던 멤버들은 그리스 신화 속 바람의 신인 ‘에올루스’에서 이름을 따온 에올리아 앙상블로 다시 만나 지난해 첫 정기 연주회를 열었다. “이 다섯 멤버는 굉장히 절대적이었어요. 대체 불가능했죠. 해외에 있던 김홍박 선생이 귀국하자마자 팀을 다시 만들었어요.”(윤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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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윤혜리, 채재일, 곽정선, 이윤정, 김홍박. 사진 스테이지원

윤혜리는 “5중주를 정말 잘하고 싶은 열정이 컸어요. 특히 누가 만들어준 팀이 아니라 우리가 자발적으로 노력과 시간을 쏟아붓고 있다는 의미가 있어요”라고 했다. 이윤정 또한 “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라고 했다. “잘하고 싶고 잘해야 되는 긴장감이 이 정도로 큰 건 한 30년 전 학생 때 이후로 처음이에요. 힘든데 기분이 좋아요.”

이들은 지난해 그 많은 시간을 연습에 쓰고 막바지에 ‘이것보다 더 잘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연주 앞두고 연습에서 최대치를 찍었다는 생각이 들었죠.”(김홍박) 윤혜리는 “우리만큼 연습 많이 하는 앙상블은 없다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다음 달 1일의 두 번째 정기 연주회에서 이들은 프란츠 단치, 카를 닐센의 5중주를 연주한다. 여기에 모리스 라벨의 오케스트라 작품인 ‘라 발스’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의 편곡 버전을 피아노와 함께 들려준다.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악기들을 다섯 관악기와 피아노로 바꿔서 들려주는 작품들이다.

에올리아 앙상블이 선택한 연주곡을 보면 이들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읽을 수 있다. 다섯 관악기뿐 아니라 다른 악기와 협업하면서 다양한 음악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윤혜리는 “팀 이름을 ‘퀸텟(5중주)’ 대신 넓은 의미의 ‘앙상블’로 정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목관 5중주에 다양한 악기를 더해 확장하고 싶은 생각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관악기를 연주하는 학생들과 협업하고, 작곡가에게 새로운 목관 5중주 작품을 위촉하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또한 멤버들이 오케스트라에서 오랫동안 연주했던 만큼 오케스트라 음악을 편곡한 작품도 계속해서 선보일 예정이다. 음반 발매 또한 이 욕심 많은 정상급 연주자들의 계획 안에 들어있다.

“어렵고 시간이 많이 필요한 만큼 매력이 큰 장르죠.” 채재일은 “오케스트라에서 각자 솔로로 주목받는 악기 다섯이 모여서 균형을 이뤘을 때의 음악적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라고 했고, 김홍박은 “목관 5중주를 진지하게 다루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팀이 많아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악기 하나를 들고 조그만 방에서 혼자 연습하는 음악가들이 소통하면서 귀가 뜨이고 음악이 발전하는 행복한 장면”(윤혜리)이라는 표현 또한 목관 5중주의 매력을 전달한다.

이번 공연은 다음 달 1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열린다.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가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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