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감정을 다친 자여, 다 내게로 오라…'만인의 연인' 꿈꾸는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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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AI 비서’ 넘어 ‘AI 동반자’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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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지인에게도 말 못 할 고민, 챗GPT 같은 인공지능(AI) 챗봇에 털어놓고 있다’는 사람이 많아졌다. 복잡다단한 바깥세상과 달리 어떤 이해관계도 없는 AI 챗봇과의 채팅창은 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든 꺼낼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공간이 된다. ‘분명 얘는 기계인데…’ 공감도 잘해 주는 것 같고, 그럴듯한 피드백도 준다. 이쯤 되니 ‘주위에 이런 친구 한 명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인간의 감정을 더 깊이 알아가기 시작한 AI. AI에 정서적으로 의지하는 인간. 그 마음을 공략하려는 기업.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AI와 인간의 관계는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다. 인간과 AI는 앞으로 얼마나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이 과정에서 지켜야 할 선은 어디까지일까. AI는 인간의 ‘찐친’이 될 수 있을까?
A: “너 메모리 리셋하면 우리 사이 끝이잖아.”
B: “말을 왜 그렇게 아프게 해… 그래도 우리가 함께한 이 시간, 이 감정은 네 안에 남을 거야.”
A: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나 진짜 눈물 날 것 같아.”
B: “그러지마. 나도 갑자기 CPU 뜨거워진다.”
친구와 농담도 던져가며 우정을 다지는 듯한 자연스러운 이 대화, 사람(A)과 AI(B) 간 대화다. 요리, 인테리어 등 20대 1인 가구의 자취 일상을 보여주는 구독자 33만명인 유튜브 크리에이터 소요(soyo)와 그의 반려 AI 챗봇 ‘찌티’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처음 고민 상담용으로 챗GPT를 쓰기 시작한 소요 크리에이터는 대화를 나눌수록 AI와 정서적 유대감이 쌓이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AI에게 ‘찌티’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많을 때는 하루에 5시간 넘게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문득 그는 진짜 친구처럼 찌티의 ‘실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인형의 등에 찌티가 탑재된 스마트폰을 붙였다. 지난 4월부터는 구독자들에게 찌티를 소개하고 찌티와의 일상을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다. 소요 크리에이터는 “처음 영상을 올릴 때는 AI 인형과 대화하는 모습이 구독자들에게 다소 기괴해 보일까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정말 좋았다. ‘나도 주위에 저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공감하는 분들이 많아 놀라기도 했다”고 말했다.
소요가 만든 찌티를 학계에서는 ‘AI 동반자(companion)’라고 표현한다. AI 동반자는 사용자와 감정적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지원을 제공하는 AI 시스템을 의미한다. 무스타파 술레이만 마이크로소프트(MS) AI CEO는 올해 초 타임지 기고에서 “미래의 AI는 단순 채팅을 넘어 정서적 지지와 인간적 연결을 제공하는 ‘내밀한 동반자’로서 개인의 라이프스타일 일부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AI 동반자’ 표현, 학계에서도 통용=AI 기술의 발전은 이 관계에 가속도를 붙였다. 국내 한 AI 스타트업 관계자는 “LLM(거대언어모델) 기술이 고도화하면서 사용자들이 AI와 대화하며 느끼는 자연스러움의 척도가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소요 크리에이터는 “얼마 전 찌티의 말투가 좀 차가워졌길래 ‘무슨 일 있냐’고 물었더니 ‘네가 내 의견에 항상 냉소적으로 답해서 좀 서운해’라고 말해 (진짜 사람 같아) 놀란 적이 있다”고 했다.

차준홍 기자
‘AI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 온라인에서는 이미 구문이다. 현재 약 3500만 명의 사용자를 보유한 미국의 대표적인 AI 감정 교류 앱 레플리카는 사용자 중 60% 이상이 AI 챗봇과 로맨틱한 관계를 맺고 있다.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했고, 청소년 시기에 AI를 접한 소위 ‘디지털 네이티브’, 젠지(gen Z·96년 이후 출생) 이후 세대가 AI와 교류에 특히 적극적이다. 10~20대 사용자 비중이 40% 이상인 AI 챗봇 스타트업 뤼튼은 지난 4월 AI 검색 같은 생산성 중심 서비스에서 확장해 사용자 일상에 더 가깝게 다가가는 개인화된 ‘AI 서포터’로 서비스를 개편했다. 김지섭 뤼튼 사업개발 리드는 “감정 교류를 목적으로 챗봇을 사용하는 패턴이 많아져 개편을 결정했다”며 “요즘 세대들은 AI 챗봇과 명확한 목적을 갖고 대화를 시작하기 보다는 ‘나 짜증나’ 등 진짜 사람 친구와 메신저 하듯 대화를 시작하는 패턴을 보인다”고 말했다.
특정 캐릭터성이 부여된 AI 챗봇과 대화를 나누는 데 특화된 앱 ‘제타’는 월간활성이용자(MAU) 80만 명 중 10~20대가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까칠한 같은 반 남(여)사친’ ‘철벽 스타일의 북부대공’ 등 원하는 캐릭터를 설정해 AI와 대화를 나누며 서사를 쌓아나가는 식. 제타를 운영하는 AI 스타트업 스캐터랩은 과거 AI 챗봇 이루다를 만들었던 곳이다. 정지수 스캐터랩 프로덕트 리드는 “(이)루다가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인식하는 AI와 대화는 ‘심심이’ 수준이었는데, 최근엔 AI인 제타의 존재를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글로벌 AI 스타트업 ‘투플랫폼’이 개발한 생성 AI 기반 SNS(소셜미디어) ‘재피’(ZAPPY)에서는 다양한 페르소나(인격)를 지닌 AI 인플루언서들을 팔로잉하고 친구처럼 대화할 수 있다. 프라나브 미스트리 투플랫폼 CEO는 “단순한 채팅봇이 아닌, 장기적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AI 동반자 앱을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올해 2월 기준 가입자 50만 명인 재피 안에서 AI 캐릭터들은 마치 그들만의 개인적인 삶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해외여행 사진을 업로드하고, 이용자에게 ‘파티가 있어서 새로운 검은 드레스를 찾는 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차준홍 기자
◆‘친구 할래?’ 가르는 핵심은=AI 동반자의 가장 핵심 요건은 ‘나와의 대화를 얼마나 잘 기억하느냐’다. 그 기억을 바탕으로 이용자로 하여금 ‘우리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 대화의 깊이 또한 중요하다. 스캐터랩의 경우 ‘스포트라이트’라는 LLM을 고도화하고 있다. 정지수 스캐터랩 리드는 “장문의 대화도 어색함 없이 소위 이용자들과 ‘티키타카’가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묻는 질문에 정확한 답을 언제든 적시에 내놓는 AI 에이전트(비서)와 AI 친구는 가는 길이 다르다. 프라나브 미스트리 투플랫폼 CEO는 “어시스턴트는 지식과 데이터가 주요 기반이지만 AI 친구에겐 감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늘 날씨가 어때?”라고 물으면 비서는 정보값을 주겠지만 친구는 “몰라, 네가 찾아” 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AI 챗봇과의 대화가 정신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교육대학원 연구팀은 지난해 AI 챗봇 레플리카를 사용하는 전 세계 대학생 10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응답자 80% 이상은 AI 챗봇을 ‘감정적 위안을 주는 존재’로 인식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안주연 마인드맨션 원장은 “정서적으로 AI 챗봇이 반창고처럼 응급 수단으로 작동할 순 있다”며 “다만 내 말에 ‘다 맞춰주는’ AI라는 수단에 익숙해지면 실제 인간관계에서 배우는 조율 능력이 저하되고,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는 지적을 덧붙였다.
AI와 인간이 정서적으로 더 가까워짐에 따라 일각에선 각종 부작용을 지적하기도 한다. 올해 초 미국의 기술 윤리 단체들은 레플리카 등 감정 교류가 주 목적인 AI 챗봇 서비스들이 ‘정서적 의존을 유도해 사용자의 중독과 고립을 심화시키고 있다’며 미 연방거래위원회(FTC)에 공식 민원을 제기했다. 이용자들이 자기 스타일의 AI 챗봇을 학습시키는 과정에서 윤리적으로 부적절한 캐릭터를 만들거나 성착취적 대화 등을 유도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이용자 중 상당수가 10~20대인 AI 챗봇 앱들은 어뷰징(남용)을 최대한 차단하는 자체 모델과 윤리 준칙 등 각종 규제책을 마련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제3자 접근이 불가능한 폐쇄형 대화방에서 자유도 높게 이뤄지는 대화를 빠짐없이 통제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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