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로스쿨 나오고 수천 들여 '변시 재수'…사시 부활론 말 나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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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월 시험에서 또 떨어지면 2500만원이 더 들어가요.”
지난 9일 서울시 관악구 학원가에서 만난 로스쿨 졸업생 장모씨(28)는 자신을 ‘변시 삼수생’이라고 소개했다. 공부라면 늘 자신이 있었던 그였지만 변호사시험에서 연거푸 낙방한 뒤 결국 지난 4월 스파르타식 종합관리학원에 등록했다. 대학 입시 때도 이런 학원에 다녀본 적이 없었다는 장씨는 “갈수록 늘어만 가는 비용에 물적·심적 부담이 크지만 로스쿨을 졸업해도 변호사 자격증을 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만큼 학원비를 아낄 처지가 아니다”며 고개를 저었다.
장씨처럼 로스쿨 졸업 후 또다시 ‘입시 학원’을 찾는 건 이제 흔한 일이 됐다. 무엇보다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2016년 이후 줄곧 50% 안팎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1월 치러진 제14회 변호사시험에서도 응시 인원 3336명 중 1592명이 불합격했다. 예비 법조인 두 명 중 한 명은 고배를 마신 셈이다. 게다가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도 다섯 번으로 제한돼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장씨는 “그러다 보니 로스쿨 졸업생은 물론 재학생들도 ‘변시 준비 학원에 다니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래픽=이윤채 기자 xxxxxxxxxxxxxxxxxxxxxxxxxxx
문제는 대다수의 변시 준비생들이 로스쿨 입학 전부터 졸업할 때까지 적잖은 돈을 지출하는 과정에서 금전적 부담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로스쿨 졸업을 앞둔 재학생 최모(26)씨는 “로스쿨 입학을 위해 1000만원 넘게 학원비를 들인데다 재학 중에도 매년 140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내야 했는데 이젠 비싼 변시 준비 학원비까지 감당해야 할 처지”라며 “로스쿨 3년간 억대 비용이 들어간다는 게 통설이라 일부 고소득층 자녀가 아닌 이상 부담이 상당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주변에서 로스쿨 제도는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추세는 실제 수치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장학재단이 최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로스쿨 재학생 10명 중 7명(68.2%)은 월 소득인정액이 1146만원 이상인 소득 9~10분위 가구 자녀거나 국가장학금 지원 없이 학비 전액을 납부한 고소득층인 것으로 조사됐다. 3년 연속 68~70%를 기록 중이다. 반면 지난해 로스쿨 신입생 중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을 수 있는 저소득층(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 자녀는 5.86%로 역시 3년 연속 5%대에 머무른 것으로 집계됐다.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로스쿨 재학생 1인당 평균 학자금 대출액도 2017년 973만원에서 지난해엔 1261만원으로 30%나 급증했다.
그러다 보니 로스쿨 학생들은 물론 학계 일각에선 ‘사시 부활론’도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이달 초부터 학원에서 민법 특강을 수강 중이라는 로스쿨 재학생 이지현(26)씨는 “첫 여름방학에 확실히 다져놔야 이후 학점 관리나 로펌 인턴십 지원이 보다 용이하다는 생각에 친구들 모두 방학도 없이 비싼 학원비를 내고 다니고 있다”며 “한번 뒤처지면 되돌리기 힘든 게 현실이다 보니 주변에선 ‘이렇게 돈은 돈대로 들고 경쟁의 끝은 보이지 않을 거라면 차라리 예전처럼 사법시험을 보는 게 낫겠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로스쿨 제도가 이미 장기간 정착됐으니 폐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실력이 되면 로스쿨을 나오지 않아도 변호사 자격을 검증해 일정 정도는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밝히면서 사시 부활을 둘러싼 논쟁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로스쿨 장학금을 받고 있다는 이모(29)씨도 “저소득층 자녀로 인정돼 등록금을 지원받고 있지만 학원비는 언감생심”이라며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젠 옛말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신중한 입장이다. 대한변호사협회도 지난달 27일 논평을 내고 “로스쿨 선발 방식이 합리적이란 사실은 이미 검증됐다”며 “제도적 혼란과 사회적 갈등을 발생시키는 해묵은 논쟁을 다시 할 것이 아니라 현행 로스쿨 운영의 구조적 문제점을 진단하며 개선 방향과 보완책을 함께 모색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법조계 일각에선 일본식 예비시험 제도 도입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일본은 2011년 금전적·시간적 부담에 로스쿨에 진학하지 못하는 법조인 지망생들에게 사법시험 응시 자격을 부여하는 예비시험 제도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예비시험에 합격하면 로스쿨 졸업생과 동일하게 5년간 시험 응시 기회를 부여하면서 법조인 충원 경로 다양화 등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국내 학계에선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기존 로스쿨 제도와의 조율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만만찮은 만큼 보다 신중하게 논의를 모아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잖다.
최봉경 한국법학교수회장(서울대 로스쿨 교수)은 “법조인 양성 제도는 지방과 서울 로스쿨, 로스쿨과 법학부, 심지어 전공 분야별로 이해관계가 달라 통일된 입장이 도출되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현행 로스쿨 제도를 어떻게 보완해 나갈지 등 향후 논의는 법학 교육의 토대를 강화하고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깊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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