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여의도 2배에 고용 257명뿐…'깡통산단' 수두룩한데 또 24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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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방문한 충남 서천군 장항국가생태산업단지 전경. 사업비 3263억원을 들여 275만㎡규모로 조성됐지만, 가동기업은 24개(가동률 58.5%)에 그친다. 사진은 풀이 무성한 장항산단 미분양 부지 전경. 오삼권 기자

#.지난 7일 방문한 경북 포항 블루밸리국가산업단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착공해 올해까지 여의도 2.1배 규모인 608만㎡로 조성되지만 부지 대부분이 풀밭이다. 하지만 올해 1분기 말 기준 38개 입주 기업 중 15개만 가동되고 있다. 공사장에서 만난 포크레인 기사는 “기업이 안 들어옵니더”라며 고개를 저었다. 포항시는 당초 일자리 6만개를 예상했지만, 올해 1분기 기준 고용인원은 257명에 불과하다.

#.충남 서천 장항국가생태산업단지는 올해 1분기 말 기준 입주기업 41개 중 24개만 가동 중이다. 기업 간 시너지가 산단의 목적이지만, 기계(8개)·식품(5개)·석유화학(3개)·운송장비(2개)·목재(1개) 등 각 기업은 공통 분모가 적다. 기계제작업체 직원 김모(42) 씨는 “산단 내 기업 간 거래가 거의 없다”고 했다. 게다가 일부 기업은 적자인데도 입주 당시 받은 지자체 보조금 탓에 폐업을 못 하고 좀비기업으로 버티고 있다.

전국 산업단지가 기업 유치, 산업 생태계 형성에 실패하면서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13일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전국 산단 수는 1331개로 2019년 말 1221개에서 9% 증가했다. 대통령령으로 지정되는 국가산단 53개, 지자체장이 지정하는 일반산단 746개 등이다. 특히 2023년 윤석열 정부는 15개 신규 국가산단을 승인하면서 국가산단 수를 확 늘렸다. 지자체의 민원성 요청을 상당수 받아들인 결과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에도 지자체의 산단 지정 요청이 빗발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중앙일보 조사 결과 서울·부산·제주를 제외한 전국 14개 시·도는 지난 7~8일 국정기획위원회 균형성장특위와의 간담회에서 총 24건의 산업단지·클러스터 조성을 건의했다. 인공지능(AI) 5건, 방위산업 3건 등 지역산업보다는 최근 주목받는 산업에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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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25일 광주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에서 광주시민·전남도민 타운홀미팅을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이에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통령도 지난달 25일 호남 타운홀 미팅에서 산단 요청에 “(산단 조성을 위한) 부지 개발을 하더라도 기업이 들어올 것인지 의문스럽다”고 반문했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기업투자는 인력·물류비용·연관 효과 등을 판단해서 이뤄지는데, 지자체는 ‘부지만 제공하면 삼성, 네이버 같은 대기업도 올 것’이라고 공언한다”며 “새 정부가 지역별 특화산업 중심으로 산단을 재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원하는 곳에”…지역 연계성·입지 고려 않는 산단

산단은 1960년대 정부 주도의 산업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64년 구로공단(경공업)을 시작으로 울산(석화·조선), 포항(철강), 창원(기계), 여수(석화) 산단이 정부 주도로 탄생하며 현재 산업의 기반이 됐다. 하지만 최근 산단의 기능과 효과가 크게 변질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산단은 ‘입지검토(지자체)→지정(정부·지자체)→조성공사(LH 등)→분양·기업입주(LH 등)’의 과정을 거치는데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목을 앞세워 입지, 산업 연관성을 고려하지 않는 산단이 다수 지정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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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예컨대 2008년부터 조성된 장항국가생태산단의 경우 장항읍에 발달해 있던 제지산업과는 연관관계가 적은 ‘친환경 산업’이 산단 기본계획에 담겼다. 이 때문에 고용창출효과가 큰 제조업은 들어서기 어려웠고,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 위주로 입주했다. 장항은 서해안에 면해 있긴 하지만 수도권에 있는 몰린 경기 평택보다 입지도 썩 좋지 않아 기업 유치에서 뒤처지고 있다. 평택에 밀리는 건 충남 당진 석문국가산단(가동률 49%)도 마찬가지다. 2017년 승인된 경남 밀양 나노융합국가산단의 경우, 제조업 기반이 전무한 상태에 추진됐다. 나노산업과는 무관한 삼양식품이 들어선 2022년 2분기까지 가동률이 0%였다.

변병설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는 “외딴곳에 섬처럼 산단을 조성하니, 기업이 들어가기 어렵다”며 “복합적인 인프라와 산업 연관성부터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고싶은 것 하다보니”…산업 예측도 실패

지자체가 산단 조성을 계획할 때와 분양 시기 사이에 산업 여건이 바뀌면서 산단이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포항 블루밸리산단은 2차 전지 수요 증가를 예측하고 조성됐다. 하지만 최근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정체)에 따라 산단도 주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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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방문한 경북 포항시 남구 블루밸리국가산업단지 전경. 현재 조성 중인 2단계 부지는 올해가 준공 기한이었지만 현재 터닦기만 진행되고 있다. 김효성 기자

지난해 9월 포스코퓨처엠은 중국 화유코발트와 함께 포항 블루밸리산단에 짓기로 한 1조2000억원 규모 전구체 공장 투자계획을 중단했다. 산업 여건에 따른 부침은 구미 하이테크밸리 국가산단(전자기업의 해외이전) 등 다른 산단도 겪은 일이다.

최준석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산단이 조성되고 공장을 짓는 데까지 최소 2~3년이 걸리고, 인프라 조성까지 고려한다면 더 걸릴 수 있다”며 “계획과 조성 사이의 시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향후 10~15년 상황을 미리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산단은 표 된다”…지역 정치인·행정가의 욕심

일각에서는 지자체의 산단 조성 추진은 지역 정치인, 행정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지역 정치인은 “산단을 조성하면 도로 등 인프라를 깔 수 있는 예산이 중앙정부에서 내려오고, 이를 지역 정치인은 치적으로 홍보할 수 있다”며 “기업을 유치하고, 고용을 늘리는 일보다 산단 지정 자체에 힘을 쏟는 이유”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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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지자체는 산단 조성을 검토하면서 기업에게 투자의향서를 받지만, 법적 효력이 전혀 없다. 지자체가 중앙정부에 산단 지정을 요구하면서 유치 예정기업을 부풀려도 검증할 수단이 없다는 의미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산단은 ‘지정되면 끝’이라는 경우가 많기에 철저한 사후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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