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李대통령, 남을 좁게 여기지 마소서"…사서삼경 완역 대가의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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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백효 해동경사연구소 소장이 평생의 과업인 사서삼경의 완역을 끝냈다. 김현동 기자

“군주는 백성이 아니면 부릴 사람이 없고, 백성은 군주가 아니면 섬길 사람이 없습니다. 스스로 크다 하여 남을 좁게 여기지 마소서(后非民罔使 民非后罔事 無自廣以狹人).”

‘한학의 대가’ 한송(寒松) 성백효(80) 선생에게 “새 대통령에게 전하고픈 말씀”을 묻자 나온 답이다. 성 선생은 유명 로펌 변호사부터 서울대 의대·법대 교수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학자다. 한학자였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어린 시절부터 공교육 대신 사서삼경(四書三經) 등 고전을 깊게 공부했다. 1990년대부터 주 1회씩 모여 그에게 한학과 고전을 공부한 오피니언 리더들이 여럿이다. 2014년에는 성낙인 당시 서울대 총장의 요청으로 졸업식 축사를 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고전번역원 명예교수이자 해동경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그런 그가 최근 서경(書經)을 우리말로 편히 읽을 수 있게 돕는 『신역 서경집전』을 펴냈다. 평생의 염원이었던 사서삼경의 현대 한국어 완역이란 대장정을 서경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성 선생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권한 글귀도 이 책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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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백효 선생이 최근 낸 완역 개정본.

그는 지난달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약 4300년 전의 이야기를 다룬 이 고전은 지금에도 갖는 울림이 크다”며 “한문은 ‘뜻글’인 만큼 그 깊이가 남다르다. 디지털 시대, 인공지능(AI)의 시대일수록 깊은 지혜와 뜻을 구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인터뷰 중간중간 붓펜을 꺼내어 한자 표기 등 팩트를 거듭 확인하는 꼼꼼함도 보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왜 지금 서경인가.  
“서경은 주로 정치사상을 다루는데, 오늘날에도 좋은 나침반이 된다. 내 나이 80인데 정치가 이렇게 혼란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옳고 그름이 사라졌다. 자신이 지지하는 당이라면 뭘 했어도 용인하는 게 대표적 현상이다. 조선시대 세종대왕 시절을 떠올려보자. 세종대왕이 내는 의견에도 반대 목소리를 내는 신하가 꽤 있었다. 조선왕조가 500년을 갈 수 있었던 까닭이다. 송나라 역시 300년을 구가했는데, 임금 앞에 ‘간언하는 신하는 절대 죽이지 말라’는 문구를 써놓았었다고 한다. 국무위원이 몇십명이 되어도 말없이 따르기만 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다.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세계 많은 나라가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만, 용기를 내어 간언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찌 보면 지금 우리는 조선시대보다 후퇴해 있다.”

‘동양 고전의 요체’로 불리는 사서삼경은 논어·맹자·대학·중용의 사서와 시경ㆍ서경ㆍ역경의 삼경으로 구성된다. 성 선생은 이 고전에 설명을 붙이고 우리말로 풀어내는 작업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았다. 30여 년 전에 삼경의 주석서를 국내 처음으로 펴냈고, 2016년 사서의 번역·주석을 수정·보완한 책을 냈다. 이어 2023년 『신역-주역집전』, 2024년 『신역-시경집전』을 낸데 이어, 이번에 낸 책으로 사서삼경 집전을 매듭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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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백효 선생의 책은 무겁고 두껍다. 그만큼 지혜로 가득차 있다. 김현동 기자

사서삼경 중 서경이 갖는 의미는.
“조선시대 신하들이 상소문에 서경을 참 많이 인용했다. ‘임금이여, 신하의 말이 마음에 거슬린다면 그것이 도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시오’라거나 ‘나무가 목수를 따르면 곧아지듯, 임금은 간언하는 신하의 말을 따르라’ ‘아무 일이 없을 때를 경계하소서, 향락에 빠지지 마시옵소서’ 또는 ‘백성은 나라의 뿌리이니, 뿌리가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다’ 등의 알찬 구절로 가득하다. 이번에 낸 책은 1만자가 넘는 작업이었는데, 물론 돈을 벌려고 한 건 아니다(웃음). 그러고 보니 서경엔 ‘절대로 부자가 되지 말라, 부를 죄악시하라’는 가르침도 담겨 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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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중앙포토, 통나무 출판사 제공]

오늘날 정치인들에게 조언한다면.
“정치는 감동을 줘야 한다. 감동은 나를 내려놓는 데에서 생겨난다. 나를 챙기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남을 위하는 것이 진짜 정치인 것이다. 맹자가 ‘천리를 따르면 이로움을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을 했다. 날 돌보지 않으면 물론 당장은 손해일 수 있지만 그래야만 남을 위할 수 있다. 지금의 정치를 보면 밥벌이를 위한 정치, 직업으로서의 정치만 보여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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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백효 선생은 책의 구절을 언급할 때마다 붓펜과 메모지를 사용해 한자를 일일이 점검했다. 김현동 기자

공교육을 안 받은 이유는.  
“한학자였던 아버지가 ‘한학만이 진정한 학문’이라고 굳게 믿으셨다. 집에서 한문과 고전 경전만 공부시키셨다. 한글은 아버지 몰래 배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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