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현장에서] 사과·반성 대신 유감만…그들의 뒤늦은 복귀, 박수 못 치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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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회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김택우 대한의사협회장이 12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의과대학 교육 정상화를 위한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국민과 의료계 모두가 긴 고통을 겪은 현실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12일, 이선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비상대책위원장)
"환자와 보호자가 겪었을 불안함에 마음이 무겁다."(14일, 한성존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
지난해부터 의정갈등 정국을 끌어온 의대생·전공의 단체 대표들이 이틀 간격으로 내놓은 발언이다. 1년 반 가까이 지리하던 사태가 끝을 향해가는 상황. 가벼운 목례 같은 의례적인 '유감'은 있었어도, 지난 시간에 대한 사과, 반성의 언어는 없었다.
정부·교수 등의 계속된 복귀 요청에도 요지부동이던 의대생들이 유급 확정 직전인 12일 밤 민주당·대한의사협회와 함께 "모두 학교에 돌아가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사직 전공의들도 14일 국회 보건복지위 의원들과 '의료 재건' 간담회를 갖고 수련 복귀에 속도를 냈다.
새 정부 출범 후 의료공백 장기화의 양축인 의대생·전공의의 복귀가 가시화하면서 의·정 양측에서 환영 입장이 나온다. 김택우 의협 회장이 "그들의 용기와 고민이 (우리가) 정상화라는 출발선에 다시 서게 해줬다"라고 말하고, 김민석 국무총리가 "큰 일보전진으로 다행"이라고 SNS에 올리는 식이다.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회의실에서 박주민 위원장(왼쪽)을 비롯한 복지위 의원들이 대한전공의협의회 한성존 신임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비대위원들과 중증·핵심의료 재건을 위한 간담회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정작 수술과 진료로 마음 졸이던 피해자, 누구보다 이들의 복귀를 환영해야 할 환자단체는 달갑지만은 않다. 사과나 반성, 의료 시스템 개혁 없는 '복귀만능주의'로는 의료공백 문제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김성주 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국민과 환자에게 직접 진정성 어린 사과하고, 그 후에 복귀 조건 등을 논의하는 게 올바른 순서"라면서 "긴 고통을 겪은 현실에 비하면 가볍게 유감으로 넘어가는 형국이다. 곪은 상처를 그냥 덮어두고 봉합해도 언제든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단체연합회도 "의대생 복귀는 반가운 일이지만, 특혜로 인식될 수 있는 예외적 조치는 정의와 형평성에 어긋난다. 복귀는 조건 없이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13일 기자회견)라고 지적했다.
학교와 병원을 묵묵히 지켰거나 앞서 복귀한 이들이 돌아오겠다는 동료·선후배를 보는 시선도 씁쓸하긴 마찬가지다. '배신자'라는 낙인 하에 이뤄졌던 블랙리스트 작성·유포, 단일대오 유지를 앞세운 집단행동 압박 같은 어두운 과거가 바로 어제 일 같아서다. 정부가 지켜온 '학사 유연화 불가' 같은 원칙도 어느새 '대승적 차원'이라는 목소리에 흔들린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정부의 ‘환자 중심 의료개혁’ 실현과 정부와 국회에 의정갈등으로 인한 의료공백 재발 방지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복귀 전공의 A씨는 "환자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는데, 그런 책임감은 의료 현장에서 환자를 보면서 느껴야 진심이 전달되는 것"이라면서 "그동안 익명에 숨어서 블랙리스트 등의 사고를 친 것부터 국민께 제대로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대생 B씨는 "이른바 사과 한 번에 그동안 지켜온 원칙이 구부러지는 의대생만의 특권에 씁쓸하다"고 했다.
특히 의정갈등에 휩쓸린 피해자들은 '2차 피해'까지 우려한다. 의정갈등에도 중환자실을 떠나지 않았다는 전공의 C씨는 최근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뒤 허위 정보로 시달렸다는 그는 "전공의 복귀 뉴스가 나오고 나서부터 잠도 잘 오지 않고, 마음이 불안하다. 그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면, 병원에서 계속 일할 수 있을까"라고 토로했다.
우리 사회가 지금 박수치고 환영할 대상은 나갔다 돌아온다는 그들보단, C씨처럼 원래 있어야 할 곳을 지키고 있던 이들이다. 의대생·전공의 귀환으로 기대하는 '의료 정상화'도 제대로 된 반성과 사과, 조건 없는 복귀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복귀·미복귀자, 환자·의료계 간의 융합과 이해가 이뤄진다. 의료계 일부서 외치는 "정부 공식 사과" 요구도 공허하게 들리지 않을 수 있다.
"이번 기회에 환자와 국민이 생명을 위협받는 사태는 두 번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켜켜이 쌓인 불신부터 치유해야 합니다. 사과를 하고, 머리를 맞대고, 방향을 고민해야죠." 김성주 대표의 쓴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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