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이창용 “한은의 거시건전성 역할 강화해야”...목소리 높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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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하반기 첫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2.50%로 동결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집값 상승세를 막으려면 거시건전성 관리 기조를 이어가야 한다면서 한은의 역할 강화를 주장했다. 경기 부양을 위해선 기준금리를 더 내려야 하지만 집값ㆍ가계대출이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이 총재가 금융정책 구조 개편에 목소리를 냈다.

이 총재는 16일 “한은은 주요국 중앙은행과 달리 직접적인 거시건전성 정책 수단과 미시건전성 감독 권한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며 “중장기적으로는 한은의 거시건전성 역할을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적ㆍ제도적 장치를 보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날 아시아개발은행(ADB), 국제통화금융저널(JIMF)과 공동개최한 ‘포용적 성장을 위한 개발도상국과 신흥국의 재정ㆍ통화정책’ 컨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맡았다. 여기서 그는 “거시건전성 정책 강도나 방향에 대해 정부와 이견이 있을 경우 정책 대응의 신속성과 유효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총재는 지난 10일 기준금리 동결 직후 기자간담회에서도 “거시건전성 정책을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 강력히 집행할 수 있는 툴(수단)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걸 정부만 하면 안 된다”며 “막상 경기가 나빠지면 거시건전성 정책 강도가 낮아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존의 ‘F4회의(거시경제ㆍ금융현안 간담회)’에서 기재부ㆍ금융위ㆍ금감원과 함께 정책을 논의하되 “정치적 영향 없이 정책이 강력 집행되도록, 한은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지배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안심하고 금리를 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한은이 직접 나서고 싶다는 얘기다.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나타난 집값 상승세는 통화정책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미국 관세, 잠재성장률 하락세에 대응하기 위해선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 하지만 ‘부동산 영끌’을 부추겨 가계부채가 늘면 또다시 성장과 소비가 침체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한은은 지난달 27일 국정기획위원회 업무보고 때도 이런 입장을 전달했다. 특히 통화정책과 관련이 높고 금융안정에도 영향을 미치는 “신용ㆍ자본ㆍ유동성 규제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결정하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담보인정비율(LTV),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등을 위기 발생 시 최종대부자 역할을 하는 한은이 결정한다면, 보다 신속하고 선제적인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이와 함께 한은의 은행ㆍ비은행 단독검사권이 필요하다는 내용도 보고서에 담겼다. 한은은 1998년까지 산하에 은행감독원을 두고 건전성을 관리했지만, 외환위기를 계기로 은행 감독권을 금융감독원에 내줘야 했다. 현재는 금감원에 은행에 한한 공동 검사ㆍ조사만 요구할 수 있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거시건전성 정책 수행 시 미시건전성 감독 권한도 보유하는 것이 정책 효율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면서도 “현실적인 어려움 등을 고려해 단독검사권 행사를 통해 거시건전성 정책을 뒷받침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은 관계자는 “은행감독원 체제를 부활시키자는 게 아니라 한은이 통화정책 수행 등에 필요할 때마다 은행ㆍ비은행의 경영 상태를 직접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내부에선 한은의 거시건전성 역할 강화 제안이 금융위ㆍ금감원과의 권한 다툼으로 비치는 데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그간 F4회의를 통해 통화ㆍ재정 정책 공조가 유기적으로 이뤄져 왔는데 또 다시 갈등이 생긴 걸로 비춰질 수 있어서다. 은행감독원 체제 부활은 실현가능성이 적은 만큼 기관간 공조를 강화하면서 실리를 챙기는 편이 더 낫다는 게 한은 고위직의 시각이다.

기재부ㆍ금융위ㆍ금감원ㆍ한은이 참여하는 가칭 ‘거시건전성정책 회의’를 만들어 DSR 규제 수위 등을 결정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한은 관계자는 “한은이 은행ㆍ비은행 단독검사권을 갖게 된다면 물론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금감원과의 공동검사 기능을 강화하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며 “보고서에는 국정위 요구를 반영해 한은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안을 담은 건데, 기관 간 싸움으로만 비춰지는 것 같아 난감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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