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美·日 의무화 없앴는데…재계 찬반 팽팽 '집중투표제'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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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열린 상법 추가 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이 진술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 부회장, 김우찬 고려대 교수,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윤태준 주주행동플랫폼 액트 연구소장. 연합뉴스
‘더 센 상법’에 대한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 보완 입법을 다음 달 4일 처리할 방침이다. 특히 소액주주가 원하는 이사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는 집중투표제에 대해, 재계는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니다”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상법 추가 개정에 대한 찬반 양측의 입장 차는 여전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지난 11일 공청회를 열었고, 17일 대통령실도 전문가를 초청해 비공개 상법 간담회를 열었지만 합의점을 찾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찬성 측은 “상법 개정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대 측은 “해외 투기자본에 의한 경영권 위협이 심화할 것”이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상법 2차 개정으로 대규모 상장사의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집중투표제란 2인 이상의 이사 선임 시, 주식 1주마다 선임할 이사 수만큼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소액주주가 10주를 보유한 회사에서 이사 3명을 뽑는다면, 이 주주는 총 30표를 이사 후보 1명에게 몰아줄 수 있다. 소액주주가 미는 후보가 이사회에 진입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국내에는 1998년 집중투표제가 도입됐으나 대다수 기업이 이를 정관에서 배제해,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 추진과 관련해 경제계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경제6단체 부회장단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계는 선진국 중에서 집중투표제를 채택한 국가가 많지 않고, 러시아·중국·대만·사우디아라비아 등 일부만 의무화해 글로벌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1940년대 22개 주에서 집중투표제를 강제했지만, 1950년대 이후 대부분 자율로 전환해 현재 애리조나·노스다코타 등 5개 주에서만 유지하고 있다. 일본은 1950년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했다가 1974년 폐지했다.
익명을 요청한 재계 관계자는 “미국에선 이사회 내 파벌 등 부작용으로 집중투표제를 강제한 주에서 회사 설립 기피 현상이 발생했고, 일본 역시 경영권 위협 논란이 이어지자 의무화를 폐지했다”라며 “기업 지배구조를 선진화하자면서 왜 선진국에서 이미 실패한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상법 개정 찬성 측은 집중투표제가 경영 활동을 저해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없다고 반박한다. 윤태준 주주행동플랫폼 ‘액트’ 연구소장은 “미국에서의 부작용은 창업자가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 초기 기업에서 주로 발생했기에, 대형 상장사를 대상으로 하는 한국과 상황이 다르다”라며 “집중투표제가 경영 투명성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건 이미 학계에서 입증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만약 집중투표제로 경영권이 이전된다면, 이는 대주주나 경영자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여야가 합의한 상법개정안이 지난 3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또 하나의 쟁점은 집중투표제가 소액주주 보호가 아닌 2·3대 주주 영향력 확대에만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소액주주들이 똘똘 뭉쳐 전문성 있는 이사 후보를 추천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최대주주·2대 주주 간 분쟁이나 투기 자본의 공격 상황에 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지난 11일 공청회에서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되면 주주총회가 다양한 목적을 가진 주주집단의 갈등과 투쟁의 장이 되며, 이사회는 각 주주집단의 대리전 같은 전쟁터가 될 것”이라며 “기업의 장기 경영 전략과 가치가 훼손될 수 있고, 회사의 영업비밀과 경영정보가 해외 투기자본 등 외부로 유출될 위험이 커진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도 찬성 측은 과도한 우려라고 본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한국은 이사회라는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어 최대주주가 극히 적은 지분율로 이사들을 모두 선임하고 있다”며 “막연한 가상의 외국 투자자들을 투기자본으로 몰지 말아야 하며, 이사로 선임되면 비밀유지 의무가 있으니 기밀 유출은 과도한 걱정”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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