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엔진을 잘못 껐다”...무안공항 참사, 조종사 과실 논란 [뉴스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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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7일째인 지난 1월 4일 무안공항에서 로컬라이저(방위각시설) 둔덕에 파묻혔던 항공기 엔진을 실은 트럭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조종사가 손상이 큰 오른쪽 엔진 대신 상태가 나은 왼쪽을 껐다.”
지난 19일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이하 사조위)가 무안공항에서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을 상대로 가진 ‘합동 엔진 정밀 조사 결과’ 설명회에서 밝힌 내용이다. 제주항공의 무안공항 참사는 지난해 12월 29일 발생해 179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설명회에서 사조위는 유가족에게 공유한 자료에서 “조종사가 조류 충돌(버드스트라이크)로 심각한 피해를 본 오른쪽 엔진을 중단시켜야 했는데, 작동 중이던 왼쪽 엔진을 잘못 껐다”며 “그 결과 왼쪽 엔진이 출력을 완전히 잃었고, 랜딩기어(착륙바퀴)도 정상 작동하지 않았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조위는 오른쪽 엔진도 손상이 심하긴 했지만, 출력을 완전히 잃은 건 아닌 것으로 판단한 거로 전해졌다. 사조위는 사고 당시 4분 분량의 블랙박스(비행기록장치, 조종실 음성기록장치) 기록이 없는 것과 관련해선 엔진에 연결돼 전력을 만들어내는 엔진전력장치(IDG), 즉 발전기가 고장 난 때문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사조위는 지난 5∼6월 사고기의 양쪽 엔진을 제작사(CFM인터내셔널)가 있는 프랑스 파리로 옮겨 정밀조사를 진행한 결과 이런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일 오후 무안공항에서 예정됐던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엔진 정밀조사 결과 브리핑이 취소되자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관계자들이 브리핑장을 벗어나고 있다. 연합뉴스
정밀조사에는 사조위 조사관들과 기체 제작국인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 미국 연방항공청(FAA), 보잉, 프랑스 항공사고조사위원회(BEA), 엔진 제작사 등 관계자들이 공동 참여했다.
그런데 이날 나온 조사결과가 무안공항 참사의 최종 조사결과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알려지거나 추정된 내용과는 차이가 크기 때문에 적지 않은 논란과 공방이 예상된다.
지금까지는 사고 여객기가 착륙 과정에서 양쪽 엔진 모두에 조류충돌이 발생하면서 두 엔진이 다 손상을 입었고, 이로 인해 항공기 전기와 유압 장치도 문제가 생기면서 랜딩기어도 내려오지 않은 상태에서 비상 동체 착륙을 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하지만 비교적 정상 작동 중이던 왼쪽 엔진을 조종사가 실수로 끈 게 맞는다면 사고 원인이 조종사 과실 쪽에 무게가 크게 실리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만약 왼쪽 엔진이 제대로 살아있었다면 두 번째 착륙 때 정상적으로 왼쪽으로 선회해서 첫 번째 착륙 방향으로 다시 내려올 수 있었을 것”이라며 “랜딩기어 역시 제대로 작동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오른쪽 엔진도 일부 출력이 남아 있었지만, 정상적으로 선회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게 사조위 판단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사고 여객기는 조류 충돌 뒤 복행(착륙을 중지하고 다시 고도를 다시 높이는 행위)하면서 왼쪽이 아닌 오른쪽으로 선회해 첫 번째 착륙 시도 때와 반대방향으로 비상착륙을 시도하다가 콘크리트로 된 로컬라이저(방위각 시설) 둔덕에 부딪혔다.

지난 4월 사조위 관계자들이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를 현장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항공업계에선 최근 인도에서 발생해 274명이 사망한 에어인디아 여객기 추락사고와 유사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최근 공개된 해당 사고의 예비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엔진으로 연료 공급을 조절하는 스위치 2개가 ‘작동’에서 ‘차단’ 위치로 갑자기 전환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10초 만에 스위치를 다시 켰지만, 엔진이 모두 동력을 회복하지 못했고, 하강을 거듭하던 여객기가 지상으로 추락했다는 것이다. 조종사끼리 왜 연료를 차단했느냐를 놓고 나누는 대화 내용도 기록돼 있다.
그러나 이번 사조위 발표는 최종 조사 결과가 아닌 데다 사고 원인을 밝히는 데 핵심인 블랙박스 기록에 정작 사고 당시의 내용은 없는 탓에 유가족은 물론 사고 관계자들의 동의를 끌어내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설명회 당시 유가족들은 “모든 사고 원인을 새와 조종사 과실로 돌린다”며 크게 반발했다고 한다. 특히 사고 피해를 키운 ‘로컬라이저 둔덕’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제주항공 조종사노조도 “사고 원인을 조종사 과실 중심으로 만들려는 의도”라며 비판 성명을 냈다.
또 다른 항공업계 관계자는 “결국 사조위가 유가족과 항공사, 항공기 제작업체 등이 모두 수긍할 수 있는 조사결과와 근거자료를 제시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무안공항 참사의 책임 논란이 커질지, 수그러들지 판가름날 것 같다”고 말했다. 최종 조사결과는 내년께 나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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