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한국, 규제 막혀 10년 허송세월…자율차 기술력 세계 10위밖 '후진&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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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무인택시 400대가 도심을 누비는 중국 우한과 달리 서울은 아직 거의 모든 차량이 ‘이름만 자율주행차’다. 자율주행 스타트업 라이드플럭스에서 운행하는 1대만이 올해부터 운전석을 비운채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시범구역을 달리고 있다. 나머지는 사람이 동승하지 않으면 출발도 못하고, 그마저 심야에만 시험 주행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한국 자율주행은 경험·제도·원천기술이 모두 부족한 3무(無) 상태”라고 분석한다.

지난해 9월부터 강남 지역에서 심야 시간대에 운행을 시작한 자율주행 택시. 스타트업 SWM의 주행 기술과 카카오모빌리티의 플랫폼이 만난 이 서비스는 시범 운행 기간 동안 무료로 제공된다. 사진 서울시
국내 자율주행이 시작부터 뒤쳐졌던 건 아니다. 2016년 2월 자율주행차의 법적 정의와 임시운행허가 제도 등을 담은 자동차관리법이 처음 개정·시행됐다. 정부 차원에서 자율주행 상용화 추진을 언급한 건 2015년이고 학계와 업계에서 관심을 가진 건 훨씬 전이다. 그러나 10여년이 흐른 지난달 기준, 국내 자율주행 차량은 471대가 전부다. 그 사이 자율주행차 상용화 촉진 및 지원 법률(2019년), 자율주행차 규제혁신 로드맵(2021년), 레벨4 자율주행 성능인증제(2024년) 등이 도입됐지만 완전 무인차의 실제 도로 투입은 한참 늦어졌다.
의지도 있고 제도도 조금씩 보완됐음에도 상용화가 더딘 이유는 자율주행 경험, 테스트 베드가 턱없이 부족해서다. 자율주행 성능 개선의 필수 조건은 주행 데이터다. 그런데 관련 법은 테스트를 권장하기 보단, 대부분 규제하는 내용이다. 때문에 현재 서울에서 운행 중인 로보택시는 3대, 자율주행 셔틀버스 등을 포함해도 단 27대만 시범구역에서 달릴 수 있고 실제 돈을 받고 서비스를 하는 것도 아니다.

인천공항 연결로에서 시범 운행 중인 자율주행 ‘로보셔틀’의 모습. 운전석에 운전자가 앉아있는 상태로 주행한다. 이수정 기자
업계에선 “주행 데이터 축적을 막는, 엄격하거나 모호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제도가 기술 발전 속도를 못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운전석에 안전요원이 탑승해야 시속 10㎞ 초과 주행을 허용하거나 어린이 보호구역에선 자율주행을 아예 금지하는 것 등도 과도한 규제로 꼽힌다. 신동훈 한국해양대 인공지능학부 교수는 “안전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려면 실제 도로에서 쌓은 데이터가 필수”라고 말했다.
부처간 칸막이나 주도권 다툼 등이 규제 개선을 더 늦춘다는 목소리도 높다. 2021년 정부의 자율주행 기술 개발 혁신 사업 추진 당시 차량 융합 신기술은 산업통상자원부,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신기술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자율주행 서비스는 국토교통부와 경찰청 등의 소관이었다. 또 차량·교통망 연결 관련 기술 표준을 두고 부처간 힘겨루기로 수년을 낭비하기도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자율주행 규제 권한을 차지하기 위한 것 아니겠냐”며 “컨트롤타워가 없어 뭐 하나 바꾸기도 어렵다. 정부만 그런게 아니라 업계도 완성차와 통신, IT·소프트웨어 회사 등이 주도권과 예산을 두고 싸우느라 시간을 낭비한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김주원 기자
결과적으로 10여년을 허비한 한국 자율주행 기술은 크게 뒤쳐졌다. 시장조사 기관 가이드하우스의 2024년 자율주행 기술 순위에서 한국 기업은 한 곳도 10위 안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직전 해 5위를 한 현대차그룹의 모셔널은 15위로 밀렸다. 업계에서 ‘최후의 기회조차 잡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중국과 한국의 안전 인식 차이도 감안해야겠지만, 자율주행 혁신을 따라가기라도 하려면 ‘안 되는 것 빼고 다 해보는’ 네거티브 규제로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 모빌리티 기업 관계자는 “자율주행은 단순 산업을 넘어 이동 데이터 주권, 국민 안전과 안보까지 연관된 문제다. 검증된 해외 기업과 협력하고 그 기술을 전략적으로 받아들여 서비스 경쟁력 향상과 기술 국산화를 이뤄야 한다. 과거 한국의 기술 자립 성공 공식에서 교훈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기술이 앞선 해외 자율주행차를 들여와 운영 경험을 쌓으며 우선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라도 돼야, 미래 경쟁에 참여할 수 있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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