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산사태·홍수 위험한데…캠핑장 "호우경보에도 환불 불가" 배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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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마일리 수해 현장에서 경찰 과학수사대가 현장을 살펴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일 198㎜ 폭우로 발생한 산사태가 휩쓴 경기 가평군 조종면 마일리의 캠핑장은 토사에 뒤덮여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진입로 다리는 원래 없던 것처럼 급류에 떠내려가 사라졌고 건물 잔해들만 강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강 건너 맞은 편 산길 도로 곳곳엔 ‘낙석 위험’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캠핑장 직원 A씨(54)는 구조 직후 “사고 난 구역 근처에 풀이 많아 사장 지시로 굴착기로 땅을 고르는 작업을 했었다”고 전했다.

국내 캠핑장 다수가 골짜기와 계곡 등 산사태와 홍수 위험 지역에 몰려 있어 안전 관리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전국에 등록된 캠핑장은 4323곳에 달한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엔데믹 이후 캠핑업계가 외형적으로 급성장했지만 내실을 다져야 할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캠핑장은 지방자치단체 등록, 인허가제로 운영된다. 2015년 3월 인천 강화군 글램핑장 화재로 5명이 숨진 사건 이후 관광진흥법이 개정되면서 안전 기준이 강화됐다. 야영장을 운영하려는 사업자는 허가 기준에 맞게 안전시설 등을 설치한 뒤 지자체에 등록을 신청해야 한다. 지자체는 정기적으로 등록 야영장을 지도·감독하고, 미등록 야영장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점검을 맡는 지자체 담당 인원은 태부족이라 한계가 있다. 경기 가평군의 경우 298개 캠핑장을 직원 2명이 관리 중이다. 가평군 관광과 관계자는 “서울 면적보다 큰 구역을 매일 출장 다니면서 점검하고 있다”면서 “생활인구 수가 아니라 주민등록인구 기준으로 직원을 배치하기 때문에 늘 인력이 부족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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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경기 가평군 마일리 한 캠핑장을 방문했던 시민이 집중호우로 도로가 끊어져 로프로 구조되고 있다. 연합뉴스

불법 캠핑장의 배짱 운영도 골칫거리다. 경기도 특별사법경찰은 임야에서 산지 전용 허가를 받지 않고 형질을 변경하거나 등록 없이 야영장을 운영하는 행위를 적발하고 있다. 특사경에 따르면 2022년 11건, 2023년 15건, 2024년 10건 등 야영장 불법 행위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캠핑 시설 설치를 위해 나무를 베다가 적발된 사례도 있다고 한다.

미등록 야영장은 보험을 들지 않아 사고가 나더라도 배·보상을 받기 어렵다. 경기도 특사경 관계자는 “현장에 가보면 ‘왜 우리만 단속하냐’, ‘나는 몰랐다’ 등 발뺌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업주의 안전불감증이라고 느낄 만한 현장이 매우 많다”고 말했다.

호우 경보에도 환불 불가…“돈보다 안전이 최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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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경기도 가평군 수해로 인해 피해를 입은 조종면 마일리 캠핑장 인근에 차량이 침수돼 있다. 전민규 기자

악천후에도 환불을 거부하는 캠핑장이 많은 현실도 문제다. 이날 네이버 캠핑 커뮤니티에선 호우 경보에도 환불을 받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캠핑을 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불만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한 회원은 “호우주의보가 내렸는데 천재지변도 환불 안 해준다고 대놓고 공지해둔 업체가 있다”며 “소비자원에 신고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거냐”는 글을 올렸다. 다른 회원은 “호우 경보가 떠도 ‘우리 캠핑장은 괜찮다’는 업주 말만 돌아올 뿐”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캠핑장 피해구제 신청은 총 327건으로 집계됐다. 환불 관련 민원이 75.2%(246건)를 차지했고, 그중에서도 기상 변화나 천재지변으로 인한 분쟁이 33%(61건)로 가장 많았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르면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 사유로 이용할 수 없는 경우 당일 취소도 전액 환불 대상이지만 강제성은 없다.

전문가들은 호우 특보 등 재난 상황에는 관련 규제를 강화하거나 업계 차원에서 합리적인 환불 정책을 자율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용자 역시 캠핑장 위약금을 꼼꼼히 살펴보고 우중(雨中) 캠핑 등 위험한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훈 교수는 “안전은 최우선 가치이기 때문에 예약 변경 또는 취소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도 “정부가 규제에 나서기 전에 사업자 간 협의를 통해 합리적 환불 기준을 정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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