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너를 사랑해 사랑해…아니, 너를 멸종해 멸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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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혜 작가는 “‘내 얘기 같았다’는 독자의 반응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사진은 그가 지난 19일 독자들과 만나는 모습. [사진 문학과지성사]

지난해 10월 출간된 유선혜(28) 작가의 첫번째 시집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의 표제작은 이렇게 시작한다. “공룡은 운석 충돌로 사랑했다고 추정된다/현재 사랑이 임박한 생물은 5백 종이 넘는다/우리 모두 사랑 위기종을 보호합시다”

단순히 ‘멸종’을 쓸 자리에 ‘사랑’을 끼워 넣은 걸까? 그랬다면 그의 시집이 출간 9개월 만에 9쇄를 찍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인은 마지막 연에 다다를 때 이렇게 고백한다. “멸종해, 너를 멸종해” 그즈음 독자는 알 수 있다. 유선혜는 ‘멸종’을 ‘사랑’만큼 의지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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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중앙일보에서 만난 유 작가는 두 단어를 바꿔 놓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모든 것이 소중하지만 동시에 허무한 느낌. 사랑과 멸종 모두 그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봤다.” 그는 시집에 실린 조연정 문학평론가의 해석에 마음이 동했다. 조 평론가는 “멸종을 눈앞에 둔 마음으로 ‘슬픈 동물’처럼 사랑하는 ‘우리’가 함께 손을 잡고 계속 다음을 향해 걸어보자는 ‘우리’이기도 할 때, 미래의 고통은 오늘의 기쁨으로 견뎌질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덕분에 유 작가는 “사랑과 멸종이라는 두 단어는, 우리가 삶을 견디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밝고 쨍한 시집 표지와는 달리, 당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 여성의 불안 등 어두운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이에 공감한 젊은 독자들이 그의 시집을 찾았다. 예스24에 따르면, 『사랑과 멸종을…』 구매자 중 2030 여성의 비율은 59.4%에 달한다.

그는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 같은 대학 국문과 대학원을 마치고 현재는 석사 졸업논문을 준비 중이다. 2022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쓰기와 읽기는 내 삶의 본질적인 요소였다”며 “학부 때 시 읽기 동아리에 들어가며 시를 쓰게 됐고, 취미로 쓴 시를 투고하다가 등단하게 됐다”고 말했다.

시 중에는 ‘우울하다’는 대학생 화자에게 ‘시를 읽지 말라’고 조언하는 교수가 나온다. ‘시’를 현실과 동떨어진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그는 “직접 들은 말을 기반으로 쓴 시”라며 “하지만 글을 쓸 때도 자질구레한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결과물은 아름다울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현실적인 일”이라고 했다.

좋아하는 시인으로는 최승자, 기형도, 김중식 시인 등을 꼽았다. “분명 지금 청년들도 실존의 비극 등 과거 세대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있을텐데, 과거와 달리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이야기들을 더 꺼내 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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