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관세협상 지렛대 K조선 “미 투자압박 커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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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협상 핵심 포인트

다가올 한미 관세 협상에서 조선업이 한국 정부의 협상 지렛대로 급부상하고 있다. 업계에선 ‘협상의 달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대면에서 성과를 내려면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 조선업의 확고한 기술 우위가 미국에 자본투자 이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23일 먼저 협상을 마친 일본이 5500억 달러 이상의 현지 투자를 약속한 사례로 볼 때, 조선업 재건을 원하는 미국이 한국에도 수십조 원 이상의 투자를 요구할 수 있어서다.

지난해 트럼프 재선 확정 이후 한국 조선업체들은 현지 업체들과 협력 접점을 늘려왔다. HD현대는 미국 현지 조선업체 ‘에디슨 슈에스트 오프쇼어’(ECO)와 중형급 컨테이너 운반선을 공동 건조하기로 하고 협업을 구체화하고 있다. 22일부터 이틀간 방한한 ECO 대표단과 공동 건조에 대해 논의하는 등 속도를 내고 있다. 앞서 지난 4월엔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인 헌팅턴 잉걸스와 업무협약(MOU)를 맺고 생산성 향상과 첨단 기술 분야의 협력을 다짐했다. 향후 미 해군 함정 건조에 참여할 가능성을 기대한 행보다.

한화오션도 지난해 12월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의 건조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최근 한화그룹 해운사를 통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건조를 발주했다. 한화필리십야드가 한화해운으로부터 3480억원 규모의 건조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미국 조선소가 LNG선을 수주한 건 1979년 후 46년 만이다. 1980년대 들어 군함 생산 체제로 전환한 미국 조선사들은 화물창·배관 등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LNG 운반선 시장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일단 수주 기록은 만들었지만 선박 건조는 한화오션의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한다. 인력과 기술력이 부족한 한화필리십야드는 미국 내 행정 절차만 진행하는 모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LNG선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 경험이 부족한 필리조선소가 이번에 경험을 쌓아 추후 독자적인 건조 능력을 갖추게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한국에서 짓고 미국서 인증한 선박을 미국 정부가 ‘미국산’으로 인정할 지는 관건이다. 현재 미국 법에 따르면 ‘수입 부품이 전체 선박 건조 비용의 25% 이하’이고, ‘미국서 용접 등을 거쳐 구조체를 완성한 선박’이라는 조건을 만족해야 미국산으로 인정 받는다. 미국이 이 원칙을 고집한다면 한화 등 한국 업체들이 현지 조선소에 대규모 자본과 인력을 투입해야 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선업체 임원은 “현대차그룹이 31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발표한 것처럼, 조선업계도 수조 혹은 수십조원의 현지 투자를 바라는 분위기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국에선 현재 숙련 인력 구하기가 힘든 상황이라 투자를 해도 생산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가 협상에서 풀어야 할 부분이다.

한미 양국 건조 모델이 인정받는다면 한국 기업들이 부담은 덜고 실속을 더 챙길 수 있다. 한국이 미국 조선업의 재건을 돕는다는 명분을 쌓으면서도 미국 LNG선 건조 수요를 한국 조선사들이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 연방 정부는 2029년부터 미국산 LNG를 수출하려면 미국산 선박을 쓰도록 의무화할 예정이라, 미국산 LNG 운반선 수요는 증가할 전망이다.

채우석 방위산업학회 이사장은 “미국 민주당·공화당 모두 국가 안보 차원에서 조선업 재건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조선업 카드가 있으므로 정부가 미국 측에 끌려다닐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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