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트럼프 사돈·친구·인플루언서 임명되는데…주한 美대사는 공석, 왜

본문

“지난해 싱가포르의 대미 무역 흑자 규모가 얼만가요.”(태미 덕워스 상원의원)
“800억 달러(약 110조4000억원), 아니 180억 달러(약 24조8000억원)입니다.”(안자니 시나 주싱가포르 대사 지명자)
“28억 달러(약 3조8000억원)입니다. 당신은 이 자리를 그저 ‘화려한 여행지’ 정도로 취급하고 있네요. 정신 차리고 공부 좀 하세요.”(덕워스 의원)

1753301981919.jpg

지난 9일 미 상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한 안자니 시나 싱가포르 미국대사 지명자가 태미 덕워스(민주ㆍ일리노이) 상원의원 질문에 답변하는 모습. 그는 싱가포르의 대미 무역흑자를 800억 달러라고 답변했다고 이윽고 180억 달러라고 수정했다. 이에 덕워스 의원은 28억 달러라고 바로 잡았다. 덕워스 의원 유튜브 캡처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태미 덕워스(민주·일리노이) 상원의원과 안자니 시나 주(駐)싱가포르 대사 지명자 간에 오고 간 질의 응답이다. 이 장면은 곧바로 싱가포르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됐다. 시나 지명자의 횡설수설하는 듯한 답변에 “관세가 모욕인지, 이 사람을 대사로 받는 게 더 큰 모욕인지 모르겠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인도 출신의 시나 박사는 지난 3월 대사로 지명됐다. 영국 BBC에 따르면 정형외과·스포츠의학 전문의인 그는 뉴욕에서 여러 의료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거주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마러라고 리조트가 있는 플로리다주(州)다. 외교위 청문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린지 그레이엄(공화·사우스 캐롤라이나) 상원의원은 시나 지명자를 “트럼프 대통령의 10년 지기 친구”로 소개했다.

17533019821583.jpg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찰스 쿠슈너(오른쪽) 신임 프랑스 대사가 지난달 18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사우스 론에서 미국 국기가 게양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시나 지명자 사례처럼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서 각국 대사 인선엔 외교적 전문성보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과 충성심 등이 우선시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의 시아버지인 찰스 쿠슈너를 프랑스 대사, 장남 트럼프 주니어의 전 여자친구인 킴벌리 길포일을 그리스 대사에 지명한 것이 대표적이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트럼프 1기 때는 소위 ‘어른의 축’이라고 해서 당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처럼 충언이나 고언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있었다면, 2기 때는 완전히 충성심이 최우선시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블룸버그통신은 16일 “트럼프와 가까운 인물이 대사직에 오르는 것이 상대국에 단기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도 “장기적으론 미국이 수십년 간 쌓아온 상호 관계와 외교 전략이 훼손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외교 분야는 현안에 대한 이해와 판단력, 협상 능력뿐 아니라 상대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하는 전문 영역이기 때문이다.

17533019824062.jpg

18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미국 대사관 밖에서 극우 성향과 이슬람 혐오 발언을 이유로 닉 애덤스의 말레이시아 대사 임명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실제로 지난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말레이시아 대사로 지명한 닉 애덤스는 말레이시아에서 인준 반대 여론이 일고 있다. 지난해 X(옛 트위터)에 “이스라엘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테러리스트와 함께하는 것이다” 등 친이스라엘 성향의 발언을 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이슬람교를 국교로 삼는 말레이시아에선 국민의 60% 이상이 무슬림이다. 애덤스는 친트럼프 성향 단체를 만들고 관련 서적을 발간해 온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의 대표적 인플루언서다.

한국은 이 같은 ‘지명자 논란’ 조차 먼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1월 취임한 지 반년이 넘었지만, 중국과 일본 주재 대사는 일찌감치 임명했지만 주한 미국대사 자리는 아직 공석으로 두고 있어서다. 지난해 말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 정국을 거쳐 지난달에야 한국에서 새 정권이 들어선 점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관세 협상과 방위비 분담금 등 한·미 간 난제가 산적한 상황에 대사 부재가 길어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17533019826564.jpg

빌 해거티(공화ㆍ테네시) 미국 상원의원(왼쪽)이 18일 워싱턴 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스테이블코인을 제도화하는 지니어스 법안에 서명하기 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AFP=연합뉴스

현실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나 백악관과 즉각적으로 소통할 수 있으면서도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인물이 지명되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일각에선 트럼프 1기 때인 2017~2019년 빌 해거티(공화·테네시) 상원의원의 주일 대사 발탁을 이상적인 사례로 거론한다.

2016년 대선 당시 테네시주에서 공화당 선거 운동을 총괄한 해거티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 뒤 대통령직 인수팀의 고위직 인선 담당 책임자를 거쳐 주일 미국 대사로 임명됐다. 그는 보스턴컨설팅그룹 재직 당시 도쿄에서 3년간 근무하는 등 일본에 대한 이해가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0년 상원의원에 당선된 그는 외교·예산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트럼프에게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계속 각인시키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한 전직 외교관은 “당연히 ‘미국 우선주의’라는 트럼프의 비전을 충실히 이행하려는 인사가 대사에 임명될 것”이라며 “그보다 중요한 건 한·미 정상 간의 소통”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 [단독] 美대사관 2인자 '고위 외교단'으로 교체…조셉 윤 하반기 이임 주목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트럼프 관세…협상 타결 발표 이후가 진짜 협상

  • 1%P 깎고 '트럼프 병풍' 신세…필리핀 대통령 수모 남일 아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3,453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