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韓, 25% 관세 맞고 지각 협상?…美 '2+2 돌연 취소'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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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로 예정됐던 한·미 경제·무역 분야의 ‘2+2 장관급 회의’가 23일 늦은 오후 돌연 취소됐다. 관세 정책을 이끌어온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이 “급한 사정”을 이유로 회의 이틀전 취소 통보하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인공지능(AI) 관련 회의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베센트 장관은 구체적 취소 사유는 물론, 날짜를 언제로 옮길지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 바람에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인천공항에서 출국 대기 중에 발길을 돌렸다. 다음달 1일 미국의 관세 부과 시점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협상 관련한 내포된 의미는 없다”
이날 밤 베센트 장관의 회의 취소 통보 직후 주미 한국 대사관에선 긴급 회의가 진행됐다. 회의가 끝난 뒤 대사관은 “베센트 장관의 급한 사정 때문에 일정이 취소됐다”며 “한국과의 협상과 관련한 다른 내포된 의미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냈다.

지난 1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엑스포에 참석한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왼쪽)이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재생상 겸 무역협상 수석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미일은 지난 22일 관세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EPA=연합뉴스
그러나 당국자들 사이에선 “난처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양국 경제와 무역 수장이 공식적으로 확정한 일정을 불과 이틀 전에 명확한 사정도 설명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취소 통보를 한 건 극히 이례적이다. 향후 일정조차 논의하지 못한 점 역시 난감한 부분이다.
협상팀 관계자는 “솔직히 한국과의 협상보다 더 중요한 일정이 뭔지 모르겠다”며 “(회의가 예정됐던) 25일에 베센트 장관이 어떤 일정을 하게 되는지 보면 알게되지 않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맨데이트 받은 내용은 전달됐다”
한국이 제시한 협상 조건을 미국이 사실상 거부했다거나 일부러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가려는 작전을 펼치는 것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은 전날 일본과 관세 협상을 마무리 한 반면, 한국은 다음달 1일 관세부과를 앞두고 시한이 촉박하다.

한미 '2+2 통상협상'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려던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24일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서 대기하다 미국측의 일방적인 회의 취소 통보를 받고 공항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소식통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과 위성락 안보실장의 1차 방미 때 미국의 요구안을 대부분 확인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협상 타결을 염두에 두고 한국 정부가 수용할 수 있는 맨데이트(위임)를 받고 협상을 진행해왔다”며 “협상단은 베센트 장관에게 맨데이트 받은 내용을 이미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한국의 협상안이 트럼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가 됐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면서도 “만약 미국이 한국이 제시한 협상 조건을 거부하기 위해 회의를 취소한 것이라면 이는 베센트 장관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쌀·투자로 車 지킨 日이 가이드라인?
협상팀 관계자들은 미국에 전달한 협상 조건에 대해선 일제히 함구했다. 한국 정부가 전략 수립 단계 때부터 쌀 시장을 개방 불가의 ‘레드라인’으로 설정한 데 비해 일본은 쌀과 자동차를 맞바꿔 미국과 협상 타결을 했다는 점을 강하게 의식했다. 외교 소식통은 “솔직히 일본이 먼저 협상에 타결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특히 쌀 등 민감한 사안을 양보하고 5500억 달러(약 760조원)에 달하는 대미 투자를 약속한 것 등이 한국에 일종에 가이드라인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일본의 무역 협상 총괄인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정ㆍ재생상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의 대미 투자액으로 4000억 달러라고 인쇄된 수치를 지우고 수기로 5000억 달러로 적는 모습. 사진 댄 스커비노 백악관 부비서실장 엑스(X) 캡처
블룸버그는 이날 미국 협상팀 관계자들을 인용해 “한국 정부가 미국에 투자하는 펀드 설립을 논의하고 있다”며 “미국은 한국에도 수백억 달러 규모의 투자 약속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이어 또 다른 소식통을 인용해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한국의 대미 투자액으로 4000억 달러(약 548조원)를 제안했다고 전했다.
러트닉 장관이 제안했다는 4000억 달러는 미국이 애초 일본에 제시했던 투자액이다. 지금까지 미국과 한국이 논의해 온 것으로 알려진 ‘수백억 달러’와는 큰 차이가 난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일본과의 협상장에서 4000억 달러로 인쇄돼 있던 투자액을 수기로 5000억 달러로 고쳐 적은 뒤 관세 협상에 합의했다. 실제 투자액은 이보다 더 늘어난 5500억 달러가 됐다.
줄줄이 자리 비우는 美측 인사…협상은 언제?
한국이 우려하는 상황은 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미국측 협상 당사자들이 조만간 줄줄이 자리를 비우게 된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스털링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골프 라운딩을 마친 뒤 차량에 탑승해 음료를 마시고 있다. AP=연합뉴스.
당장 관세 협상의 ‘도장’을 들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25~29일 스코틀랜드 턴베리와 애버딘을 방문한다. 이미 합의를 마친 영국과 후속 논의를 진행한다는 명분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머문다고 밝힌 두 곳엔 모두 트럼프 대통령이 소유한 골프장이 있다. 골프 휴가가 될 가능성이 있는 스코틀랜드 방문엔 러트닉 상무장관이 동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베센트 장관이 회의 취소 사유로 밝힌 “긴급한 일정”이 트럼프 대통령의 여행에 동행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지만, 베센트 장관의 일정은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베센트 장관은 28~29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중국과 협상을 벌이기로 돼 있어 스코틀랜드 여행이 아니라도 곧 자리를 비운다. 시차를 감안한 출국일은 미국 기준 주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스톡홀름엔 제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에 협상 당사자들이 아무도 남지 않게 된다는 의미다.
韓, 25% 관세 부과 상태서 협상 진행?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협상의 모든 당사자들이 자리를 비우면서 한국이 결국 다음달 1일 25%의 관세를 부과받은 상태에서 추가 협상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울프 크리스터손(Ulf Kristersson) 스웨덴 총리와 전화 통화하고 있다. 뉴스1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25일 각각 러트닉 상무장관 및 그리어 대표와 만날 예정이지만 성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이미 안보와 ‘패키지 협상’을 염두에 두고 방미했던 위성락 안보실장도 뚜렷한 성과 없이 이날 귀국길에 올랐다.
정부 관계자는 “명확한 회의 날짜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협상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예상하기 어렵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8월 1일 이후에도 협상의 문을 열어 놓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협상 시한까지 결론을 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만약 한국과 경쟁 분야가 상당부분 겹치는 일본이 15%의 상호관세와 15%의 자동차 관세를 부과받는 상황에서 한국의 핵심 수출품에만 25%의 관세가 부과될 경우 한국은 기업들의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베센트 장관은 최근 “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 아닌 질”이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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