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성공개최를 기원하며 국토 걷기에 나선 '왼발박사' 이범식씨가 24일 APEC 개최도시인 경북 경주에 도착해 시민 환영을 받으며 걷고 있다. 사진 경주시

뙤약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24일 오후, 검게 그을린 얼굴의 한 남성이 도로를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경북 영천시 북안면에서 이웃 행정구역인 경주시 서면으로 넘어온 남성. 이곳으로부터 약 400㎞ 떨어진 광주광역시에서 대장정을 시작해 무려 17일 만에 경주에 닿았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주황색 형광 조끼를 입은 그의 걸음걸이는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의 두 다리 중 오른쪽 다리는 의족이 부착된 상태였고, 양팔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20대 초반인 1985년 고압 전기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감전 사고로 양팔과 오른 다리를 잃은 이범식(60)씨다.

그는 그런 부상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47세에 만학도로 대구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나마 성한 왼발 발가락으로 식사하고 공부를 하면서 숱한 역경을 이겨냈다. 결국 입학 11년 만에 직업재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해 ‘왼발박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영남이공대 등 강단에 서서 후학 양성을 하다 지난해부터는 장애인 복지 향상과 시민 인식개선을 위해 도보 종주를 시작했다.

경북 영천시 만불사 입구에서 '왼발박사' 이범식(가운데) 박사가 임동주 경주시 문화관광국장 등 경주시 관계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경주시

그는 지난 7일 광주광역시에서 출발해 경북 경주까지 약 400km를 걷는 대장정에 돌입했다. 올해 10월 말부터 열리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성공 개최를 응원하고 영호남 지역 간의 화합을 기원하는 목적이다. 거쳐 가는 지역마다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며 APEC 정상회의 개최의 의미와 중요성을 직접 설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광주 무등산에서 첫걸음을 내디딘 이씨는 하루 20~30㎞씩 담양과 순창, 남원, 함양, 거창, 합천, 고령, 대구, 경산, 영천을 관통하는 강행군을 거쳐 비로소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경주에 24일 도착했다. 이씨는 이날 경주 서면에서 건천읍 모량초등학교까지 14㎞를 걸었다. 이동하는 구간에는 주민들이 현수막을 들고나와 이씨를 환영하면서 도보 종주를 응원했다.

경주 도착 이튿날인 25일에는 경주버스터미널, 26일은 경주시청까지 걸을 예정이며 27일 하루 휴식을 취한 후 28일 오후 2시쯤 APEC 정상회의 주요 행사가 열릴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 최종 도착할 계획이다.

경주 도착한 '왼발박사' (경주=연합뉴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성공개최를 기원하며 국토 걷기에 나선 '왼발박사' 이범식씨가 24일 APEC 개최도시인 경북 경주에 도착해 시민 환영을 받으며 걷고 있다. 2025.7.24 [경주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xxx123xxxxxxxxxx (끝)〈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씨는 “내 작은 발걸음을 통해 영호남은 물론 전 국민이 함께 2025년 경주 APEC 정상회의를 응원함으로써 이번 APEC이 지역의 벽을 넘어 통합의 상징이 되고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우뚝 솟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APEC 정상회의 개최도시인 경주시는 이 박사의 도전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완주 환영 행사를 28일 HICO 광장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더불어 경주 구간을 동행할 시민 서포터즈를 모집해 APEC 성공 기원의 뜻을 모을 계획이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이범식 박사의 도보 종주는 APEC 성공을 위한 국민의 염원을 상징하는 동시에 통합과 희망, 도전과 극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감동의 여정”이라며 “장애를 넘어선 위대한 도전이 APEC의 희망이 됐듯이 남은 기간 시민과 함께 역대 가장 성공적인 정상회의가 될 수 있도록 빈틈없이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광주=뉴스1) 박준배 기자 = 강기정 광주시장이 8일 오전 시청 1층 열린문화공간에서 APEC 성공개최를 위한 지체장애인 왼발 도보 종주자 이범식 씨(60·경북 경산)를 만나 성공 종주를 응원하고 있다. 이씨는 이날부터 27일까지 21일간 광주에서 경주까지 400km 걸으며 APEC 성공개최를 기원하고 동서 지역 간 화합의 메시지를 전달한다.(광주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7.8/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