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美청문회 "中 견제책 뭔가" 따질 때…韓청문회 "당신 딸 왜 그…
-
4회 연결
본문
청문회는 경고로 시작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마이크 월츠 주유엔(UN) 미국 대사 후보자(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인사청문회가 열린 미 연방 상원 외교위원회의 제임스 리시(공화·아이다호) 위원장은 “청문회는 시민의 권한을 부여받은 신성한 위원회에서 후보자가 증언하는 자리”라며 “규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누구라도 체포·퇴장하고, 1년간 출석을 금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옆의 여야 청문위원들은 말 발굽 모양의 책상에 나란히 앉아 서류를 점검했다. 그 앞엔 월츠 후보자가 청문위원들을 마주 보고 앉았다. 이어 여당 의원 2명이 월츠 후보자를 소개했다. 소개는 “유엔은 미국의 이익에 해로운 존재”라거나 “중국의 영향력 확대로 분쟁 해결 능력을 상실한 안전보장이사회를 개혁해야 한다” 등 사실상 월츠 후보자가 수행할 정책 과제를 토론하기 위한 발제에 가까웠다.

미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마이크 월츠 주유엔(UN) 미국대사 후보자가 지난 15일(현지시간) 연방 상원 외교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야당 간사에게도 별도의 발언 기회가 주어졌다. 진 섀힌(민주·뉴햄프셔) 의원은 “월츠 후보자가 계속 미국을 위해 봉사해달라”며 시작부터 인준에 찬성할 뜻을 밝혔다. 다만,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유엔 예산을 대폭 삭감한 점을 언급하며 “미군의 직접 파병 가능성을 높이고, 중국의 재정 기여 비율을 최대로 만들어 영향력을 키울 수 있으니 위원회와 협력해 미국의 리더십과 경쟁력을 유지하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야당의 제안을 받은 월츠 후보자는 구체적인 비용을 제시하며 사전에 준비한 유엔 개혁안을 설명했다. 개별 청문위원에 부여된 5분의 질의도 주로 대중 견제책, 중동 문제 등이었다. 월츠 후보자는 “‘하나의 중국’은 대만관계법, 세 개의 공동성명, 여섯 개의 보증으로 규율된다”거나 “과거 이란은 우라늄 농축을 3.67%로 제한하기로 수용했다” 등 전문적인 답변을 이어갔다.
같은 날 한국 국회 국방위원회에서는 안규백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여야 국방위원이 서로 마주 보며 앉은 가운데, 성일종(국민의힘) 국방위원장 맞은편에 안 후보자가 착석했다. 성 위원장은 청문회 개의 직후 “정책 검증에 중점을 두는 생산적인 청문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지만, 강선영 국민의힘 의원은 곧장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해 “대통령과 총리는 군에 안 갔다 오셨고, 후보자는 방위병 출신”이라며 “후보자가 병적 기록에 대한 자료 제출을 거부해 방위병(14개월)으로 8개월 더 복무(22개월)한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이후 주식거래 내역, 상속세 납부 관련 자료를 추가로 요구하던 중 발언 시간이 끝나 마이크가 꺼졌지만 발언은 한동안 계속됐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뉴스1
그러나 안 후보자는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병적 기록 제출을 거부했다. 야당 청문위원들은 “영창 입소나 근무지 이탈 가능성이 있어 검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제출을 강제할 방도가 없던 야당 청문위원들이 병적 기록을 제출할 때까지 보이콧을 선언했고, 안 후보자와 여당도 끝까지 버텨 청문회는 자정에 자동 종료됐다.
한·미 인사청문회의 대조적 풍경은 청문회에 앞서 진행되는 검증 제도와 관행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미국은 대통령이 공직후보자를 지명하면 연방수사국(FBI)·국세청(IRS)·정부윤리위원회가 청문회 전 2~3개월간 후보자의 신상 문제를 샅샅이 뒤진다. FBI는 후보자의 전·현직 고용주와 동료, 이웃까지 조사하는 저인망식 인터뷰도 벌인다. 사전조사 기간 후보자는 자신이 일할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을 쌓고 업무 계획을 수립할 수 있고, 부적격자의 경우 인사청문 요청안이 의회에 도달하지도 않는 구조다. 미국의 청문회가 한국과 달리 정책 토론 형식으로 진행될 수 있는 이유다.

지난 1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안규백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여당 간사인 부승찬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김병주·박선원 의원과 설전을 벌이는 국민의힘 간사 강대식 의원을 말리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한국은 사전 인사검증시스템 자체가 베일에 가려진 채 정부가 바뀔 때마다 크게 달라졌다. 소관 부처인 인사혁신처가 관련 업무 권한을 대통령실에 위탁해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실이 추천, 민정수석실이 검증한다는 정도만 알려졌을 뿐이다. 공직후보자 선정 과정에서 추천·검증 절차와 기준에 관한 법적 근거는 전무하다. 이번 대통령실은 비서관·행정관 인사에 ‘5년 내 음주운전 이력자 배제’라는 불문의 기준을 세웠다고 한다.
현재는 문재인 정부 때처럼 인사 관련 수석급 직제도 없다. 윤석열 정부는 인사 검증 시스템을 보완하기 위해 법무부 아래 인사정보관리단을 설치했지만, 민주당은 “법무부 소관 업무가 아닌데 시행령에 근거해 운영되고 있다”며 지난해 운영 경비 전액(3억3000만원)을 삭감했다. 이재명 정부는 인사정보관리단 폐지를 예고한 상태다.
법적 시스템 자체가 없다 보니 정책 전문성과 비전 검증이 사라진 신상털이와 망신주기식 국회 인사청문회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타깃은 주로 후보자의 가족이었고, 예민한 병력이나 사생활이 공개되는 일도 잦았다. 근거 없는 의혹 제기도 많지만 어쩌다 뚜렷한 문제가 발견되면 대통령실에선 “수사 권한이 없어 인사 검증에 한계가 있었다”고 말이 나오는 패턴도 반복된다.

태미 더크워스(민주·일리노이) 연방 상원의원이 지난 1월 15일(현지시간)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열린 마크 루비오 국무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루비오 후보자를 내려다 보며 질의하고 있다. 청문위원의 의자는 다른 좌석보다 약 50㎝ 높다. AFP=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월 29일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는 차남의 병역면제 의혹 해소를 위해 서울대병원에서 공개 검증을 했고, 차남이 전방십자인대 완전 파열 등으로 재건 수술을 받았다는 점을 확인 받았다. 이 과정에서 차남의 다리 수술 흉터 등이 여과 없이 공개됐고, 이 후보자는 “비정한 아버지가 됐다”고 눈물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 시절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도 아들의 병역면제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뇌하수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고 공개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위장 전입을 해명하면서 “왕따당한 큰딸을 위한 부정(父情)이었다”고 밝혔고, 문재인 정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해명하며 배우자의 암 투병 사실을 공개해야 했다.
과거 보수 정부에서 일했던 인사는 “어렵게 설득해 외부에서 모셔오다시피 한 전문가들이 가족에 대한 공격과 과도한 검증이 들어오자 ‘이건 못 견디겠다’고 손사래 치는 일이 많았다”며 “이런 식의 낙마는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