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Cooking&Food] 셰프를 만난 제주 흑돼지·한치…잊혀진 풍미가 살아나다
-
4회 연결
본문
JW 메리어트 제주에서 열린 글로벌 미식 캠페인 ‘럭셔리 다이닝 시리즈’
아시아·태평양 7국 대표 호텔 참여
제주 해녀 이야기 담긴 재료 등 활용
각국 셰프, 기억 속 맛 재해석해 선봬

새로운 미식을 제안한 JW 메리어트 제주의 ‘럭셔리 다이닝 시리즈’. 제사 음식을 선보인 이대진 셰프. 해녀, 신민희씨. 폴 스마트 셰프. 폴 셰프의 랍스터 요리. 이대진 셰프의 도시락. 김우철 셰프의 야생초와 한치 샐러드. [사진 JW 메리어트 제주]
잊혀졌던 풍미가 제주에서 되살아났다. 바다를 품은 섬, 제주에 아시아·태평양 곳곳의 셰프들이 모여 각자의 기억 속 맛을 꺼내 놓았다. 제주의 바람과 흙, 바다에서 자란 식재료에 셰프들의 이야기를 더해 새로운 미식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럭셔리란 무엇일까. 지난 7월 17일부터 20일까지 나흘간 JW 메리어트 제주 리조트 & 스파(이하 JW 메리어트 제주)에서 열린 ‘럭셔리 다이닝 시리즈(Luxury Dining Series)’는 이 질문에 하나의 답을 제시한 행사였다. ‘럭셔리 다이닝 시리즈’는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이 주관하는 글로벌 미식 캠페인으로, 자사 럭셔리 호텔들이 협업해 각 지역의 고유한 식문화를 여행의 특별한 경험으로 풀어내는 글로벌 행사다. 올해는 일본, 한국, 인도, 호주,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7개국의 대표 호텔이 참여했으며, 한국은 이번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올해의 주제는 ‘잊혀진 풍미를 찾아서(Forgotten Flavors)’. 각국 셰프들이 제주에 모여 자신들의 기억 속 맛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요리를 선보이며 새로운 미식 여행의 막을 올렸다. 행사의 첫날은 JW 메리어트 제주의 우드 파이어 그릴 다이닝 레스토랑 ‘더 플라잉 호그(The Flying Hog)’에서 열린 ‘식스 핸즈 디너(Six-Hands Dinner)’로 시작됐다. 이 자리에는 JW 메리어트 제주의 김우철 셰프, JW 메리어트 골드코스트의 폴 스마트(Paul smart) 셰프, 더 리츠칼튼 멜버른의 라이언 번(Ryan Byrne) 셰프가 참여해, 세 나라의 감성과 기억을 담은 여섯 코스의 요리를 협업으로 완성했다.
자생한 돌미나리·야생초로 자연의 향 담아
라이언 번 셰프는 7일 동안 냉장숙성한 오리에 할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매콤한 향신료를 바른, 겉은 바싹하고 속은 촉촉한 오리 스테이크와 제주 흑돼지에 호주 태즈메이니아 섬의 자생 식물인 페퍼베리(Pepperberry)를 올려 독특한 향과 매운맛이 조화를 이루는 흑돼지 요리를 소개했다. 폴 스마트 셰프는 JW 메리어트 제주 개관 당시 프리 오프닝팀에 참여한 경험을 살려 제주 식재료를 능숙하게 활용했다. 해풍을 맞고 자란 제주 콜라비를 저온 조리한 랍스터에 올려 아삭한 식감을 살렸고, 우드 파이어 그릴에 구운 한우 채끝살에 제주에서 자란 감귤·감자·당근을 활용한 소스를 곁들인 스테이크를 선보였다.
행사의 주관 셰프인 김우철 셰프는 보다 깊숙이 ‘제주’로 들어갔다. 여름 한철에만 만날 수 있는 제주 한치에 호텔 앞 법환동 갯바위에서 자생한 돌미나리와 야생초를 더해 자연의 향을 담아냈고, 제주의 전통 방식을 따라 생산 가공한 가시리산 메밀과 들기름, 성게, 야생초를 곁들여 제주의 잊혀진 풍미를 요리에 담았다.
그는 “선보이는 건 4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준비는 2~3개월이 걸렸어요. 다른 나라 셰프들과 협업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제주다운 맛을 찾기 위해 직접 갯바위를 돌며 야생초를 채집해 음식으로 만들어보는 과정도 정말 고됐죠. 손님들이 좋아하는 걸 보니, 제주의 식재료로 새로운 미식 경험을 만들어냈다는 자부심이 커지네요. 앞으로도 제가 해석하는 또 다른 제주를 선보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가장 인상적인 프로그램은 다음 날 이어진 점심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침 산책부터 시작된 점심이었다. 제주 바다에 반해 도시의 직장 생활을 접고 해녀가 된 지 5년째인 신민희 해녀와 함께, JW 메리어트 제주 정원에서 이어지는 제주 올레 7코스를 걸으며 해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전통 해녀 복장을 하고 테왁망사리(채집한 해산물을 담는 바구니)를 들고 나타난 신 해녀는, 처음 수확한 전복 껍데기를 보여주며 말했다. “여행 왔다가 바다가 너무 좋아서 해녀가 되었어요. 공동체 안에 들어가기까지 쉽지 않아, 3년은 서러워 울고 다닌 것 같아요. 그래도 아침이면 바다가 보고 싶어 가슴이 뛰었죠. 지금도 이 전복 껍데기만 봐도 마음이 설레요.”
제주 해녀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맨몸으로 바다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자연 친화적 채집 기술과 풍요와 안전을 기원하는 잠수굿, 서우젯소리(민요) 같은 해양 문화를 계승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여성 중심의 공동체 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 중에서도 공동체 문화는 제주 해녀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공동체별로 물질 기술이 전수되고, 채집 장소도 세대를 거쳐 이어진다. 신 해녀는 이렇게 설명했다. “제주 해녀는 어촌계별로 공동체를 이루고 활동해요. 물질 기술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뉘는데, 상군으로 활동하다 나이가 들면 다시 하군이 되어 이제 막 시작하는 해녀들을 도와주며 물질을 하죠. 하군에서 중군으로 올라가려면 삼춘들에게 인정을 받아야해요.기술보다 공동체의 인정이 더 중요하죠.”
바다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할머니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외돌개 앞에 이르러, 신 해녀는 마지막 설명을 덧붙였다. “바다를 걷다가 ‘휘~이익’ 하는 소리를 들어 보신 적 있나요? 해녀들이 숨을 참고 잠수한 뒤 물 밖으로 올라와 내뱉는 숨소리, 바로 ‘숨비소리’예요. 척박한 제주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해녀들의 고된 삶이 담긴 소리라 슬프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게 들리는 소리예요. 혹시 제주 바다를 걷다 숨비소리를 들으신다면, 제주 해녀를 한번쯤 떠올려 주세요.”
해녀 숨비소리 들리는 듯한 도시락 인상적
이어진 점심은 제주식 맡김차림(셰프가 제안하는 코스 요리) 레스토랑 ‘여우물’에서 진행됐다. 이대진 셰프는 “제주에서 제사는 다 함께 모여 먹는다는 의미가 있어요. 바람이 잘 통하는 차롱에 제사 음식을 담아 용왕신과 조상님께 제를 올린 뒤, 그 음식을 나눠 먹었죠. 그 의미를 도시락에 담았습니다”라며 대나무를 엮어 만든 전통 도시락 ‘차롱’에 정성스럽게 음식을 담았다. 제주 귤에 성게알을 올린 샐러드, 옥돔을 구워 올린 주먹밥, 제주 흑돼지 산적, 메밀말이와 고사리 피클 등 다양한 요리가 차롱에 담겼다. 마지막으로 제주 제사상에만 오른다는 카스텔라도 빼놓지 않았다.
도시락이 완성되자 신 해녀가 다시 등장했다. “삼춘들은 바다에서 채취한 해산물을 자신 입에 넣지 못했어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거든요. 아픈 가족이 있거나, 제사상에만 올릴 수 있었죠.” 이 말을 듣던 이 셰프가 말을 이었다. “제주 여성들이 억세다고 말하죠. 하지만 그건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목숨을 걸고 가족을 위해 동료를 잃었던 그 바다로 다시 나가는 해녀들을 보면 존경심이 들어요. 그들의 삶이 요리라는 매개를 통해 여러분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톡 쏘는 성게알이 입안에서 터졌다. 순간, 멀리서 숨비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제주 바다와 사람, 그리고 음식이 어우러진 제주의 한 조각이 입안에 퍼졌다. 생각지도 못한 울림이 그 도시락에 있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