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꼭 반납 부탁" 무료 양산 나눈 '대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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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오후 대구 달서구청 민원실 앞에 비치된 양심양산. 이날 36도까지 기온이 치솟으면서 두시간 만에 절반이 동났다. 대구=백경서 기자
지난 23일 오후 2시 대구 달서구청 민원실 앞. ‘대장을 작성하신 후 편하게 사용하시고 꼭 반납 부탁드립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양심양산 20개가 배치돼 있었다. 바로 옆에는 관리 대장이 있어 양산번호와 대여 일자, 반납 일자를 쓰도록 했다. 더운 날 시민들에게 양산을 대여해주고 온열 질환을 예방하는 대신 반납을 유도하기 위해 대장을 적는 시스템이다.
이날 기온이 36도까지 치솟으면서 비치된 양산 절반이 두시간 만에 동났다. 다만 돌아오는 양산은 없었다. 대장을 기록하지 않는 시민들도 있었다. 달서구청에서 10분 거리에 산다는 김모(54)씨는 “더워서 집에 어떻게 갈까 걱정했는데 양심양산이 있어 사용한다”며 “저녁 준비를 해야 해서 당장은 못 돌려주지만, 집이 근처라 일주일 안에는 가져다줄 예정이다. 양심양산은 몇 번 썼는데 마음을 먹어야 돌려주게 된다”고 말했다.
달서구에서는 올해 양심 양산 1000개를 구매해 지역 행정복지센터 등 25개소에 배치했다. 양산 구매 비용은 한 개에 15900원이다. 말 그대로 ‘양심’에 회수를 맡기는 양산이지만, 회수율은 0%대다. 달서구 관계자는 “사실상 매년 소진된다”며 “오늘 같이 더운 날만 온열 질환 예방을 위해 소량 비치해 둔다”고 말했다.

대구 달성군에서 한 시민이 뜨거운 햇살을 막기 위해 양심양산을 대여해 쓰고 있다. [대구 달성군]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 특성상 여름에 유난히 더운 대구시는 2019년부터 양산 무료 대여 사업을 시행했다. 양산을 쓰면 태양이 가려지는 지점의 온도가 7도 내려가고, 체감온도는 무려 10도까지 내려가 폭염 피해 예방에 큰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2019년 대구시는 양산 2000개를 배포하면서 양산 쓰기 운동을 벌였다. 특히 “남자라도 ‘모양’ 안 빠집니다. 더우면 양산 씁시다”라는 주제로 검은 양산 1000개를 남성용 양산으로 주문하기도 했다.
양산 무료 배포와 캠페인의 효과는 엄청났다.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에선 여름마다 양산 ‘붐’이 일었고 6곳이던 양산 대여소가 2021년도엔 160곳으로 늘어나 1만2800개의 양산을 빌려주는 등 양심 양산 사업이 본격화했다. 광주·울산·부산 등 타 지자체에서도 이를 앞다퉈 벤치마킹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양산이 없자, 대구시의 고민이 커졌다. 결국 시에서 주도하던 양심양산 대여 사업은 최근 각 구·군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대구시 관계자는 “올해도 양산 쓰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지만, 대여 사업의 경우에는 각 구·군의 여건에 맞게 시에서 내려주는 폭염 예산 안에서 시행한다”고 설명했다.
대구 지역 8개 구·군(군위군 제외)은 회수율 집계가 의미 없을 정도로 양산 회수율이 낮아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 이에 양산 비치율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찜통 더위를 기록했던 이 날 오후 중구 청라언덕 관광센터에는 비치된 양심 양산이 없었다. 인근 김광석길 관광센터도 마찬가지였다. 센터 관계자는 “매년 양심양산을 두긴 하는데, 많이 제공하지는 못한다”며 “관광지 특성상 돌아오는 양산이 거의 없다. 올해는 아직 비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 특보가 이어진 지난 9일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한 시민이 자녀에게 양산을 씌워주며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이에 동구에서는 지역에서 거둔 불법 현수막 천을 양산 제작에 활용하고 있다. 동구 관계자는 “양산의 온열 질환 예방 효과가 크기 때문에 무료 대여를 그만두기가 어렵다”며 양산을 기부받거나 불법 현수막을 재활용해 양산을 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달서구 관계자도 “‘양심’을 강조하면서 회수율을 올리고 양산 쓰기 캠페인 등을 진행해 폭염 대책 효과를 높이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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