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복잡해서 불편? "판매 전략"…돈키호테, 35년째 매출 우상향 비결 [비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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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멘터리

브랜드에도 걸음걸이가 있다고 하죠. 이미지나 로고로만 기억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다움’을 직조해야 비로소 브랜드가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브랜드 하나만 골라도 취향이 드러나고, 그 선택에 개성과 욕망, 가치관이 담기죠. 비크닉은 오늘도 중요한 소비 기호가 된 브랜드의 한 걸음을 따라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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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서울 여의도 더현대에 문을 연 'GS25X돈키호테 팝업스토어' 외관. GS25

‘일본 여행의 마지막 코스, 수하물 한도를 꽉 채워 돌아오는 곳’. 바로 일본 최대 만물상점 ‘돈키호테’입니다. 식품·의류·가전·장난감·약품 등 일상에서 필요한 갖가지 물건이 그득한 매장이죠. 편의점이나 백화점으로는 대체 불가한 이 잡화점이 지난 8일, 한국에 상륙했습니다.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 지하 1층에 문을 연 ‘GS25×돈키호테 팝업스토어’였는데요, 오픈과 동시에 수백 명이 줄을 섰고 17일간 누적 방문객 2만5000명을 넘겼어요. 참깨 마늘소스 후리카케, 계란 간장 같은 인기 제품은 품절과 동시에 ‘1인 1개 제한’이 걸렸고, 가격도 일본 현지와 비슷한 수준으로 책정돼 구매 열기를 더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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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인기 PB 제품 등을 구매할 수 있다는 소식에 오픈런 진풍경이 벌어진 모습. 김세린

컵라면 옆 인형, 생활용품과 조미료가 뒤섞인 진열, 사방에 붙은 노란 가격표. 얼핏 보면 산만하지만, 한국 소비자에겐 낯선 이 ‘무질서한 쇼핑 구조’가 오히려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왔어요. 더 놀라운 건, 이 모든 혼돈이 철저히 계산된 전략이라는 사실이죠. 팝업을 위해 일본 본사 직원 10여명이 방한해 GS25와 함께 매장 구성부터 진열 동선, 손글씨 POP 문구 하나까지 꼼꼼히 설계했다고 해요. 오늘 비크닉은 겉으론 B급 감성이지만 속은 A급 전략으로 무장한 돈키호테의 유통 세계를 살펴볼게요.

‘정크’가 아니라 ‘펀’…쇼핑 자체가 관광이 되다

돈키호테는 1989년, 도쿄의 한 창고에서 출발한 소형 할인점이었습니다. 초창기엔 ‘심야에 젊은이들이 몰리는 기묘한 가게’ 정도로 알려졌지만, 디플레이션 시대를 맞아 ‘저렴함’을 무기로 급성장했죠. 브랜드 제품을 싸게 들여오고, 자체 브랜드(PB)를 확대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고요. 쇠퇴하던 종합슈퍼·가전양판점·홈센터 등 기존 유통 채널을 빠르게 흡수하며 몸집을 키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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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돈키호테 시부야 본점 전경. 김세린

운영사인 팬퍼시픽인터내셔널홀딩스(PPIH)는 세븐앤아이·이온·유니클로 운영사 패스트리테일링과 함께 일본 유통업계 ‘톱4’에 드는 곳이에요(2025년 기준). 2003년 1586억엔이던 연 매출은 2012년 5000억엔을 돌파했고, 지금은 일본 전역 700여개 매장을 거느린 ‘2조엔대(약 19조원) 유통 공룡’으로 자리 잡았죠. 이토요카도·야마무라야 같은 대형마트들이 잇따라 문을 닫는 흐름과는 대조적인 분위기입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창립 이후 35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매출과 영업이익이 증가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원동력은 아이러니하게도 ‘불편한 쇼핑’에 있다는 게 현지 매체들의 분석입니다. 실제로 돈키호테는 일부러 매장을 복잡하게 설계한다고 해요. 6만~10만개 상품을 빽빽이 채우고, 고객이 원하는 물건을 바로 찾기 어렵게 만들죠.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예상치 못한 발견과 충동구매를 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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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25와의 협업 팝업스토어에 진열된 돈키호테 공식 캐릭터 굿즈를 둘러보는 소비자들. 김세린

이 전략은 세대를 초월한 충성 고객을 만들어냈고,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까지 흡수하고 있어요.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돈키호테는 고객이 필요한 것만 사는 게 아니라, 걷다가 예상치 못한 제품을 발견하고 구매하게 한다”며 “쇼핑 자체를 관광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2024년 돈키호테의 면세 매출은 전년보다 790억엔 증가한 1173억엔에 달하며, 미츠코시·이세탄 같은 전통 백화점을 제쳤는데요, 돈키호테 매출 증가분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 관광객의 소액 쇼핑에서 비롯됐을 정도죠.

‘초저가 유통 공룡’이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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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쇼핑리스트'에 오른 한국인의 애정템. GS25와의 팝업 현장에서도 구매 가능했다. 김세린

돈키호테는 대량 구매를 통해 도매가에 가까운 가격으로 상품을 들여오고, 자체 유통망으로 마진을 최소화해 소비자에게 저렴하게 제공합니다. 제조사에서 직접 사 오는 방식은 물론, 과잉 재고나 B급 상품도 매입해 매장에 풉니다. 또 PB 라인 ‘조네츠(JONETZ)’를 만들어 중간 유통을 줄이며 가격 경쟁력을 높이죠. 여기에 다른 슈퍼마켓에서는 보기 힘든 해외 저가 상품까지 수입해, “이 가격에 이런 것도 있어?”라는 의외성을 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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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 다이소 매장을 찾은 시민이 물품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국내에서도 돈키호테와 닮은 유통 모델이 있는데요, 바로 다이소입니다. 경제 불황기에도 지난해 매출 3조원을 돌파한 유통 강자죠. 다이소 역시 돈키호테처럼 저가 상품을 다양하게 취급합니다. 하지만 진열이 깔끔하고 카테고리별로 배치가 명확해 쇼핑 동선이 짧습니다. 1000원부터 1만원 이하의 균일가 전략도 소비자의 신뢰를 높이는 데 한몫했고요.

반면 돈키호테는 매장마다 가격도, 진열도, 상품 구성도 제각각입니다. 같은 상품도 어떤 매장에선 할인 중이고, 또 다른 매장에선 아예 보이지 않을 수 있죠. 출점 전략에서도 차이가 뚜렷합니다. 한국 유통사가 특정 지역의 점유율을 높인 뒤 인접 지역으로 확장하는 ‘도미넌트 전략’을 선호한다면, 돈키호테는 전국 동시다발 출점을 통해 빠르게 인지도를 확보합니다. 인구 밀도가 낮은 지방의 ‘소비 공백지’에도 과감히 매장을 여는데, 이는 기존 유통망이 떠난 자리를 메우며 ‘쇼핑 난민’을 흡수하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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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메가 돈키호테 전경. 대형마트의 줄폐업에도 살아남았다. 돈키호테

특히 눈에 띄는 건 ‘좀비 매장 부활’ 전략인데요, 도쿄 시부야 본점이나 오사카 도톤보리점처럼, 폐점한 대형마트나 유휴 공간을 리모델링해 브랜드 정체성을 입히는 겁니다. 같은 전국 확장이라도 다이소가 ‘정체성의 통일’을 택한 브랜드라면, 돈키호테는 ‘정체성의 지역화’를 택한 셈이에요.

한국은 왜 돈키호테를 만들지 못했나

돈키호테와 유사한 시도는 한국에서도 있었습니다. 2018년 이마트가 선보인 ‘삐에로쑈핑’이 대표적이죠. ‘쇼핑보다 재미’라는 슬로건 아래 수천 개의 물건을 촘촘히 진열하고, 손글씨 POP, 면세 시스템,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기념품 판매대까지 구성해 ‘한국판 돈키호테’로 불렸습니다. 초반엔 주목을 받았지만, 불과 2년 만에 전면 철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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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에로쑈핑 1호점인 코엑스점 전경. 이마트

어떤 이유였을까요. 두 브랜드는 겉모습만 닮았을 뿐 시장 상황도, 소비자 성향도, 운영 방식도 달랐습니다. 일본은 여전히 오프라인 유통이 강세이고, 수집형 쇼핑이나 테마형 쇼핑에 대한 수요도 꾸준합니다. 반면 한국은 온라인 중심의 유통 강국이지만, 오프라인 매장에선 정돈된 진열과 쾌적한 공간을 더 선호하죠. 돈키호테는 심야 쇼핑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24시간 운영이 가능했지만, 삐에로쑈핑은 규제로 인해 이조차 어려웠습니다. 상품군 구성도 제한적이었고요.

무엇보다 큰 차이는 운영 구조에 있었는데요, 돈키호테는 매장별 자율성을 보장하며 진열과 마케팅 전략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반면, 삐에로쑈핑은 대기업 유통 시스템의 한계 때문에 유연한 실험이 어려웠죠. 최철 교수는 “해외 유통 모델을 국내에 정착시키기 위해선 한국 소비자의 특성과 시장 환경에 맞춘 전략적 변형이 필요했다”며 “취급 아이템, 시장 진입 방식, 구매 패턴, 경쟁 구조 등을 고려한 현지화가 필수”라고 설명했어요.

‘B급’ 감성, A급 전략으로 확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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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인구가 많고 국제공항과 인접한 곳에 들어선 괌(GUAM) '돈돈돈키' 매장 전경. 김세린

이제 돈키호테는 더 전략적으로 외형을 확장하고 있어요. 지난 1일에는 대학가 중심의 소비 패턴에 맞춰 QR코드와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한 첫 무인매장 ‘캠퍼스 돈키’를 오사카에 선보이며 새로운 실험에 나섰죠. 해외 확장도 공격적입니다. ‘돈돈돈키’라는 별도 브랜드를 앞세워 싱가포르·태국·말레이시아·대만 등에 진출했는데, 일본 식품 중심의 하이엔드 매장을 통해 현지의 중산층·상류층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하반기엔 북미와 동남아에서의 대형 출점도 예정돼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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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돈키호테 매장에 들어선 GS25 전용 매대. 해외 관광객들에게 인기있는 아이템 위주로 배치됐다. GS25

해외 진출 모두 ‘연결 기반’ 전략으로 이뤄지고 있어요. 일본 훼미리마트 등 현지 유통망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진입 장벽을 낮추고, 시장 적응력을 높이는 방식이죠. 이번 GS25와의 협업도 같은 맥락이에요. 양사는 이미 지난 5월부터 일본 내 돈키호테 400여 매장에 GS25 전용 매대를 설치해 K푸드 및 한국 PB상품을 유통하고 있었고, 이번 팝업스토어는 그 시너지의 연장선이죠.

다만 일각에서는 최근 돈키호테의 매장 회전율 저하, 비식품 매출 감소 등 운영 효율성 문제를 제기했어요. 이에 본사(PPIH)는 전문 인력 보강과 상품군 개편을 예고한 상황인데요,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돈키호테는 관광객을 중심으로 매출이 성장한 구조라, 인바운드 수요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고령화와 지방 인구 감소로 인한 일본 내수 한계 극복도 앞으로의 과제죠. 하지만 이대로의 성장 속도라면 당분간 국내외 유통 시장에서의 존재감은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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