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재정 트릴레마’ 빠진 韓, 증세 움직임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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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25일 부산 부경대에서 타운홀 미팅 형식으로 열린 '국민소통 행보, 부산의 마음을 듣다'에서 참석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김현동 기자
정부와 여당이 법인세 인상 등 증세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높은 복지 수준, 적은 국가 채무, 낮은 조세 부담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는 이른바 ‘재정 트릴레마’(Fiscal Trilemma)가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7일 국회ㆍ정부에 따르면 이달 말 발표될 세제개편안에는 윤석열 정부 시절 낮춰준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24%→25%)은 물론, ‘코스피 5000’ 공약과 상충하는 증권거래세 인상(0.15%→0.18%)과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 강화(50억원→10억원)가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난 24일 “지난 정부에서 과도하게 세수가 부족해진 부분이 있다”며 “초부자 감세 이전으로 돌아가는 조세 정상화 개념으로 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병기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도 "국가 재정이 위기에 봉착했다. 아끼고 줄인다고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근본적 해법은 비뚤어진 조세 기틀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며 조세제도개편특위 설치를 공식화했다. 여권은 ‘원상복구’ ‘국세 기반 정상화’라고 표현하지만, 세수 확보를 위해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하겠다는 점에서 증세 논란은 불가피하다.
대선 후보 시절 증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 온 이재명 대통령이 법인세ㆍ증권거래세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이유는 주어진 선택지가 현실적으로 증세밖에 없어서다. 당장 13조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정책을 비롯해, ‘확장재정’으로 내수 경기를 살리려면 ‘실탄’이 필요하다. 여기에 대통령이 내세운 수많은 복지 공약을 실현하려면 재정 지출을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선 최소한 조세 부담을 올리든지, 국가채무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가채무의 경우 최근 증가 속도가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 기재부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18년 33.9%에서 올해 49.1%로 급증한다.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생ㆍ고령화 속도로 앞으로 나랏빚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이 미국이나 일본처럼 국채를 발행해 재원을 조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결국 두가지(높은 복지 수준, 낮은 국가채무)를 만족시키려면 다른 하나(낮은 조세부담)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재명 정부 재정기획보좌관으로 낙점된 류덕현 중앙대 교수도 그간 학회 등에서 한국 경제가 ‘재정 트릴레마’에 봉착해있다고 진단하면서 증세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류 교수는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 장기적 복지재정 소요에 대한 증세가 맞다”며 “효율적인 재정지출로 국민들에게 증세에 대한 정당성을 설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지금처럼 조세저항이 상대적으로 적은 세목에서 세율을 올리는 정도로는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에게는 현금 몇 푼(민생회복 지원금) 쥐여 주며 생색은 잔뜩 내면서 그 뒤에선 전방위적 증세로 국민의 등골을 쥐어짜는 이중 플레이”(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라는 정치적 비판도 나온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1%포인트 올려봤자 미국 관세 등으로 대기업이 어려워지면 세수는 1~2조원 증가에 그칠 수 있다”며 “세수는 세율 곱하기 과세표준이기 때문에 더 많은 기업과 국민이 세금을 내도록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예를 들어 중소기업에 해당한다고 해서 최대 30%까지 무조건 세금을 깎아주는 중소기업특별세액감면 제도 등 명분 없는 비과세 감면은 축소하고, 대신 경력단절 여성을 채용하는 기업은 세금을 더 깎아주는 식으로 정부의 정책 목적과 연동해야 한다”며 “불필요한 특혜를 없애야 세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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