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단독] 중소기업까지 법인세 인상…전 구간 1%P씩 다 올린다
-
3회 연결
본문
이달 말 발표할 새 정부 첫 세제개편안에 법인세 4개 과세표준 구간의 세율을 각각 1%포인트씩 올리는 인상안이 담긴다. 최고세율 구간에 속하는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도 영향권에 들어간다.

경기도 평택항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27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세제개편안에 담기는 건 3년 전 낮췄던 법인세율 1%포인트를 되돌리는 안이다. 당초 최고세율 구간만 1%포인트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논의 끝에 전 구간 인상으로 방향이 정해졌다.
현행 법인세는 사업연도 소득을 기준으로 4개 과표 구간에 따라 누진세율을 적용한다. 2022년 윤석열 정부는 4단계 과표 구간을 2~3단계로 바꾸고, 최고세율 구간의 법인세율을 3%포인트 낮추려 했으나 당시 야당(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실패했다. 결국 당시 여야는 과표 구간은 그대로 두고 ▶2억원 이하는 10%→9% ▶2억원 초과~200억원 이하 20%→19% ▶200억원 초과~3000억원 이하 22%→21% ▶3000억원 초과 25%→24%로 세율만 인하하기로 합의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세수 결손이 2년 동안 매우 큰 규모였고, 올해도 성장률 1% 전후라 현실적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증세가 아니냐는 반감이 있을 수 있지만, 국세 기반을 정상화하는 과정으로 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여당 핵심 관계자도 “법인세는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되돌려야 한다”며 “윤석열 정부의 잘못된 감세 기조를 복원하는 취지”라고 말했다.
일단 전 구간에서 세율을 높이기로 한만큼 규모와 관계없이 모든 기업의 세금 부담은 늘게 됐다. 법인세는 전년도 사업소득을 기준으로 과세한다. 이번 세제개편안이 국회 본회의 통과하면 내년 사업소득부터 적용되고, 세율 증가에 따른 실질적인 법인세수 증가 효과는 2027년에 나타난다.
지난해 법인세 과표 구간별 법인세 비중(총 부담세액 기준)을 보면 ▶2억원 이하가 3.1% ▶2억원 초과~200억원 이하 30.6% ▶200억원 초과~3000억원 이하 33.3% ▶3000억원 초과 33.0%다. 이 중 3000억원 초과 구간의 법인세 비중은 2022년 47.7%에서 2024년 33.0%로 낮아졌다. 유호림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대기업 비중이 줄어든 건 명목세율 인하 효과라기보다는 실제 이익 대비 세금을 내는 정도인 실효세율이 큰 폭으로 낮아졌기 때문”이라며 “해외 자회사 배당금 불산입같이 실효세율을 떨어뜨리는 각종 감면 정책을 손봐야지 명목세율을 1%포인트씩 올린다고 세수가 많이 늘어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그럼에도 정부가 법인세율을 일괄 인상키로 한 건 세수 부족이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장 13조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정책을 비롯해, ‘확장재정’으로 내수 경기를 살리려면 ‘실탄’이 필요하다. 3대 세수 중 소득세와 부가가치세를 손대기 힘든 상황에서, 조세저항이 상대적으로 적은 법인세가 사실상 현실적인 선택지가 된 것이다.
여기에 법인세 최고세율만 인상할 경우, '부자 증세'나 '대기업 팔비틀기'란 프레임에 몰릴 수 있어, 전 구간 인상을 택한 거로 풀이된다. 증세에 대한 명분을 쌓고, 비판을 피해가려는 전략인 셈이다. 실제 최근 정부와 여당 안팎에선 '조세제도 복원', '세수 정상화'와 같은 언급이 부쩍 늘었다. 김병기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 25일 “아끼고 줄인다고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근본적 해법은 비뚤어진 조세 기틀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수 증대 효과가 크지 않을 거란 지적도 나온다. 지난 2년간 큰 폭의 법인세수 감소는 세율 인하보다는 기업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줄어든 영향이 크다. 세율보다는 경기가 세수에 훨씬 중요한 요인이란 뜻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1%포인트 올려봤자 미국 관세 등으로 대기업이 어려워지면 세수는 1조~2조원 증가에 그칠 수 있다”며 “중소기업 특별세액감면 제도 등 불필요한 특혜를 없애야 세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법인세 인상에서 드러나듯 이번 세제개편안의 핵심 방향은 ‘세수 확보’다. 정부는 이와 함께 금융·보험업에 부과되는 교육세를 개편해 세수 확충에 나설 방침이다. 현재 일괄적으로 0.5%를 부과하고 있는데 1조원 이상 구간을 신설하고,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증권거래세는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한꺼번에 0.05%포인트 인상해 0.2%로 조정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반발이 큰 대주주 양도소득세의 경우 과세 기준을 기존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현재는 30억원으로 조정하는 중재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세수 확대’란 큰 방향에 따라 그간 국정기획위원회를 중심으로 논의했던 대규모 감세 혜택은 축소되거나 빠진다. 대표적으로 ‘한국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국내생산촉진세제)’이다. 국가전략기술 분야의 제품을 국내에서 생산하거나 판매할 경우, 생산비나 생산·판매량에 따라 법인세 일부를 감면해주는 방식이다.
당초 반도체∙배터리 등 7개 국가전략기술 분야에 대해 최대 30% 세액공제를 주는 방안이 논의됐으나, 중장기 과제로 전환할 전망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국내 기업에 혜택을 집중하는 방식이므로 미국과의 통상 마찰 우려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세지출 구조조정 파트에선 올해 말 일몰을 앞둔 상호금융 조합원 예탁금 및 출자금 비과세 혜택을 손볼 가능성이 크다. 상호금융 비과세는 농어민·서민의 소득 증대를 돕기 위해 1976년 도입됐지만, 지금은 일반인도 출자금 몇만원만 내면 준조합원 자격이 생기기 때문에 중산층 절세 수단으로 변질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다만 세제개편안에 담더라도 국회 통과가 쉽지 않을 거란 시각이 강하다.
배당소득세 분리과세는 여당 내 일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하기로 했다. 다만 세부 사항을 둘러싼 조율이 막판까지 계속되고 있다. 배당성향뿐만 아니라 배당성장률, 주가순자산비율(PBR) 등을 기준에 포함할지와 감세 폭을 이소영 민주당 의원안(최고 구간 27.5%)보다 축소할지 등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국회에서 정부안이 축소되거나 수정될 가능성도 크다. 기획재정위원회 관계자는 “기재위 소속 여당 의원들 대부분이 부정적인 입장”이라며 “증시 활성화를 세제 조치로 추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다만 새 정부의 가장 큰 관심사인 인공지능(AI)에 대해서는 대규모 혜택이 담길 전망이다. 일단 AI 연구개발을 국가전략기술로 포함해 세액감면율을 20∼40%에서 30∼50%로 상향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AI 분야에도 추가로 5% 포인트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 외에 웹툰 세액공제 신설하고, 자녀가 많을수록 소득공제를 늘리는 방안도 세제개편안에 담길 전망이다.
정부가 사실상 증세 카드를 꺼낸 건 결국 ‘재정 트릴레마(Fiscal Trilemma)’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 때문으로 해석된다. 재정 트릴레마는 높은 복지 수준, 적은 국가 채무, 낮은 조세 부담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을 뜻한다.
향후 이 대통령이 내세운 복지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지출을 늘려야 한다. 조세 부담을 올리든지, 국가채무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이 미국이나 일본처럼 국채를 발행해 재원을 조달하는 건 한계가 있다. 결국 두 가지(높은 복지 수준, 낮은 국가채무)를 만족시키기 위해 다른 하나(낮은 조세 부담)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