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년중앙] 작가의 시선 따라가니 평범한 일상이 신나는 휴가로
-
5회 연결
본문
쳐다보기도 힘들 만큼 해가 쨍쨍한 날씨, 물속을 걷는 것 같은 습도에 조금만 걸어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여름 무더위는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그러다 보니 밖에 나가는 것도 싫고 에어컨 앞에만 있고 싶은데 또 그렇게 여름을 보내는 게 아쉽기도 하죠. 시원한 실내에서 휴양지의 설렘을 만끽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한여름의 생동감이 전해지고 보기만 해도 시원한 작품들이 우리를 맞아주는 ‘엘리자베스 랭그리터: 매일이 휴가’전이 서울 송파구 뮤지엄209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호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엘리자베스 랭그리터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독특한 시선과 밝은 색감으로 유명한 작가예요.

엘리자베스 랭그리터는 작은 원형 작품이 마치 잠수함 창 너머로 들여다본 고요한 바닷속 꿈같다고 말했다. ⓒ ElizabethLangreiter
그는 약 14년 전, 테니스를 치다가 상대방이 친 공에 후두부를 맞아 부상을 입었는데 그날 이후로 갑자기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고 해요. 물감과 캔버스를 사와 부엌 식탁 한쪽에서 독학으로 시작한 그림들의 주제는 해변이나 꽃밭, 설원을 가로지르며 삶을 만끽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죠. SNS에 올린 그림들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팔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그의 삶은 기쁨을 전달하는 화가로 바뀌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활기찬 일상을 위에서 내려다본 공중 시점(Top View)으로 포착하는 자신만의 화풍을 발전시켰어요. 특히 스컬피(sculpey)라는 재료를 사용해 사람 등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독특한 질감의 물감을 겹겹이 레이어로 쌓아 올려 산·바다·나무·바위 등도 생동감 있게 그려 아름다운 호주의 자연과 따스한 햇볕, 가족·친구들과 즐겁고 편안했던 어린 시절의 행복한 기억을 순수하고 진정성 있게 작품에 담아냅니다.
이번 한국 전시에서도 유쾌하고 즐거움이 가득한 회화를 통해 관람객들이 행복했던 기억을 되새기고, 아름다운 장소에 대한 꿈을 펼치도록 초대해요. 마치 새가 하늘을 날며 바라보는 듯한 시각(Bird’s-eye view),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으로 그려낸 일상은 보기 힘든 독특한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죠.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보지 못하는 낯선 관찰자의 시선을 제공하는 거예요. 해변을 거닐거나 수영하는 사람 등 여름 휴가지에서의 풍경을 낯설게 재해석한 덕분에 그의 작품은 보는 이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하는 청량한 에너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삶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통찰과 각도, 시원하고 상쾌한 색감, 인물들의 배치 등이 입체적으로 표현됐죠.

사랑하는 사람과의 하루가 어떻게 하나의 축제가 될 수 있는지를 표현한 ‘파티가 시작되는 소리’. ⓒ ElizabethLangreiter
모두의 평범한 하루를 신나는 휴가로 만들어주는 엘리자베스 랭그리터. 이번 전시는 엘리자베스 랭그리터의 따뜻하고 유쾌한 시선을 통해 여행이 주는 설렘과 여유,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 마주하는 소소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의 작품은 어린 시절 즐거운 호주 자연환경에서의 다양한 여가 활동에서 시작되죠. 그에게 낙원이란 멀고 추상적인 이상향이 아닙니다. 전시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섹션도 ‘WELCOME TO PARADISE’인데요. 당신만의 낙원은 어디인가요. 그녀의 작품 속 낙원은 햇살이 가득한 해변, 파라솔 아래 졸고 있는 사람, 튜브에 몸을 맡긴 채 바다 위에 떠 있는 풍경처럼 삶의 아주 사소한 순간 속에서 조용히 피어납니다.
익숙한 일상에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어요. 해변의 햇살, 수영장의 유쾌한 순간, 해변에서의 태닝, 스키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근심 없는 나날들의 행복한 추억을 담아낸 작품 하나하나가 작은 여행이 되어 우리의 마음을 가볍게 하죠. 작품을 따라가며, 잊고 있던 ‘오늘의 즐거움’을 다시 발견해 볼 수 있죠. 그게 곧 나만의 낙원이 될 것입니다.

‘손을 잡고’는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순간, 완벽한 평온함을 표현한 작품이다. ⓒ ElizabethLangreiter
‘손을 잡고’라는 작품은 고요함과 연결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엘리자베스 랭그리터는 “아름다운 열대 바다에서 서로 손을 맞잡은 채 떠 있는 한 연인을 상상했습니다”라고 말했죠. 아무 말 없이 그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순간. 잔잔한 파도 소리, 반짝이는 산호초, 그리고 ‘지금 이 자리가 바로 내 자리’라는 완벽한 평온함을 표현했어요. 이렇게 이 공간은 우리가 ‘쉼’을 꿈꾸는 장면들을 섬세하게 시각화했죠. 바다의 냄새, 모래의 감촉, 느릿하게 흐르는 시간의 결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으며, 자연스레 스스로에게 ‘나만의 낙원은 어디일까?’ 묻게 됩니다.

서핑보드 위에서 수많은 사람이 햇살과 물결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ElizabethLangreiter
바다와 해변은 그에게 단순한 배경이 아니에요. 그곳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기억과 감정이 자유롭게 출렁이는 진정한 낙원의 무대입니다. 푸른 물결 위를 떠다니는 튜브, 파라솔 그늘에서 깊이 잠든 사람, 물장구를 치며 웃는 아이들, 모두가 이 평화로운 풍경의 주인공이 됩니다. ‘Beach & Ocean Life’ 시리즈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독특한 시점을 통해 우리가 멀리서 바라보던 해변의 활기와 고요를 동시에 담아냈죠. 가까이 들여다보면, 작품 속 입체적으로 표현된 인물 하나하나가 그날의 감정과 이야기를 품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곳에는 경쟁도, 급함도 없어요. 대신 햇살과 바람, 웃음과 여유가 흐릅니다. 바다의 리듬을 따라 유영하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문득 잊고 있던 질문을 떠올리게 됩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정말로 쉬었던 순간이 언제였을까?” 그는 이 시리즈를 통해 삶을 조금 더 가볍게, 스스로를 조금 더 너그럽게 마주하는 법을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게 이야기하죠.

전시장에는 시원한 여름이 연상되는 LP도 비치됐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라는 작품은 작가가 생기로 가득한 해변을 상상해서 그렸다고 밝혔어요.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 바람에 펄럭이는 비치파라솔, 환하게 웃으며 헤엄치는 사람들로 가득한 바다. 조금은 혼잡하지만, 가장 좋은 의미의 혼란. 색과 움직임이 넘치고 모두가 들뜬 기분에 휩싸인 모든 것이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해변의 하루를 볼 수 있어요.

고요한 수영장 한가운데에서 함께 떠있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충만해지는 순간을 표현했다. ⓒ ElizabethLangreiter
‘POOLSIDE MEMORIES’ 섹션은 수영장이라는 공간을 통해 멈춰 있는 듯 흐르는 여름의 시간을 그려냅니다. ‘다시 머물고 싶은 곳’ 작품에서 두 사람이 두 개의 도넛 튜브를 타고 고요한 수영장 한가운데에서 함께 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햇살은 부드럽고, 물결은 조용히 출렁이며, 세상은 잠시 멈춘 듯한 이 공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의 기쁨을 알려줍니다. 이 섹션의 작품 속 인물들은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어떤 성취가 없어도 충분히 행복한 순간을 살아가죠. 그는 이 일상의 풍경을 ‘축소된 낙원’으로 되살리며 ‘행복은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지금 내 곁에 머무는 고요함 속에 있다’고 말을 건넵니다.

‘눈길을 가르는 사람들’은 관람객 각자에게 자신만의 ‘겨울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 ElizabethLangreiter
‘WINTER WONDERLAND’에서는 차가운 계절 속에서 피어나는 가장 따뜻한 움직임, 엘리자베스 랭그리터가 그리는 겨울 풍경을 볼 수 있어요. 그의 겨울은 조용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시점으로 눈 덮인 풍경을 바라보며, 스키·썰매·눈싸움 등 겨울철 활동에 빠져 있는 인물들의 모습을 위트 있고 생생한 입체감으로 표현해요. 스노보드를 타고 질주하는 인물들, 눈 덮인 경사에서 서로를 기다리는 친구들, 눈 장난에 빠진 아이들의 웃음소리. 겨울이라는 배경 위에 에너지와 유쾌함, 그리고 관계의 온기를 아름답게 수놓습니다. ‘눈길을 가르는 사람들’은 다음 스릴을 앞둔 평화로운 멈춤의 순간을 포착하죠. 따뜻하게 옷을 껴입고 곤돌라에 올라 슬로프 위를 조용히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사람들, 또 한 번의 활강을 준비하는 설렘까지. 청량한 산 공기 속에 잠시 떠 있는 고요함과 연결의 순간을 담아 관람객 각자 자신만의 ‘겨울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어요.

무수히 피어난 꽃들 속에서 세상의 중심처럼 나란히 놓인 두 사람이 인상적인 ‘영원한 사랑’. ⓒ ElizabethLangreiter
여행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EVERYDAY ESCAPES’ 섹션은 바쁜 일상 속, 작고 평범한 순간들이 선사하는 감정의 쉼터에 주목하죠. 계획 없는 오후, 바람이 스치는 정원, 나무 그늘 아래 조용히 앉아 있는 시간들. 우리는 그것을 일상이라 부르지만 엘리자베스 랭그리터는 그것을 ‘작은 낙원’이라고 말합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도 여전히 발견할 수 있는 기쁨. 그 평범한 기쁨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임을 작품들을 통해 속삭이듯 전해요.

작가 자신을 오스트리아의 마법 같은 날들로 데려다준다고 한 ‘햇살 아래 맨발로 걷는 봄’. ⓒ ElizabethLangreiter
그는 ‘햇살 아래 맨발로 걷는 봄’ 작품이 자신을 오스트리아의 마법 같은 날들로 데려다준다고 했죠. “저는 한 커플이 신발을 벗은 채 가볍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몰입해 있는 모습을 떠올렸어요. 들꽃으로 둘러싸인 그들 뒤로는 조용하지만 든든한 산맥이 자리하고 있고요. 신선한 산 공기, 아직 봉우리에 아른거리는 눈빛, 그리고 뭐든 가능할 것만 같은 감정. 이 모든 것이 그대로 작품 안에 녹아들었습니다.”

벚꽃으로 둘러싸인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 ⓒ ElizabethLangreiter
‘석촌호수의 벚꽃’도 시선을 모읍니다. 벚꽃으로 둘러싸인 서울 송파구의 석촌호수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가족과 연인, 친구들이 꽃잎 아래를 천천히 거닐며 그 풍경을 온몸으로 느끼는 모습을 상상했다고 해요. 호수 전체는 마치 분홍빛 눈이 살며시 내려앉은 듯합니다. 이 장면은 조용하고 아름다우며 소소하지만 깊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어요.

작품 속 한 장면이 연상되는 포토존.
엘리자베스 랭그리터의 작품은 바라보는 순간 단숨에 행복해지는 힘을 가지고 있죠. 이번 전시는 우리의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던 ‘행복했던 어느 날’을 떠올릴 수 있는 ‘힐링과 쉼’을 만날 수 있는 행복한 여정이 될 것입니다. 그는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장 가까운 순간에 숨어있다”라고 말하죠. 우리에게 행복을 받아들이고,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소중히 여기라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전시장에서 작품을 보다 보면, 그 메시지처럼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끼게 될 거예요.
‘엘리자베스 랭그리터: 매일이 휴가’
장소 서울 송파구 잠실로 209 소피텔 건물 3층 MUSEUM209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입장 마감 오후 6시)
관람료 성인 1만8000원, 청소년·어린이 1만5000원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