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文땐 "도박" 李땐 "법제화"…180도 달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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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서초구 빗썸라운지 강남본점에서 비트코인 모형이 놓인 바닥에 코인 시세 그래프가 비치는 모습. 뉴스1
“이것은 인정할 수 있는 화폐가 아니라 가상자산이다.”(2021년 4월 22일 은성수 금융위원장)
“가상자산이라는 이름이 부정적이어서 이것을 디지털상에 있는 화폐, 실질적인 자산이란 의미로 디지털자산이라고 부르기로 했다.”(지난 22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
암호화폐를 대하는 여권의 태도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급변침하고 있다. 4년 전 문재인 정부의 금융수장은 암호화폐는 “화폐가 아니다”라고 못박았지만, 현재 민주당은 스테이블코인(특정 자산에 가치를 고정한 암호화폐)을 지급결제수단으로 활용하자는 주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비트코인 현물ETF(상장지수펀드) 등 가상자산·연계상품 제도화▶STO(토큰증권)의 조속한 법제화 등을 공약했다. 후속 조처는 대선기간 선대위 디지털자산위원장을 맡았던 민병덕 의원이 맡았다. 민 의원은 전날(22일) 당 공부모임 ‘경제는 민주당’에서 최근 미국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법제화한 ‘지니어스법(GENIUS Act)’을 처리한 것과 관련 “미국은 분명히 외환거래법상 외환 거래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쓰라고 압박할 것이고 우리는 거부하지 못할 것”이라며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필요성을 역설했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경제는 민주당, 코스피 5000시대 실현을 위해 민주당이 할 일(금융편)' 토론회에서 원화 스테이블 코인 도입을 통한 글로벌 디지털 금융 전략에 관해 강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 의원은 지난달 11일 스테이블코인 도입과 ICO(암호화폐 공개) 허용 등 산업 육성책과 규제책을 망라한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지난해 11월 발의된 STO 법제화를 위한 자본시장법·전자증권법 개정안, 지난달 27일 발의된 비트코인 현물ETF 도입을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 등과 함께 ‘디지털자산 3법’으로 불린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제정되면 현행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과 특정금융정보법 내 암호화폐 자금세탁방지 의무 조항 등을 대체하게 된다. 민주당은 8월 중 국회 정무위에서 STO·ETF 법안부터 처리한단 계획이다.
문재인 정부 때 민주당은 주로 암호화폐의 투기성에 주목했다.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은 2018년 1월 암호화폐 거래 금지와 거래소 폐쇄 계획을 밝혔다가 번복해 시장 혼란을 가중시켰고,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은 2021년 4월 정무위에서 “잘못된 길로 가면 잘못된 길로 간다고 어른들이 분명히 이야기해 줘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제도권 내 보호책 요구마저 거부했다. 당시 여권 실세였던 인사는 “비트코인 등장 이후 7~8년이 지났는데도 국내·외 규범이 정해진 게 없었기 때문에 안정성에 관해 부정적 기류가 있었던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는 과거 노무현 정부 때 ‘바다이야기’ 사건 트라우마가 남아 있어 암호화폐 투자는 도박이라는 인식의 틀에 갇혀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이 대통령은 경기지사 때부터 암호화폐 법제화에 적극적이었다. 그는 2022년 1월 대선 후보 신분으로 암호화폐거래소를 방문해 “민주당과 정부가 가상자산 발행을 원천적으로 중지하고 없는 것처럼 부정하려고 해서 가상자산 시장의 발전이 지체된 점에 대해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 대해 민주당의 일원으로서 사과 말씀 드린다”며 “피할 수 없다면 앞서가는 것이 우리 국민과 투자자를 보호할 유일무이한 해법”이라고 말했다. ICO 허용을 골자로 한 대선 공약도 내놨다.
지난 대선에서 스테이블코인 활성화를 공약에 추가한 이 대통령은 암호화폐 전문 투자사 해시드의 싱크탱크 ‘해시드오픈리서치’ 대표였던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1차관을 대통령실 정책실장에 발탁했다. 여권 핵심 인사는 “이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에도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 아래 암호화폐 등 블록체인 산업을 눈여겨 봐 왔다”며 “주변에 암호화폐에 관심을 가져야 된다고 가르칠 정도로 이 대통령 스스로 이 분야에 밝다”고 전했다.

2022년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서울 강남구 업비트라운지에서 열린 가상자산 거래소 현장 간담회에 앞서 가상자산 플랫폼(빗썸)에 회원가입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 대통령의 인식은 최근 4년간 급변한 국내 투자자들의 동향에도 조응한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취급액은 2021년부터 매년 큰 폭으로 성장 중이다. 직장인, 대학생, 주부 등을 가리지 않고 코인 투자에 뛰어드는 분위기가 생기면서 정치권도 ‘코인 표심’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니어스법을 전폭 지지하는 등 최근 나타난 국제적 흐름도 국내 법제화를 자극하는 요인이다.
업계 관계자는 “달러 스테이블코인 패권에 맞선 국내 통화주권 확보라는 ‘대의’가 논의의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투자 상품에 가까운 STO의 경우 자본시장법상 지분증권과 같은 수준의 규제를 적용하도록 하고, 화폐 가치와 일대일로 연동되도록 설계된 스테이블코인은 지급결제수단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민의힘에서도 김은혜 의원이 스테이블코인을 ‘가치 고정형 디지털 자산’으로 정의하고 발행자와 감독 체계, 이용자 보호 등을 규율하는 내용의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의 유효성과 환율정책의 통제력이 약화할 수 있다”며 민간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부정적인 게 남은 허들이다. 민병덕 의원은 27일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통화정책의 주도권을 갖고 논쟁하는 건 조각배 안의 다툼과 같은 것”이라며 “스테이블코인은 거래 과정에서 수수료 등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소상공인과 대기업 모두에게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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