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몬드리안 꿈꿨으나 삶은 다르게 흘렀다…중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우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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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관중, 두 마리 제비, 1981, 종이에 먹과 채색, 홍콩예술박물관 소장(우관중과 그의 가족 기증). 사진 예술의전당
먹으로 수평과 수직선을 그어 건물의 윤곽을 잡았다. 흰 벽은 칠하지 않고 그대로 여백으로 남겼다. 집 앞 나무에 초록 잎이 돋는 봄, 제비 두 마리가 날아든다. 고향 강남 일대의 전통 가옥을 그리며 62세 우관중(吳冠中ㆍ1919~2010)은 득의양양했을까. 이런 글을 남겼다.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국내 첫 개인전
검은 먹으로 된 수평선과 수직선은 표면을 분할합니다. 이것은 피에트 몬드리안이 탐구한 영역이지만, 두 마리 제비가 동양의 주택에 내려앉는 것을 보는 스릴은 그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강남 회상'(1996)은 앞서의 '두 마리 제비'(1981)보다 한층 더 추상화지만 건물 너머 제비 두 마리는 여전하다. 우관중의 대표작 17점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다음 날부터 열리는 '홍콩 위크 2025'의 사전 오프닝 프로그램으로 10월 19일까지 열린다. 연합뉴스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25일 개막한 ‘우관중: 흑과 백 사이’ 전시장 첫머리에 걸린 ‘두 마리 제비’(1981)다. 작가가 홍콩예술박물관에 기증한 대표작 17점을 국내 처음으로 소개한다. 우관중은 오로지 수평과 수직, 순수 추상의 세계에 살았던 몬드리안을 말했지만 자신의 삶은 거기서 한참 멀었다. 그가 뜻한 바도, 그의 잘못도 아니었다.
우관중은 1919년 장쑤성에서 태어났다. 전기 공학을 배워 엔지니어가 될 작정이었다. 군사 훈련 중에 만난 항저우 국립 예술 아카데미 학생 주더췬(朱德群)을 따라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항저우 예술 아카데미에서 린펑몐(林風眠)과 판톈서우(潘天壽)에게 서양화와 중국화를 배웠다. 프랑스 국비 장학생 선발 시험에 1위로 합격, 파리 국립고등예술학교로 유학을 갔다. 3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귀국을 결심했다. 이때 파리에 눌러 앉았다면 주더췬, 자우우지(趙無極)처럼 원하는 그림 맘껏 그리며 살 수 있었을까.

우관중. 사진 예술의전당
1950년 돌아와 중앙미술학원 강사로 일했지만 ‘부르주아 형식주의의 요새’라는 비판을 받으며 칭화대 건축과로, 또 북경 사범예술아카데미로 밀려났다. 우관중은 오히려 그림 그릴 시간이 늘었다며 전국을 돌며 풍경화를 그렸다. 1966년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그린 인물화와 파리 시절의 작품을 모두 폐기해야 했다. 시골에 내려가 강제노역을 하며 똥지게를 이젤 삼아 그림을 그렸다.
덩샤오핑 집권으로 비로소 1978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58세였다. 한때 그를 배척했던 이들은 이제 그를 ‘중국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부른다. 1992년 런던 영국박물관에서 생존 중국 미술가로는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우관중, 여주 고향, 1998, 캔버스에 유채, 홍콩예술박물관 소장(우관중과 그의 가족 기증). 사진 예술의전당
쓴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여주 고향’(1998)을 그린 것은 그래서였을까. 노년의 우관중은 자신의 삶을 이렇게 쓰디쓰게 돌아봤다.
여주가 쓴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누구도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자유가 없습니다. 쓴맛은 항상 저를 괴롭힙니다. 그것은 제 마음 깊은 곳에 있습니다.”

우관중, 만남, 1999, 캔버스에 유채, 홍콩예술박물관 소장(우관중과 그의 가족 기증. 사진 예술의전당
수묵과 유화를 오가며, 흰색과 검정을 즐겨 쓰는 우관중이지만 더러는 다채로운 색으로 봄을 노래했다. 고향 강남 강둑의 버드나무 잎과 복숭아 꽃을 추상화한 ‘만남’(1999)에 대해 “시간은 그저 흘러갑니다. 저는 이미 시간에 청춘을 잃었습니다. 그저 이른 봄의 덧없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습니다”라고 회한을 토로했다.
중화인민공화국 문화부는 2003년 그에게 평생공로상을 수여했다. 신장 자치구의 풍경을 담은 ‘자오허 고성’이 2007년 베이징 폴리옥션에서 4070만 위안(약 79억원)에 낙찰되며 중국 현대 수묵화 경매 신기록을 수립했다. 미술시장은 계속 그를 불렀지만, 그는 작품을 공공에 기증했다. 2010년 우관중은 회고전을 마련한 홍콩예술박물관에 마지막 작품을 기증하고, 그날 밤 베이징의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91세였다.

장한겸 정의 '감성의 연못-서울판'(2025). 우관중의 작품을 AI 머신러닝으로 익힌 인터랙티브 설치. 사진 예술의전당
아들 우커위는 지난해 홍콩예술박물관에 1억 홍콩달러(약 176억원)를 ‘우관중 예술후원 기금’으로 기부했다. 한국 첫 단독 전시도 이 기금으로 열렸다. 홍콩 미술가 장한겸 정(Chris Cheung)의 AI 머신러닝 설치 ‘감성의 연못-서울판(Seoul Edition)’도 함께 전시됐다. 우관중의 작품 세계를 기반으로 한 몰입형 설치다.
홍콩예술박물관의 나디아 라우 박사는 “우관중을 모르는 중국인은 없다. 그는 추상 미술의 선구자로서,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자기만의 조형 세계를 포기하지 않았다. 또한 ‘작품과 관객은 끊어지지 않는 연줄처럼 이어져야 한다’는 소신대로 작품을 미술관에 기증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19일까지, 무료.

예술의전당 서울 서예박물관에서 열린 '우관중: 흑과 백 사이'에 전시된 '수로'. 연합뉴스
홍콩특별행정구 산하 여가문화서비스부는 가을 홍콩위크를 맞아 ‘우관중 예술후원 해외 전시 시리즈’를 시작으로 홍콩발레단의 ‘로미오+줄리엣’(9월 26~27일 국립극장),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선우예권 협연으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진은숙의 작품(10월 19일 예술의전당) 등을 무대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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